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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Feb 03. 2023

홋카이도 4

마지막

사건은 계속 일어난다.


사흘째 하루 종일 15km를 걸어 다녔다. 나흘째도 그리 다녔다. 숙소를 삿포로역에 잡은 탓이다. 이틀 동안 걸은 숫자가 45,000보. 거리상으로는 대략 30km다. 서울 양천구에서 인천 앞바다까지의 거리가 그 정도이다. 아침마다 송파구로 출근하는 거리가 32km다. 저녁이면 발바닥이 뻐근하다 못해 아플 정도였다. 암튼 나흘째 아침이 밝았다. 어제 백화점에서 본 줄 서는 매장에서 장모님 드릴 디저트도 사고 오타루로 가기 위해 백화점 문 열기 전에 출발했다. 이 호텔도 조식이 있긴 한데 빵 몇 개와 유제품, 커피가 전부다. 문 열기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반대편 역사 출입구에서 사람들이 차분히 들어온다. 앞에는 종업원이 안내하고 있었다. “아! 오픈하기도 전에 줄을 섰구나!” 서둘러 지하로 내려가니 지하도 마찬가지였다. 오픈하기 전부터 줄을 서고 있었다. 디저트 사는 것은 포기하고 기차 타고 가면서 먹을 빵 조금 사서는 오타루를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사람들이 역에 들어가지는 않고 삼삼오오 모여 있다. 안내소에 들어가서 예약 하려고 하니 안 된다고 한다. 큰 눈이 내려 기차가 운행 중단이라고 한다. 오후에는 가능할지 물으니 “Maybe?” 끝까지 말썽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가방 분실, 게 사건, 열차 운행 중지 등 날마다 새로운 사건과 함께하는 여행이다. 여행 컨셉이 ‘사건과 나’인 듯싶었다. 무엇을 할지 생각하다가 유니랑 TV 타워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게임당 하나씩만 맞았다

둘이 지하도를 걷다가 복권방을 만났다. 마주 보고는 “할까?” 유니와 내 생일 조합으로 하고 자동까지 했다. 가끔 복권을 사면 게임은 세 개만 한다. 미신 같은 신념, 천지인 삼의 조화가 기운을 줄 듯싶지만 준 적은 없다. TV 타워 입구에 가차 기계에서 300엔(삼이네) 뜯긴(돈만 먹고 나오지 않음) 소소한 사건을 뒤로하고 대충 3층(삼이다)만 구경하고는 니조시장으로 갔다. 시장이라고 해봤자 인천 차이나타운 중국집 같은 비슷한 음식을 파는, 게와 회덮밥 파는 식당만 몇 개 모여 있다. 줄 서는 사람을 구경하다가 안쪽으로 가니 유니가 먹고 싶어 하던 파르페가 있다. 

파르페를 사 먹고 길 건너 다누키코지 상점가로 밥을 먹으러 갔다. 


딱히 무엇을 먹을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대부분 일정에 먹고 싶은 것을 넣는다. 나도 그랬다. 일련의 사건에서 내 일정은 망가졌기에 흐르는 대로 흘러가기로 했다. 상점가를 구경하며 두 가지 메뉴로 압축, 오므라이스와 만두 정식. 

둘이 고민하다가 만두 정식으로 정하고 아주 맛나게 먹었다. 만둣가게 소스로 간장, 고추기름 그리고 산초를 준다. 산초는 우리나라에서는 제피(초피), 중국에서는 마자오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산초라 부르는 것은 제피와 달리 산뜻한 맛이 없는 녀석이라고 있다. 우리가 산초라 부른 것과 다른 것이 일본 산초다. 일본에서 제피를 산초라 부르기에 우리나라 일부 지역에서 제피를 산초라 부르는 일도 있다. 

일제 잔재다. 만두 찍는 소스에 식초를 하면 맛이 차분해진다. 탕수육 소스 생각해보면 답이 있다. 식초는 맛의 중심을 잡아 준다. 신맛은 단맛, 짠맛, 기름진 맛의 중심을 딱 잡아준다. 각자 놀던 맛이 식초 한 방울에 자리를 찾아간다. 배달 온 떡볶이에 식초 한 방울 넣으면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만두 정식, 만두가 반찬이 될까 했는데 된다. 심지어 맛있다.


만두를 먹으면서 다음 일정을 잡았다. 전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로프웨이가 나온다. 스스키노역에서 전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편도 200엔, 시내 중심을 한 바퀴 돈다. 유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20분 가까이 전차를 탔다. 전차에서 내려 로프웨이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아무도 없다. 안내문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후 5시부터 운행” 끝까지 이런다. 유니랑 웃다 보니 허전하다. 핸드폰이 없다. 생각해보니 카메라 챙기면서 핸드폰을 만둣집 탁자 위에 두고 왔다. 오는 전차를 타고 다시 갔다. 전차가 시내를 한 바퀴를 돌기에 어느 방향으로 가든 스스키노역으로 간다. 로프웨이역이 딱 중간이다.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비슷한 역을 지나야 스스키노에 도착이다. 만둣가게에 들어가니 웃으며 핸드폰을 내준다. 만둣가게를 나와 엄마 줄 디저트를 샀다. 상점가의 터줏대감인 니쿠라야다. 당고와 도리야끼, 도미빵을 파는 곳이다. 

팥빵 좋아하는 엄마에게 이보다 적당한 디저트는 없을 듯싶다. 선물세트는 따로 없다. 파는 것을 골라 담으면 선물 포장을 해준다. 카페로 같이 하기에 당고나 빵도 2층에서 먹을 수 있다. 핸드폰 두고 온 것이 아마도 이걸 사라는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

로프웨이 운행 시간까지 꽤 남아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삿포로역으로 갔다. 다행히도 열차가 운행하고 있었다. 오타루까지 기차 타고 갔다. 수많은 유튜버가 삿포로에서 오타루 갈 때 오른쪽에 앉으라고 한다. 바다가 오른쪽에 있으니 경치구경 하라고 한다. 꼭 표 살 때 오른쪽으로 달라고 꼭 이야기하라고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아침 일찍 운행하는 기차라면 모르겠지만 몇 번 운행한 기차의 창은 무지 지저분하다. 겨울에는 그냥 대충 타도 똑같다. 뿌연 창 너머의 바다가 옆에서 보나 건너서 보나 같다. 50분 정도 갔나? 오타루다. 삿포로에서 출발할 때 가능하면 미나미 오타루에서 내리는 것이 좋다. 미나미 오타루에서 내려서 조금만 가면 오르골당 건물이 보인다. 오타루 오는 목적 중 하나가 오르골당. 

오타루 관광지의 끄트머리가 여기다. 오타루역에서 출발하면 끝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아니면 미나미 오타루에서 타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린 짐이 있어서 오타루역에 맡기고 왔기에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운하, 유리공예, 디저트, 오르골 이 네 가지를 보러 오타루에 간다. 옆 앞에 있는 삼각시장 또한 빠지지 않는데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회덮밥을 판다는 것 외에는 별거 없다. 시장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냥 밥집 모여 있는 곳이다. 오타루에서는 유니가 즐거워했다. 눈이 쌓여 있는 곳에서는 눈으로 몸을 던지면서 재밌게 놀았다. 밥을 먹을까 하다가 삿포로에 왔으니 양고기를 먹어보자고 한다. 

대충 중간에 케이크도 먹고 했으니 삿포로 다루마에 가기로 했다. 

삿포로 다루마 본점, 역시나 대기 줄이 어마무시하다. 옆에 5.5나 6.4 등 모두 대기가 많다. 그렇다면 4.4점의 2층은? 대기가 없다. 본점과 지점이 다른 것은 딱 하나, 내주는 생맥주 브랜드가 다를 뿐이다. 2층에 자릴 잡고 메뉴를 정한다. 종업원 중에서 한국어 하는 이가 있어 주문에 별 어려움은 없다. 열 개 조금 넘는 의자에 반 정도가 한국인이다. 고기를 주문하면 기름과 양파 대파를 먼저 준다. 가열이 어느 정도 되면 고기를 올린다. 무쇠 팬은 기름을 칠해도 가열이 일정 이상 안 되면 고기가 달라붙는다. 고기가 달라붙었을 때 억지로 떼지 말고 시간이 지나면 변성된 단백질이 알아서 쇠와 이별한다. 즉 잘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맛을 본다. 

한국에서 먹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한국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굳이 이걸 먹겠다고 추운 곳에서 기다려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음에도 줄 서지 않은 곳에서 편하게 먹을 생각이다. 유독 이번 홋카이도 출장에서 실망했던 것이 농산물이었다. 양파는 수확하진 6개월 지났다 치더라도 대파는 한창 달 시기인데 맛이 밋밋했다. 양고기 때문에 삿포로 놀러 가지는 않을 듯하다. 여기 식당이 우리나라 식당보다 좋은 것 ‘밥’ 뿐이었다. 양고기도 이치류에서 먹었던 것이 훨씬 낫다. 

정신없이 나흘을 보내고 나니 돌아가는 날이다. 어제부터 단단히 준비한, 오픈런을 하기 위해 일찍 체크아웃하고는 백화점으로 갔다. 조금 있겠지 했는데 대기하는 사람이 졸 많았다. 내 앞으로 서른 명 넘게 줄 서 있었다. 문을 열고 20분 정도 지나니 내 차례. 삿포로 치즈 장인 넷이 모여 만든 디저트로 S(cent), N(atural), O(rigiral, W(isdom) 향기로운 치즈로 세상에 없는 독창적인 과자를 만들겠다는 뭐 그런 의미다. 삿포로 내에서는 다이마루 백화점 한정이다. 부지런을 떤 덕분에 남들 다 들고 다니는 Le TAO나 롯카테이 대신 SNOW 쇼핑백을 들고 다녔다. 내가 먹을 거 작은 거로 샀는데 집에 와서 급 후회다. 작은 거 사서 후회한 것이 또 있다. 치토세 공항 3층에 있는 아이스크림과 카스텔라 파는 곳이 있다. 

여기 카스텔라 ‘찐’이다. 삿포로에서 나는 우유, 달걀, 밀가루, 설탕으로 카스텔라를 만든다. 규슈 나가사키의 카스텔라 이상으로 맛이 좋다. 이것 또한 작은 것을 샀다가 후회막심이다. 삿포로에 많은 달달한 것이 있어도 이 녀석이 ‘찐’이었다. 장모님 사다 드린 과자를 드시고는 대만족. 맛있으면 된 거다. 어디서 줄 서는 거 잘하는데 SNOW는 줄 설 생각이다. 맛있다. 

과자까지 샀으니 이제 마지막 날 점심으로는 라멘. 하코다테에서 시오라면을 먹었으니 삿포로 미소라멘을 먹으면 꽤 괜찮은 마무리가 될 듯싶었다. 구경삼아 간 빅카메라, 마침 10층에서 라멘 팝업 스토어가 열려 있다. 삿포로의 인기는 라멘집이 2월까지 한정으로 행사를 하고 있다. 이른 점심이라 사람이 별로 없다. 매운 것이 먹고 싶단 유니, 그중에서 가장 매워 보이는 곳은 갔다. 역시나 우리 기준의 매운맛과 일본인의 매운맛 기준이 너무 다르다. 내가 선택한 메뉴는 옥수수와 버터가 들어간 삿포로 대표 라멘. 나쁘진 않지만 홋카이도에 있다면 무조건 시오라멘을 선택하겠다. 내 입맛에 그쪽이 낫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공항, 그리고 집. 마지막 날은 별문제 없이 넘어갔다. 내 착각이었다. 자이스바티스 40mm 렌즈 뚜껑을 호텔이나 어디에다가 흘리고 왔다. 가방을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지갑이나 카메라 가방, 핸드폰이 아닌 뚜껑 잊어버린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더 큰 거 아니라 다행이다. 그러면 된 거다. 이번 홋카이도에서는 멜론을 먹지 않았다. 홋카이도가 멜론 산지로도 유명하지만, 철이 지금이 아니다. 올여름에 다시 한번 가볼까 한다. 그때는 멜론이 제철이니 제철의 맛을 안 보면 나만 손해다. 이런저런 사건과 함께 한 홋카이도 여행,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유니 왈 “이래야 여행의 맛이지” 

끄읏. 

#삿포로 #홋카이도 #북해도 #오타루 #다루마


기대했던 삿포로 여행이 끝났다.

제주 농축산물은 맛있다는 고정관념처럼

홋카이도 농축수산물 또한 고정관념을 확인한 여행이었다.

꼭 먹어야할 것은 없다. 있으면, 시간이 되면 먹으면 좋은 것은 있었다. 홋카이도에서 꼭 먹어야 할 것은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멜론을 먹지 않았다. 멜론의 계절은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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