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를 다녀오다
불현듯 가고시마 닭회 생각이 났다. 가고시마 덴모칸의 골목 선술집에서 우연히 맛본 닭회였다.
바로 항공권을 사고 호텔을 미친 듯이 예약을 했다. 그렇게 일본 토종닭을 맛보러 다니는 여행의 마무리를 위해 가고시마로 날아갔다. 4년 전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나고야를 다녀온 다음 가고시마, 미야자키, 구마모토 세 곳을 다녔다. 가고시마 및 구마모토는 토종닭으로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곳이다. 다른 여행중 구마모토에서 1m까지 자라는 아마쿠사다이호를 맛본 고기 맛에 충격을 받았다. 그 영향으로 나고야를 비롯해 규슈의 닭을 먹으러 돌아다녔다. 코로나로부터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다시금 나고야를 다녀왔고 이어 가고시마에 다녀왔다. 네 번의 3박 4일 여행의 마무리였다.
나고야는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여전히 우동, 카레, 덮밥, 구이, 치킨 등 편하게 맛볼 수 있었다. 오히려 지난번보다 더 좋은 경험을 했다. 좋은 경험이 어쩌면 불현듯 가고시마에 가게 만든 도화선이 되었다. 게다가 예전에 가고시마에서 맛본 모둠 닭회 사진도 마음에 들지 않아 겸사겸사 다녀왔다. 결론은 ‘굳이’였다. 나고야에는 닭만 먹고 다녔다.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가고시마에서 그러지 않았다. 그냥 있으면 먹고 아니면 먹고 싶은 걸 먹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조사를 해보니 4년 전과 비교해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 덕에 왕복 7시간 걸려서 가츠오부시의 고장 마쿠라자키도 다녀왔다.
가고시마의 토종닭은 흑계를 밀고 있다. 흑돼지, 흑우에 이어서 말이다. 가고시마의 흙은 화산 영향으로 검다. 오가다 오름을 배경 삼아 있는 양배추 밭을 만나면 제주 조천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가고시마 토종닭이 검은 것만은 아니다. 마케팅이 그렇다는 것이다. 검은 닭 말고도 깃털이 하얀 것과 누런 것도 있다. 각각의 맛이 특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 맛보고 온 것은 검은 사츠마 토종닭이었다. 어쩌면 다른 토종닭도 맛을 봤을 것이지만 내 혀가 구별 못 했을 수도 있다. 예전에 아마쿠사다이호와 구마모토의 다른 토종닭을 같이 먹어 본 적이 있다. 그리 먹어 보니 구별이 확실히 되었다. 씹는 맛과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감칠맛이 달랐다. 그렇지 않고는 굽거나 튀기거나 삶은 것을 만화처럼 확실하게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이라 생각한다. 소스까지 있다면 더욱 그렇다.
가고시마에서 첫 끼는 숙소 앞에 있던 흑돼지 돈가스였다. 토종닭 여행에서 왠 돼지? 가는 김에버크셔도 같이 맛볼 생각이었다. 버크셔 상등심으로 만든 것을 주문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가고시마 여행에서 첫 번째 픽은 흑돼지 돈가스였다. 그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버크셔 돈가스를 파는 곳이 생겼다. 그곳과 비교할 좋은 기회였다. 비교 대상이 없을 때는 여기가 ‘짱’이었다. 먹어 보니 국내에서 먹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고기의 맛이나 튀김 실력이 대동소이였다. 부산대학교 앞 톤소우나 서교동 최강금의 돈가스와 차이가 없었다. 다만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점은 한 가지, 밥이었다.
국내 어디든 여기의 밥맛을 따라서 오지 못했다. 돈가스 전문점뿐만 아니라 모든 식당이 그랬다. 형식은 따라 해도 기본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돈가스를 위해 좋은 고기와 훌륭한 기술을 연마해도 밥에 관한 생각은 그저 내주면 그만이라 생각하기에 처지가 찬밥 신세다. 튀김 기술은 국내나 일본이나 비슷, 밥은 과장 해서 하늘과 땅 차이가 났다.
저녁에 천문관으로 이동해 닭회를 먹을 생각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 쉬는 날이었다. 다른 곳을 찾아볼까 하다가 알고 있는, 가고시마 중앙역에 있는 토종닭 구이 점에 갔다. 예전에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었다. 결론은 실망. 양도, 접시에 담긴 부위도 예전과 달리 적어졌다. 물가가 오른 영향인 듯싶었다. 토종닭으로 국물을 낸 소바도 주문을 했다. 작은 그릇에 담긴 소바 한 그릇, 7천 원 정도였다. 나고야에서 먹었던 국물 맛과 달리 구수한 맛도 적었다. 다시는 주문 안 할 듯한 맛이었다. 예전에 토종닭의 맛이 열 냥이라면 껍질이 아홉 냥이라고 했다. 나고야역 백화점에서 먹었던 껍질이나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먹는 껍질이나 삶아서 나왔다. 삶는 동안에 기름기가 싹 빠진 것을 구우니 종이 씹는 맛이 났다. 생 껍질을 구우면 바삭하면서 녹진한 맛이 나는데 제대로 맛을 볼 수가 없었다. 나온 부위 중 간이 가장 많았다. 간은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끝 맛에 치고 올라오는 피 맛이 별로라 좋아하지 않는다. 전에 있던 물렁뼈도 없고 살덩어리는 작아졌다. 용암 구이를 먹고 나오면서 애써 찾지는 말자 다짐했다.
2019년 처음 갔을 때의 느낌과는 달랐다. 닭회 먹으러 갔다가 한 번 더 실패하고 다음날 후쿠오카까지 가는 시간까지 미뤘다. 식당이 아닌 이자카야라서 오픈 시간이 저녁이다. 기대를 안고 들어간 술집, 예전에 화려했던 면면을 떠올리며 회가 나오길 기다렸다. 특히 고소함이 파도처럼 입속으로 밀려들었던 목회가 어서 나왔으면 했다. 나온 회는 두 가지 정도가 빠졌다. 번역기로 돌려본 메뉴판에는 코로나 시기에 사육 농가가 감소해서 수급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그 영향인지 아니면 내 기대가 너무 컸는지 맛은 4년 전만큼 신선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목회는 다른 부위와 색다른 맛이었다. 씹는 맛은 물론 고소함이 남달랐다. 전에는 목의 앞부위를 포크로 긁은 것을 먹었다. 요번에는 목의 뒷부분을 먹었다. 살집이 앞부분보다 많았다. 치킨을 주문하면 목도 같이 온다. 먹어 보면 치킨의 다른 부분과 달리 씹는 맛이 있었다. 회 또한 그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먹을 게 별로 없어 더 맛난 부위가 목이다. 나고야에서 찾지 못한 맛이었다.
기차 시간이 어느덧 되어서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 잠깐 타고 가는 노면전차에서는 드는 생각, 그리고 한 시간 조금 넘게 가는 하카타행 신칸센에서 든 생각. 우리 토종닭이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약 세 가지로 함축이 되었다. 16일간의 토종닭 여행 내내 쌓이고 쌓였던 생각이었을 것이다.
첫째는 한 마리, 한 상을 팔아야 한다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 토종닭은 가든 중심의 한상 차림이다. 구워도, 삶아도 한 마리여야 한다. 상을 차리기 위한 공력이 닭이 아닌 반찬에 힘을 줘야 하기에 한 마리를 팔아야 판매 마진이 보장되는 구조다. 이 구조를 깨지 않는 이상 일본처럼 지역마다 토종닭이 생길 수 없다. 넷이 닭 한 마리에 이거저거 주문하면 대략 십만 원 돈, 넷으로 나누면 그리 크지 않다. 혼자 먹기에는 십만 원이라는 돈도 양도 많다. 먹는 방식과 조리법 또한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둘째는 삶아야 한다는 생각, 닭도리탕이든 백숙을 벗어나야 한다. 일본의 토종닭은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재래닭과 브랜드 닭으로 나눌 수 있다. 재래닭도 온전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기준이 있다. 재래닭 유전자를 일정 이상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출하일수도 180일 이상 되도록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브랜드 닭은 재래닭의 쫄깃한 맛을 어느 정도 손해를 보면서 성장성에 조금 더 힘을 준 품종이다. 우리나라 한협3호가 일본의 브랜드 닭과 같다. 대략 두 달 이상 사육한다. 재래닭이든 브랜드 닭이든 약 100여 가지 닭이 일본 전국에 있다. 다양한 닭이 나오고 다양한 메뉴가 있으니 시장성이 형성된다. 집 앞 이자카야를 가더라도 토종닭 꼬치에 맥주 한잔을 할 수 있는 게 있다. 집에 가는 길에 토종닭으로 국물을 낸 라멘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일본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를 한다. 삶는 것만 아니라 튀기고 구워도 맛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질기지 않다는 이야기다. 굽든 찌든 토종닭은 모든 방식으로 요리를 할 수 있다. 토종닭은 질기지 않고 우리가 늘 먹는 닭이 부드러울 뿐이고 우린 그 식감을 기준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토종닭의 미덕은 씹는 맛에 있다. 소고기는 마블링의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일본에서 유독 토종닭 브랜드가 많은 이유는 씹으면 씹을수록 우러나는 살 맛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고기에 묻은 양념은 씻겨나가면 밋밋해진다. 치킨은 맛있음에도 튀김 옷과 살을 따로 먹으면 별맛이 없다. 토종닭으로 치킨을 하거나 구우면 치킨 옷이 없어도 살 맛이 일반 닭과는 다르다. 질김? 그런 거 없다. 보통 6개월까지 키운 재래닭을 굽거나 튀겨봐도 염려하는 질김은 없다. 6개월 키운 나고야 코친으로 만든 테바사키(날개 튀김)이나 꼬치구이는 탱글탱글한 맛이 있다. 우리 인식이 질길 거라 지레짐작할 뿐이다.
세 가지 중에서 우선순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를 하나씩 해결해서는 원을 돌듯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저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에 앞서 해결한 것이 제자리가 될 것이다. 핵심은 이거다. 편하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폼나게, 거나게 제한된 요리방식으로 먹어서는 우리맛닭을 만들든 말든 토종닭은 항상 그 자리를 맴돌 것이다. 상차림에서 힘을 빼는 순간 토종닭은 새로운 시장을 열 것이다.
사족
정부에서는 쓸데없는 짓거리 보다는 토종닭 전용 도계장과 부위별 소분장을 만들어 주는 곳에 지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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