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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un 26. 2023

마블링은 소고기의 맛을 대표하지 않는다.

가격만 결정한다

소고기를 구워 먹는 이유가 예쁜 지방을 보기 위함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직업이 식품 MD인지라 몇 번 도축장에 들어간 적도 있고 작업장은 많이 가봤다. 도축하고 나서는 하루를 빙점 온도에서 계류한다. 시료 채취해서 검사한 후 작업장으로 옮긴다. 작업장으로 옮길 때 소 몸체는 두 개로 나눠진 모습이다. 왼쪽 부분 도체의 마지막 등뼈와 제 1 허리뼈 사이를 잘라져 있다. 잘라진 부분의 마블링 분포를 보고 등급을 결정하기 위함이다. 700kg 내외의 소 한 마리의 등급을 잘라진 단면의 지방 모양새를 보고 전체 고기의 가격을 결정한다. 지금의 등급 판정제도다. 

필자는 야구를 좋아한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팬이었으니 40년이다. 지금도 가끔 딸아이와 야구장에 갈 정도로 좋아한다. 야구를 보다 보면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논쟁이 자주 있다. 규정은 타자의 무릎과 겨드랑이 사이가 높이, 포수 앞 홈플레이트의 넓이만큼 안에 들어오면 스트라이크다. 아주 간단한 규칙이지만 절대 간단하지가 않다. 절대 간단하지 않은 까닭만큼은 오히려 간단하다. 스트라이크를 판단하는 심판이 사람이기에 그렇다. 규정이 있어도 사람마다 판단의 차이가 난다. 스트라이크 존 경계에 공이 들어왔을 때 누구는 스트라이크고 누구는 볼로 판정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공 하나 정도 빠져도 스트라이크를 잡는 예도 있다. 마음만 먹으며 투수나 타자 하나 바보 만들기 쉬운 게 심판의 위치다. 다시 등급 판정으로 돌아가 보자. 아래 첫 번째 사진은 1등급과 1+ 등급이다. 등심 부위별 마블링 모습이나 근육 모습은 다르다. 같은 부위를 정형하면 좋겠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단순 비교를 위해 두 고기를 두고 실험을 했다. 사진의 첫 번째 사각형으로 손질한 것이 1) 번, 옆의 것이 2) 번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고 어떤 것이 1+인지 질문을 던졌다. 글은 읽는 여러분도 한 번 선택을 해보시기 바란다. 

사각형 모양이 1) 번 옆이 2) 번 당신의 선택은?

답이 정해졌으면 답을 맞혀보자. 답은 2번이다. 하지만 인스타나 페이스북에서 답을 한 이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1번을 택했다. 딱 보기에도 1번의 마블링이 좀 있어 보인다. 마블링 차이가 거의 없지만 두 고기는 지육 평균으로 4천 원 정도의 가격 차이가 난다. 등급에 따른 가격 차이다. 기준인 등심 단면을 사람이 판단하기에 스트라이크 판정 시비와 같은 일이 생긴다. 공 하나 빠져도 스트라이크 잡아 주는 것처럼 등급 판정 기준에 살짝 빠져도 판단하는 이가 1+을 선언하면 그 등급이 된다. 소고기 맛하고는 관련 없이 말이다. 두 고기는 하나는 수소이고 하나는 거세우다. 수소는 등급 판정 대부분 95% 이상이 3등급이 나온다. 1등급은 ‘만일에’ 정도의 확률로 나온다. 둘을 놓고 구워보면 맛의 차이가 확연하게 난다. 수소는 소고기의 향이 있다. 씹을 때마다 사람이 고기를 먹는 이유를 확연히 깨닫는다. 고기 세포 하나하나 깨질 때마다 감칠맛과 향기를 내준다. 이는 1등급이든 3등급이든 상관없이 수소는 가지고 있다. 3산이나 4산한 암소 또한 이런 짙은 향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암소라도 마블링은 별로지만 말이다. 거세우는 새끼 때 수소를 거세한 것이다. 거세한 이유는 등급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무슨 비법인 양 거세 방법이 퍼지면서 94년도 기준으로 만 마리 정도를 거세했다면 지금은 수십만 마리를 거세하고 있다. 94년도 당시 수소는 십만 미리 넘게 도축을 했고 지금은 만 마리 이하를 잡고 있다. 마블링 도입 이후 두 소의 도축하는 차이가 거꾸로 되었다. 따지고 보면 30년 전에는 우리가 먹던 소의 둘 중 하나 정도는 수소였다는 이야기다. 가끔 노포 고깃집에 암소 전문이라는 글씨를 봤을 것이다. 그게 그때의 사람들의 선호를 반영하는 것이다. 암소는 수소보다는 부드럽다. 마블링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인지라 씹었을 때 부드러운 암소를 선호했기에 잘 보이는 곳마다 ‘암소 전문’을 내세운 것이다. 수소를 암소 비슷하게 만든 것이 거세우다. 거세를 하는 순간부터 지방이 잘 낀다.

세상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줘야 한다. 얻기 위해서는 잃어야 한다. 거세우는 불알을 떼주면서 마블링을 얻었다. 마블링에 환호를 받으면서 도축하는 숫자를 늘렸다. 그사이 우리는 소고기의 향을 잃기 시작했다. 불과 30년 전까지는 알고 있던 소고기의 향을 말이다. 수소는 고기 향이 있다. 씹었을 때 그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마블링이 별로라면 질길 것이다고 미리 판단한다. 마블링이 ‘일’도 없는 뒷다릿살을 분석하면 지방이 15%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등심은 뒷다리살 보다 지방이 많은 부위다. 눈에 예쁘게 보이는 마블링 외에도 더 있다는 이야기다. TV 예능에 뭉쳐야 찬다가 있다. 소고기 지방은 뭉치면 등급이 낮아 있다. 같은 지방이라도 모양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소고기 지방의 운명이 그렇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환대받는다. 소고기, 무슨 맛으로 먹을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향으로 먹을지 예쁘기만 한 것을 눈으로만 먹을지 말이다. 나는? 물론 향으로 먹는다. 등급 따위가 뭐라고 잘 퍼진 지방 분포도에 돈을 더 쓸 생각이 없다. 마블링을 옹호하는 이들은 마블링이 한우의 특성이라고 한다. 수천 년 이어온 한우의 특성이라 하는데 한우=마블링 개념이 도입된 것은 불과 30년 전이다. 전통으로 따지자면 마블링 없던 것이 한우다. 한우는 지방 맛 외에도 단백질의 맛도 있다. 게다가 한우 특유의 향까지 있으나 지금의 등급제로는 판단할 수 없는 맛이다. 

#거세우 #마블링 #투뿔 #한우 #수소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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