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살로 끓인 뭇국
뭇국을 끓인다. 달디 단 겨울 무를 채 썰고, 소고기를 꺼내 먹기 좋게 썬다. 부위는 호주산 안창살이다. 안창살?. 구워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의아해할 수 도 있다. 안창살은 기름기가 없는 대신 육향이 좋다. 오래 끓여도 씹는 맛이 살아 있어 선호한다. 안창살은 갈비짝 안쪽에 막으로 들러 쌓인 고기로 소 한 마리에서 1kg 조금 넣게 나오는 부위다. 소량 나오는 제비살, 토시살과 함께 특수 부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잘 피어 오른 숯불 위에 살짝 구워 먹으면 육향, 육즙 가득이다. 고기는 구워야 제맛이라 여기지만 국을 끓여도 된다. 구워 먹는, 삶아 먹는 부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뭇국은 소고기 맛이 강하게 나야 제맛이다. 그러니 소 부위 중 육향이 가장 좋은 안창살은 뭇국의 재료로서는 최상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뭇국의 재료로 가장 맛나게 먹었던 소가 생각난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 키웠던 황소로 끓였던 뭇국이었다. 10년 전에는 소 산지가 두 군데였다. 충남 홍성의 황소와 전북 고산의 화식우였다. 화식우는 말 그대로 여물을 먹인 암소였다. 화식우는 보드라운 맛은 있었지만 황소가 가지는 야성의 맛은 부족했다. 황소 고기를 굽고 소금에 찍으면 핏빛 육즙이 소금 그릇에 뚝뚝 떨어졌다. 소금을 살짝 찍고 고기 한 점 입안에 넣고 씹기도 전에 훅 치고 올라오는 육향에 내가 고기를 먹고 있음을 알았다. 고기를 씹으면 그제야 육즙이 혓바닥을 통해 다시금 확인을 해줬다. 황소 목심으로 국거리로 국을 끓이면 그렇게 향이 좋을 수가 없었다. 양지로 끓이면 환상이었다. 거세우가 부드러움 때문에 잃어버렸던 향이 황소에는 살아 있었다. 거세를 하면서 마블링을 얻었지만 본디 가지고 있던 향은 사라져 맛이 심심해졌다. 거세우에도 소고기의 향이 있긴 해도 황소에 비해서는 조족지혈.
뭇국을 끓인다. 무를 썰고 고기를 다듬는다. 냄비에 무와 고기, 그리고 아주 조금의 들기름 넣고 약불에서 뚜껑을 닫고 끓이듯 볶는다. 소금을 빼먹었다. 무와 고기에 간이 배도록 조금 넣고 다시 뚜껑을 닫는다. 냄비에서 드득 드득 끓는 소리에 향이 퍼진다. 소고기 향에 들기름 향이 살짝 묻어 난다. 입맛을 다신다. 향의 유혹에 볶던 고기 한 점을 먹는다. 더 먹으면 안 된다. 물을 붓고 불을 최대로 올린다. 이제 한 소금 끓으면 끝이다. 냉장고 한편에서 말라가던 쪽파를 3등분 해 넣는다. 음식을 하면 향이 퍼진다. 그릇에 담았을 때 비로소 눈으로 들어온다. 어제 했던 찬 밥 한 덩어리를 소고기 뭇국에 말았다. 젓갈을 많이 쓰는 어머니의 김장김치가 이제 사 알맞게 익었다. 아직은 젓갈 향이 덜 사그라졌지만 뜨듯한 국물과 함께 하기 딱 좋다. 김치의 차가운 아삭함이, 뭇국의 뜨듯한 국물은 입안는 조화를, 내 위장에 평화를 준다.
국물이 좀 남았다. 이따 오후에 떡볶이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