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여름, 홋카이도에서 맛보는 멜론에 대해서 말이다. 경매 시장에서 한 통에 몇만 엔, 몇백만 엔에 낙찰받는다는 홋카이도 유바리 멜론을 맛보는 것에 대해 일종의 경외심이 들기도 했다. 모든 유바리 멜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생산하는 것 중 아주 아주 극히(두 번 강조는 경매가에 이벤트성이 있지 않나 하는 의미다) 적은 수량에만 그런 가격이 형성된다. 보기에도 그물이 예쁘고 큰 크기의 멜론이 대상이다.
멜론을 알아보기 전 코리아 멜론에서 이야기하고 가야 할 듯싶다. 코리아 멜론? 거창해 보이지만 참외를 외국에선 그리 부른다. 우리만(?) 먹기에 코리아 멜론이라 부른다고 한다. 사실 처음에는 우리만 먹지는 않았다. 지금 흔한 노란 참외의 본고장은 일본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은천 참외가 노란 참외의 조상 격이다. 멜론과 참외 두 가지를 심었던 일본이 멜론만 키우는 사이 노란 참외는 토종 참외를 밀어내고 참외 시장을 석권했다. 토종 참외도 나름의 독특한 맛과 식감이 있어도 달곰한 노란 참외에 밀렸다. 우리보다 잘살았던 일본, 참외보다 고급스러운(?) 멜론을 키우고 참외는 도태시켰다.
지역마다 저마다의 특징 있는 멜론 브랜드를 자랑하지만 홋카이도 앞에서는 다들 꼬리를 내린다. 일본에서 홋카이도 농산물의 의미는 국내산을 넘는 프리미엄의 지위를 가지는 듯했다. 예전에 나가사키 끄트머리에 있는 미나미시마바라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도 일본 밀로 만든 것보다 홋카이도 밀로 만든 것이 고급품으로 대접받았다. 물론 가격도 같은 대접이었다. 이런 분위기의 일본에서 그것도 품종 이름 자체도 왕이라 칭하는 ‘유바리 킹’을 맛본다는 것에 설렘은 당연한 감정이었다.
유바리, 그것도 유바리 이름 끝에 킹을 붙이는 자부심의 끝판왕인 멜론의 맛은 어땠을까? 궁금하지 않나? “혀끝에 부드럽게 달라붙는 고급진(?) 단맛이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맛이었다”라 이야기하지 않겠다. 숙성한 멜론 맛이었다. 유바리 킹 멜론을 찾아보니 캔털루프 멜론 두 가지 품종의 F1 종자였다. 캔털루프 멜론은 네트 멜론의 한 종류다. 껍질에 그물 모양이 있는 것에는 우리가 아는 머스크멜론이 있고 요새 한창 주목 받는 하미과 멜론 또한 네트 멜론이다. 네트가 없는 것도 있는데 양구, 백자, 파파야 멜론 등이 있다. 멜론 껍질에 그물이 있든 없든 공통점이 있다. 멜론은 바로 딴 것이 가장 맛없다는 것이다. 멜론은 일정 시간 이상 숙성을 해야 맛있다. 숙성이 덜 된 멜론은 씨앗 주변만 달다. 식감은 단단한 오이와 비슷하다. 참외라면 달기라도 하겠지만 숙성이 덜 된 멜론은 참외보다도 못하다. 유바리 킹 종자가 외부로 유출된 적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자부심. 멜론에서 씨앗을 채취하면 되지 않겠나 하는 의구심을 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유바리 킹은 F1 종자로 씨앗을 채취해 심어도 그 품종이 구현되지 않는 종자다. 종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원종 종자 또한 협회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치토세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리고 유바리 멜론 협회에서 운영하는 뷔페로 갔다. 유바리시를 지나는 고속도로 나들목을 나와 몇 분 가면 도로변에 매장이 있다. 멜론이 한창 나오는 6월부터 9월 사이만 운영한다고 한다.
멜론는 여름 과일이기에 그렇다. 겨울 홋카이도에서 멜론을 멀리해야 하지만 그냥 먹는다. 성인 1인당 3500엔을 내면 30분 동안 멜론을 무한정으로 먹을 수가 있다. 요금을 내고 자리에 앉으면 시간이 적힌 쪽지와 함께 멜론이 담긴 접시가 놓인다. 30분 카운트 시작이다. 처음에 주는 멜론은 따로 숙성이 잘 된 것이다. 단맛이 입안 전체를 채운다. 먹고 나서는 작은 쟁반에 놓인 멜론을 가져와서 먹으면 된다. 둘이 많이 먹지 않기에 최대치는 세 쟁반이었다. 세 쟁반도 숙성이 제각각이기에 맛에 편차가 심했다. 멜론의 달콤함이 있는 것도, 오이 맛 멜론도 있었다. 멜론 맛을 보면서 예전에 에히메에서 맛본 멜론이 기억났다.
허영만 선생님과 함께 간 자리였기에 좋은 식재료로 한 식사 자리였고 그 끝에 디저트로 나온 것이 머스크멜론이었다. 맛있다는 기억이 있었지만 특별하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유바리 멜론 또한 그랬다. 캔털루프 멜론이었고 숙성이 안 되면 맛없다는 것은 어느 멜론과도 같았다. 멜론 반 통에 아이스크림 올려서 먹는 메뉴를 홋카이도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멜론의 단맛을 아이스크림이 보조해주니 맛없을 리가 없다. 맛없다는 이는 아마도 숙성이 안 된, 아이스크림의 단맛만 본 이가 틀림 없다. 국내에서 먹어 본, 숙성했을 때 먹은 멜론이나 여기 멜론이나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 국내의 머스크든, 하미과든 캔털루프든 숙성해야 맛있다. 숙성한 멜론은 품종과 어디서 재배했는지를 떠나 다 맛있다. 두 가지, 멜론은 먹기 전 두 시간 전에 냉장고에 두어야 맛있다. 오래 두면 단맛이 반감한다. 멜론의 숙성은 통 멜론을 엄지로 눌렀을 때 살짝 들어갈 때가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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