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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ul 17. 2023

맛있는 감자, 맛없는 감자


감자. 쿠팡 식품팀장으로 있을 때 경북 영덕의 유기농 생산자를 AT센터에서 소개받았다. 유기농 생산자를 소개받았다기보다는 내가 찾고 있는 감자 생산자를 소개받았다고 하는 게 맞을 듯싶다. 감자를 팔고 싶었다. 여름에 감자 파는 곳과 생산하는 곳이 차고 넘치지만 팔고자 했던 감자는 없어 찾다 찾다 AT센터까지 연락했다.

2015년 분나는 감자를 찾아 경북 영덕을 찾았다.

내가 찾고 있던 감자는 분이 많이 나는 감자다. 감자에서 분이 나는 이유는 성분 중 수용성 펙틴이 녹기에 감자가 품고 있는 전분이나 당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분나는 감자 중에서도 ‘남작’을 찾았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홋카이도에서 도입한 감자가 바로 남작. 남작이란 이름 붙인 ‘귀족 어쩌고저쩌고’ 하는 ‘썰’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포슬포슬한 맛에만 끌렸다. 남작 대신 영덕 유기농 생산자인 김현상 씨 부부가 심었던 것은 ‘두백’. 한창 주가를 올리던 수미 감자보다 포슬포슬함이 좋았다. 합정동의 이탈리아 식당에 이 감자를 소개했었다. 대표 메뉴인 문어 샐러드에 들어가던 감자를 두백으로 바꾸기도 했었다. 두백은 수미보다 조금 괜찮은 식감의 감자다. 그렇다고 태생이 남작처럼 맛있는 감자는 아니다. 이는 수미도 마찬가지다.

분질 감자인 하령은 힘을 조금만 줘도 부서진다.

감자는 두 가지, 점질과 분질 감자로 나뉜다. 수분이 많으면 점질, 적으면 분질성 감자다. 쪘을 때 포슬포슬함이 강한 것이 분질 감자다. 수미는 두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막 쪘을 때는 분질성을 띠다가 식으면서 점질성이 강해진다. 물론 분질 감자 또한 식으면 바스러지던 성질은 사라지고 쫀득쫀득하게 바뀐다. 만일 감자 샐러드를 한다면 막 찐 것을 부수지 않으면 덩어리져서 점질 감자로 한 것과 같아진다. 즉 감자 샐러드의 부드러움이 사라진다. 앞서 두백 감자가 맛없는 감자라고 했다. 이는 과학에 근거한 이야기다. 식품에 있어 갈색화 반응은 매우 중요하다. 갈색화 반응과 감자도 관련이 깊다. 시중 판매 하는 감자 칩을 보면 하얗다. 감자를 기름에 튀겼음에도 하얀색을 유지하는 이유는 갈색화 반응을 할 성분이 적기 때문이다. 갈색화 반응은 두 가지, 메일라드 반응과 캐러멜 반응이 있다. 당 성분 단독으로 하면 캐러멜, 아미노산과 반응하는 것은 메일라드 반응이다. 감자 칩을 튀길 때 갈색으로 변하는 것은 메일라드 반응이다. 감자 성분 중에 당분과 감칠맛 등을 내는 유리 아미노산이 반응하면 향과 색이 변한다. 그래서 오븐 속 식빵의 겉이, 감자 칩의 색이 갈색을 띠게 된다. 여기서 반응이 더 진행하면 쓴맛이 난다. 탄 맛이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일라드의 과 반응 결과물이다. 두백이나 수미는 감자 칩을 만드는 재료다. 포도당이나 과당 그리고 아미노산이 풍부하지 않기에 감자 칩의 재료로 선택되었다. 가공 적성이 딱 맞는, 즉 찌고, 굽고 등의 요리를 했을 때 감자 맛이 별로여야 칩용 감자가 된다는 의미다. 남작은 가공 적성이 맞지 않는다. 모양도 좋지 않고 삶으면 맛이 아주 좋다. 국내에서 남작 감자 찾기가 싶지 않다. 대신할 수 있는 감자 중에서 하령을 꼽을 수가 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가공 적성이 좋지 않아 맛이 아주 좋다. 농작물에 있어서 가공 적성은 상당히 중요하다. 가공 공장에서 대량으로 매입해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 두백 감자가 강원도를 비롯해 많이 심는 이유가 오*온에서 포*칩용으로 매입을 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감자를 찾는다면 남들 안 심는, 가공하기 힘든 감자를 찾아야 한다.

후나노 사계채 언덕에서 팔던 남작 감자. 남작을 모르면 그냥 감자. 사실은 최고의 맛인 감자다.






홋카이도 여행에서 후라노의 이름난 꽃밭을 갔었다. 비가 오기에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설 때 감자 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바구니에는 모양이 예쁘지 않은 남작 감자가 있었고 작은 봉지에 담을 만큼 담아서 150엔이었다.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했기에 주저 없이 감자를 샀다. 남들은 라벤더 액 등 다른 것을 살 때 오로지 감자만 샀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남작을 삶았다.


감자를 쪄서는 맛을 봤다. 예전 초등학교 시절에 맛봤던 감자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딸아이도 맛보더니 아무 말 없이 감자만 먹었다. 맛있으면 별말이 없다. 밥을 먹은 직후여도 네 개를 삶아 세 개를 바로 먹어 치었다. 남작 감자의 원조 동네에서 원조 맛을 보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남작인 사라진 이유는 맛없어서가 아니다. 가공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모양도 고르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가공 적성이 맞지 않는 감자를 삶으면 감자가 맛있다. 반대로 가공 적성이 맞으면 감자는 맛없다. 지금도 인터넷에 보면 가공 적성에 딱 맞는 감자를 팔고 있다. 언제인가 어느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는 만큼 맛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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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후라노 가던 길에 들린 휴게소의 감자

주문하고 3분 지나 나왔다.

홋카이도의 여름은 감자가 '짱'이었다. 케챱을 주지 않아도 굳이 필요치 않았다. 인생 감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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