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하령 #금선 #수미 #분질감자 #점질감자
쿠팡 근무 시절이었을 것이다. 수미만 알던 시절, 남작이라는 감자 품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일본강점기에 한반도에 들어왔던 감자로 분이 잘나는 감자의 대명사였다. 몇 가지 품종의 감자를 먹어봐도 남작보다 맛있는 것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 50대 이상이 기억하는 ‘포슬포슬’한 촉감 대부분은 남작일 것이다. 나 또한 여름 소나기 내릴 때, 처마 밑 마루 위에서 먹던 포슬포슬한 감자에 대한 추억이 분질 감자인 두백을 판매하게 된 계기였다.
그렇다면 포슬포슬함은 어떠한 느낌일까? 어떤 모양일까? 감자를 삶았을 때부터 점질 감자와 분질 감자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점질 감자는 감자가 수분을 많이 지니고 있어 씹을 때 질겅질겅 씹힌다. 반면 분질 감자는 수분이 적고 수용성 펙틴 함량 또한 적어 감자가 품고 있던 전분이 외부로 미세한 하얀 가루가 표면에 나타난다. 씹는다기보다는 부서진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부드럽다. 인터넷에 포슬포슬한 수미 감자라는 표현을 자주 본다. 수미는 점질성, 분질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 수확량도 좋아 우리가 먹는 감자 대부분이 수미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근래에는 수확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품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감자를 품종으로 팔아보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매입하기 위해 전국을 다녔다. 한 번은 금선이라는 감자를 구하기 위해 전북에 있는 지역 농협까지 찾아갔지만 실패를 했었다. 그때 맛봤으면 했던 감자 품종이 ‘금선’이었다. 새롭게 육성한 품종이다. 휴면기, 감자는 수확 후 60일 이상 지나야 다시 싹이 나는 특성이 있다. 감자를 수확해 바로 심으며 썩는다. 화성을 배경으로 한 마션에서 주인공이 이 휴면기 계산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적 허용이라고 생각이었을까? 금선은 포슬포슬한 감자로 휴면기가 짧아 가을 수확 감자로도 적합한 감자라고 알려져 있다. 시식회에서는 수미보다 포슬포슬하다는 기사를 여럿 봤기에 그 맛이 궁금했었다. 올해 우연히 금선을 맛볼 수가 있었다. 감자를 삶아 보니 분질 감자 특성인 표면이 갈라졌다. 수용성 펙틴은 감자 조직의 뼈대를 형성하는 성분이다. 뼈대가 물에 녹아 나오니 감자 표면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소금 찍어 맛을 보니 부드럽다. 그걸로 끝이다. 고구마처럼 대놓고 달진 않더라도 맛있는 감자는 특유의 향과 여린 단맛이 있다. 그것이 없었다. 농촌진흥청에서 내세운 금선 감자 특성은 재배 적합성이 대부분. 내병성으로 바이러스에 강하고 수확량 좋거니와 모양까지 예쁘다는 것이다. 생산하기 딱 좋다는 것이다. 앞서 포슬포슬한 남작 감자를 언급했다. 지금은 왜 사라졌을까? 사실 사라진 지도 모를 것이다. 본적도 없으니 맛본 적은 없기에 그렇다. 사라진 이유는 간단했다. 생산까지 과정이 수미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면적에 공은 더 들어가도 수확량도 적었다. 손님이 맛이 더 좋아 가격까지 더 쳐주면 사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대부분 남작보다 농사짓기 편한 수미만 심었기에 보기 힘들었다. 맛본 금선은 포슬포슬한데 왜 삶았을 때 맛이 없었을까? 그건 메일라드 반응 때문이다. 메일라드 반응은 유리 아미노산과 당분의 화학전 반응이다. 두 성분이 열을 받으면 급격한 갈색화 반응을 일으킨다. 빵 표면이 갈색이 되고 양파를 볶으면 갈색이 되는 현상이다. 감자 가공품의 대표인 칩 색과 깊은 관련이 있다. 두 성분이 많으면 감자 칩 색이 갈색이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감자 칩인 흰색과 다른 색이 메일라드 반응 때문에 생긴다. 칩을 만드는 감자는 아미노산과 당분이 적은 감자로 튀겨야 색이 잘 나온다. 즉 맛없는 감자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감자가 그렇다. 가공 적성에 맞는 감자를 육성하고 있다. 두백이라는 분질 감자가 있다. 그나마 괜찮다고 해도 태생이 칩 만드는 감자이기에 맛이 별로다.
하령 감자가 있다. 포슬포슬한 감자다. 이 녀석은 분질성이 강하다. 먹어보면 남작처럼 특유의 향과 맛까지 있다. 작년에 기획했던 감자가 이 녀석을 중심으로 한 감자 분류였다. 즉, 볶아 먹는 감자와 삶아 먹는 감자 두 가지로 나누려고 했다. 결국, 생산자 욕심 때문에 진행이 중단되었지만 아마도 진행했으면 우리나라 최초로 감자를 용도별로 판매 했을 것이다. 감자는 점질과 분질로 나뉜다고 했었다. 몇 년 전부터 두 가지를 구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좋은 일이다. 감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품종과 용도로 사는 것은 좋은 일이 맞다.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면 한다. 분질 감자 중에서도 맛이 있는 것과 맛이 덜할 것이 있음을 아는 단계까지 갔으면 좋겠다. 적어도 요리사면 이런 구분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요리사가 찾으면 다른 이들도 찾을 것이니 말이다. 분질이나 점질 구분은 중요하다. 품종을 알면 요리 방법이 달라짐을 아는 이들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구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맛있는 감자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맛있는 감자를 찾으면 맛있는 감자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아질 것이다. 가격 싼 것만 찾으면 가격에 맞는 농산물만 재배할 것이다. 지금은 육종이나 재배에 ‘맛있는 감자’는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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