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깃밥이 2천 원 시대를 열었다. 밥 짓는 쌀의 매입 가격은 작년이나 올해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유통 비용 증가가 쌀 소매 가격을 올렸다. 가스나 전기세, 수도세 등도 올랐다. 오르는 것이 맞기 하지만 너무하다는 감정이 먼저 앞선다. 이유는 공깃밥이 맛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맛없는 밥을 주는 것은 여전하면서 가격만 올린다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가게 사장으로서는 억울함이 있겠지만 사 먹는 이의 입장에서는 맛은 없는데 가격만 올리는 꼴이다. 식당 어디를 가나 밥은 공깃밥이다. 공기에 담아 밥장고에 보관한다. 주문이 올 때마다 꺼내서 내준다. 점심 장사가 끝나면 밥장고에 들어 있던 공깃밥은 저녁 장사 시작할 때까지 거기에 있다가 나온다. 저녁 장사가 끝나면 밥은 밤을 보내고 아침이나 점심에나 상 위에 오른다. 밥을 맛있게 주기 위함이 아니라 운영하는 이의 편리를 위한 시스템이 공기와 밥장고다. 이 둘 사이에서 밥은 숨이 죽고 떡이 지면서 맛은 사라진다. 밥을 먹기 위해 우린 식당에 간다. 밥은 그저 짜고, 달고, 매운 반찬을 먹기 위한 도구로 전락 되었다. 밥을 맛있게 하는 집은 몰라도 반찬 맛있게 하는 집은 안다. 메뉴 선택도 밥이 아니라 볶음이든 탕이든 반찬을 먼저 선택한다. 밥상의 주인공은 밥이다.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찌개를 끓이고 찬을 만든다. 현재의 밥상은 주객이 전도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맛없는 공깃밥을 먹게 되었을까?
1974년 12월 4일, 쌀 자급자족이 지상 과제였던 정부에서 행정 명령이 내렸다. 9분 도로 도정하던 쌀을 7분도 이내로 도정하라는 것과 식당에서 공깃밥 사용을 강제화했다. 지금이라면 불가능했던 명령이 가능했던 까닭은 한창 날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던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이기에 가능했다. 행정 명령을 어길 시 영업 허가 취소나 심할 경우 징역형이나 벌금형까지 가능한 명령이었다. 1976년도에는 6월 29일 이후로 서울시에서 판매하는 식당 밥은 일부 메뉴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름 10.5cm, 높이 6cm의 공기 사용을 의무화했다. 1980년대 기사를 보니 공깃밥 줄인다는 기사를 보면 전에 사용하던 공기 크기가 1cm씩 컸다. 1976년도에 시행을 명했던 일이 지켜지지 않자 1980년대에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다. 아마도 단속하는 이들도 맛없는 공깃밥은 먹기 싫었을 듯싶었다. 현재의 스테인리스 공기 크기와 비슷한 규격이 이때 정해졌다. 공깃밥을 강제하기 전에는 솥밥이나 밥을 퍼줬다고 한다. 현재의 1인 솥밥 시스템은 사라졌던 식당 솥밥의 부활이었다. 공깃밥을 강제한 이유는 쌀 절약이 이유다. 자급자족을 위해서는 덜 먹어야 하지만 밥심으로 산다는 한민족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쌀 부족이 이유였기에 밥의 숨이 살아 있던 밥을 공기에 담았다. 뚜껑이 없던 시절인지라 담는 공기만 작아졌을 뿐 고봉밥은 여전했다. 밥을 담던 커다란 주발이 스테인리스 공기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공깃밥에 뚜껑이 생긴 때가 어느 순간인지는 모른다. 추측하건대 경제 성장이 한창이던 바쁜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면서 생기지 않았을까 한다. 바삐 살다 보니 빨리 먹고 빨리 일해야 했던 시절, 지금처럼 워라벨은 꿈도 못 꾸던, 노조는 빨갱이라 취급하던 시절에는 그저 빠른 것이 장땡이었다. 미리 해놓고, 미리 담아 놓았다가 빠르게 내줘야 했다. 밥장고도 없기에 커다란 보온밥솥 켜켜이 공깃밥을 쌓았다. 늦게 점심 식사라도 가면 식당 종업원이 밥을 공기에 푸고는 뚜껑을 닫고 밥솥에 넣었던 기억이 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밥솥에 담아 놓기에는 양이 적기에 커다란 밥장고를 탄생시켰다. 아마도 김치냉장고처럼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기 제품이 아닐까 한다. 밥장고의 탄생은 밥의 맛을 더 나락으로 떨어뜨린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밥장고는 특별히 밥맛을 기술적으로 떨어뜨린다. 밥장고를 사용하는 장점인 보온력이 밥맛하고는 상극이다. 갓 지은 밥을 공기에 담고는 뚜껑을 닫는다. 밥이 지닌 열기가 빠져나가야 하나 뚜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밥의 열기가 차가운 스테인리스와 접촉하는 순간 공기 중 수분은 뭉쳐서 물방울로 뚜껑에 맺힌다.. 물방울이 커지면 중력에 의해 다시 밥으로 떨어진다. 밥장고는 공깃밥 온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보온을 한다. 밥장고의 열을 지속적으로 받는 공깃밥 안에서는 열기에 수분이 증발했다가 물방울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손님이 뚜껑을 열기 직전까지 말이다. 공깃밥 뚜껑을 열었을 때 뚜껑에 맺힌 물방울은 밥에서 나온 것이다. 무한 반복, 결국 나중에 꺼내진 밥은 밥알이 덩어리가 져 있다. 가끔 공깃밥을 열었을 때 떡진 밥이 이러한 과정 중에 나온 결과물이다. 공깃밥의 시작은 쌀의 자급자족이라는 명분을 위해 강제했지만 자리를 제대로 못 잡았다. 경제 성장기의 미덕인 ‘빠름’과 만나서야 비로소 자리를 잡고 제 역할을 했다. 그때는 서로의 편리성만 보던 시절이었다. 빠르게 주고, 빠르게 먹는 편의만 있으면 되었다. 이제는 아니다. 1970년대 만든 밥공기는 이제 바꿀 때가 됐다. 공기는 버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뚜껑과 밥장고는 사라져야 한다. 적어도 밥을 2000을 받는다고 한다면 말이다. 맛있는 밥을 줘야 하는 의무는 식당 주인에게 있다. 그 의무를 다한다면 내는 2천 원이 비싸지 않다고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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