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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중에서 일본 식당을 소개하는 것을 자주 본다. 번역이 나오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없더라도 불편함은 없다. 진짜 궁금한 일본어 자막은 사진을 찍고는 번역기에 돌려 의미를 파악한다. 방송 중에 들리는 그들의 대화는 사실 궁금하지 않다. 그들이 식재료를 대하는 자세와 방법만 봐도 공부가 된다. 식당의 하루는 주인이 시작한다. 하루에 수백 명이 오든 말든 사장은 주방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네는 장사가 잘되는 순간 사장은 주방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 사장의 하루는 밥을 안치는 것부터 시작이다. 쌀을 씻고, 불리고 가스 불에 올려서 밥을 짓는다. 열에 일곱은 밥을 지을 때 삼베 보자기를 깔고 지었다. 처음에 볼 때는 이해가 안 됐다. 몇 번을 보다 보니 이유를 알았다. 식당에서 밥솥의 위치는 주방 앞, 손님에게 내주기 편한 위치에 있었다. 솥밥을 한 다음 보자기 들어 보온밥솥에 보자기를 들어서 부었다. 한 방에 끝내고는 밥알이 뭉치지 않도록 골고루 저었다. 보자기를 하지 않은 곳은 밥을 하고는 보온밥솥에 한 주걱씩 옮겼다. 밥을 해서 공기에 담아 뚜껑 닫는 우리네와는 너무 달랐다.
한쪽은 최고의 밥맛을 위해 솥밥을 해서 보온밥솥으로 옮기고 한쪽은 최고의 편리를 위해 공기에 담는다. 밥을 대하는 두 나라의 자세가 너무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용의 눈동자가 있다.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이다. 일본에서도 밥맛 좋기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최고의 품종이다. 기회가 있어서 일본에서 재배한 것을 두 번 맛봤다. 명성대로 밥맛이 좋았다. 국내에서는 같은 품종을 해남에서 소식 재배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재배한 것을 맛보니 일본 같은 품종의 쌀과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낫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맛나게 재배한 용의 눈동자로 밥을 지어 공기에 담아 밥장고에 보관한다면 같은 품종이라도 밥맛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될 것이다. 어떤 쌀로 밥을지어도 밥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밥은 생명을 잃기 시작한다. 주방에서 내는 밥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한 한 끼의 식사는 반찬에서 급격한 차이를 보인다. 우린 반찬 수가 많고 일본은 메인 요리 외에는 별 반찬이 없다. 일본 여행에서 어느 식당을 가든 메뉴 사진하고 비슷한 모양새가 나온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퍼서 준 밥이 맛있거니와 쓸데 없는 반찬 없이 메인 요리만으로도 충분했다. 국내에서도 돈까스 먹을 때 별 반찬이 없어도 먹는다. 생각해보면 돈까스는 밥을 퍼주는 경우가 많다.
사회 생활한 지 거의 30년이 다 돼가고 있다. 직장 생활 하면서 수많은 점심을 사 먹었다. 오징어 볶음을 좋아한다. 주문하면 몸통은 어디 가고 대부분 날개나 다리 몇 개에 양파만 잔뜩 들어 있다. 양파 볶음이지 오징어 볶음이라 하기 힘들다. 집에서 볶음을 하면 다른 반찬을 차리지 않는다. 오징어가 듬뿍 든 오징어 볶음만으로 밥을 먹는다. 식당에서는 손도 안 가는 반찬 몇 가지와 대충 먹다 나온 적이 많다. 설렁탕을 주문하면 두서 가지 김치가 나오고 고기 서너 점 든 것이 나온다. 나온 김치 중에 손도 안 대는 것도 있지만 원가에 포함되어 있다. 다양한 김치를 내야 하니 원가가 높아져 고기를 많이 주지 못하니 최대한 얇게 썰어 많은 것처럼 낸다. 육회비빔밥을 주문하면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비빔밥인데! 밥에 반찬이 다 들어가 있는데! 그런데도 따로 반찬이 나온다. 반찬 차려지는데 원가가 많이 드니 비빔밥의 주인공인 육회는 눈물만큼 들어간다. 전주의 유명한 비빔밥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가면 완주군 고산면이 나온다. 지역에서 운영하는 정육식당 두 개가 나란히 바라보고 있다. 두 곳 모두에서 육회비빔밥을 주문하면 전주보다 두세 배 많은 육회가 들어 있다. 반찬은 서너 개 수준이다. 육회비빔밥을 주문한 까닭은 육회에다가 비빔 재료를 더해서 먹겠다는 의지다. 육회 아주 조금에 성의 없이 내는 반찬과 채소 비빔밥을 먹기 위함은 아니다. 심지어 밥을 보관한 지 시간이 꽤 흐른 것을 내줄 때도 있어 잘 비벼지지도 않았던 때도 있었다. 무엇을 위해 식당에 간 나 싶었다. 식당 주인은 무엇을 위해 나한테 저런 상을 차렸나?을 생각해보면 답은 하나다. 그냥 매출 올려주는 사람 ‘1’이었을 뿐이다. 차려지는 밥상의 밥은 공깃밥이고 잘 안 먹는 반찬만 있던 식당 밥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차리기 위해 소비되는 원가가 너무 높다.
뉴욕 맨해튼에 옥동식 세프가 돼지 곰탕을 만들어 팔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 소개될 정도로 핫한 곳이 되었다. 옥동식 세프가 처음 서교동에 오픈할 때 서로 이야기한 것이 국물과 밥에 대한 궁합이었다. 지금까지 탕을 내주는 99.99% 식당의 밥이 아주 좋지 못했다. 60년 업력의 설렁탕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다. 손님은 거의 나 혼자.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 손님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시점이었다. 자리 앉아 설렁탕을 주문했다. 탕이 나오고 김치 한 가지와 공깃밥이 나왔다. 뚜껑을 여니 밥이 누렇게 뜨려고 하는 수준이었다. 젓가락으로 밥을 집으니 공기 모양 그대로 딸려 올라왔다. 도대체 밥장고 안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가름이 안 되었다. 국물이 있으니 대충 말아 먹고 나왔으나 참으로 맛없게 먹은 설렁탕이었다. 나쁜 경험을 해도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쁜 경험을 좋은 경험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돼지 곰탕 오픈할 때 밥에 유독 애착을 했다. 돼지 곰탕의 성공 비결에는 토렴도 한몫했다.
토렴은 과학이다. 실상에서도 우리는 과학적으로 왜 그런지는 몰라도 알고 있는 상식, ‘라면에 찬밥’이 더 맛있다는 사실은 안다. 왜 찬밥을 말았을 때 더 맛있게 느꼈을까? 이는 쌀 전분부터 시작하면 이해가 쉽게 된다. 전분은 열을 가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단단하다. 물과 열을 만나면 물성이 부드러워지고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생 밀가루나 반죽은 못 먹지만 빵이나 수제비는 먹을 수 있는 거처럼 말이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상태가 ‘호화’다. 호화는 열과 수분을 얻어야지만 가능하다. 이와 반대가 ‘노화’다. 밥이 식어 단단해지거나 빵이나 떡 겉이 단단해지는 현상이다. 이는 전분이 호화할 때 받은 열과 수분을 내주면서 노화는 진행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수분을 내준다는’ 것이다. 수분을 내주었기에 밥의 표면에는 수분이 빠져나간 공간이 있다. 이 공간에 따듯한 국물에 밥을 말면 국물이 공간을 찾아 스며든다. 반면 호화가 된 따듯한 밥은 국물이 스며들 공간이 없다. 국물이 스며들지 못하니 밥과 따로 논다. 토렴은 라면에 찬밥을 마는 것과 같다. 어느 정도 식은 밥을 따듯한 국물에 여러 번 말면서 노화 진행하던 밥을 뜨거운 국물로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 사이에 국물이 밥알로 스며든다. 뜨거운 혹은 묵은 공깃밥으로는 낼 수 없는 맛이 있다. 편의점에서 라면 먹을 때 즉석밥을 데워 놓고 면을 먹는다. 면을 다 먹을 즈음이면 전자레인지에 호화가 되었던 밥은 다시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 적당히 노화가 된 상태이기에 밥을 말면 딱 맞았다. 굳이 토렴하지 않더라도 먹는 사람은 가장 맛있을 때를 찾아서 먹었다. 그런데도 우리네 식당은 국은 잘 끓여 놓고 마지막 방점을 제대로 찍지 못하고 있다. 굳이 사자성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마무리를 참으로, 진짜로 못하고 있다. 95점 이상으로 끓인 탕의 마무리로 국물에 걸맞은 밥을 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옥동식은 그 어려운 걸 해냈으니 뉴욕에 지점 내는 것이 당연한가 싶기도 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전에 하던 그대로 하려는 그놈의 관성 때문에 쉽지 않다. 오늘도 어제처럼 똑같이 공깃밥을 내줄 뿐이다. 조금 더 맛있게 먹으려는 손님은 있어도 더 맛나게 내려는 쥔장은 참으로 드물다. 밥을 내주는 시스템만 바꿔도 어제보다 분명 맛이 더할 것임에도 하지 않는다. 침대만 과학이 아니다. 토렴도 과학이다. 토렴까지는 아니어도 공깃밥만 치워도 분명 맛있어질 것이다. 관성과 귀찮음을 이겨내야 어제보다 맛있는 한 끼를 낼 수가 있다. 내가 국밥 집을 한다면 나는 토렴식으로 할 것이다.
얼마 전 제주 출장길에 저녁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100번 정도 간 제주에서 손에 꼽을 만한 저녁이었다. 비싼 음식은 아니었다. 제주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가격은 1만 2천 원. 요새 가격으로 비싸지도 싼 가격도 아니다. 주문하니 밥이 솥밥으로 나왔다. 내용물이 튼실하게 든 국과 반찬 네 가지가 나왔다. 그릇은 개성 있는 도자기 그릇이었다. 솥밥이나 도자기로 내서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다른 지면이나 글에서 적은 내용을 현실에서 마주했기에 반가웠다. 반찬 수를 줄이고 메인에 집중 해달라는 글을 여러 번 썼었다. 반찬 수가 적으니 주문한 국의 내용물이 충실했다. 국만 있어도 될 정도였다. 나온 반찬은 허투루 만들지 않아 맛이 좋았다. 게다가 국과의 간의 조화가 좋았다. 싱거운 국과 어울리는 찬의 짠맛이었다. 불필요한 찬이 없으니 골고루 젓가락이 갔다. 밥이 맛있고 반찬 수를 줄이고 메인 음식에 집중한 완성도 높은 상차림이었다. 밥 먹고 나오면서 잘 먹었다는 소리가 자동으로 나왔다. 바람은 별거 아니다. 공깃밥을 2천 원, 3천 원을 받든 상관없다. 다만, 가격에 걸맞은 가치를 달라는 것이다. 음식에서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긴 글에서 바람은 단 하나다. 공깃밥 대신 퍼달라는 이야기다. 많은 반찬보다는 맛있는 반찬 서너 가지가 좋다는 그런 바람이다. 비빔밥은 그에 걸맞은 밥을, 설렁탕이나 국밥은 그에 맞게 달라는 이야기다. 공기 안에서 떡진 밥 말고 말이다.
이게 큰 욕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