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D의 식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영 Feb 05. 2016

발렌타인 초콜릿

카카카봄.. 실키봄

초콜릿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어디일까? 한국 사람들은 아마도 미국을 떠올릴 것이다. 전쟁통에  ‘기브 미 쪼꼬’를 외치며 미군 트럭을 쫓아가면 적선하듯 던져주고, 야시장에서 고급으로 취급하던 물건도 미제 초콜릿이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믿어왔던 그 초콜릿은 진짜 초콜릿이 아니다. 이는 일종의 유사 초콜릿이라 분류할 수 있다. 초콜릿의 종주국이라 자부하는 벨기에에선 ‘초콜릿’은 카카오 씨앗에서 추출한  ‘카카오 버터’ 외에 다른 대용 유지가 들어가면 '초콜릿’이라 부를 수 없노라 아예 법에 명시를 하고 있다. 독일의 맥주 순수령 만큼이나 엄한 규정인 동시에 벨기에 초콜릿 산업의 힘과 자부심이 담뿍 담겨 있는 원칙이기도 하다. 

진짜! 레알! 초콜릿이라면 성분은 단순하다. 오히려 단순해야만 진짜 초콜릿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사랑을 고백할 때, 초콜릿과 꽃을 건네는 이유 말이다. 이것저것 뒤섞이지 않고 순수 자체를 체온으로 녹여야 하는 관능성과 야생성의 상징을 초콜릿과 꽃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고백할 때 헝겊의 조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초콜릿 선택에도 정성을 다하는 것. 그것의 사랑에 대한 예의다. 

시중에는 ‘리얼’을 가장한 유사 초콜릿이 속내엔 어울리지 않게 과한 포장으로 소비자들을 현혹시킨다. 시중 대다수의 초콜릿은 초콜릿 정체성의 핵심 재료인 코코아 버터가 아주 조금 들었거나, 아예 전량 식물성유지나 팜유가 들어가 있다. 초콜릿은(진짜라면) 사람의 체온에도 쉽게 녹는 카카오 버터의 성질 때문에 모양을 잡기에도 쉽지 않고, 유통기한도 오래 잡을 수도 없다. 결정적으로 카카오 버터는 식물성 유지나 팜유보다 훨씬 더 비싸기 때문에 그야말로 이문이 크게 남질 않는다. 

시판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어보자. 그 성분표를 보면 재료는 카카오 분말, 식물성 유지, 팜유, 코코아버터, 합성챡향료, 아라비아 검, 레시틴, 설탕, 물엿, 바닐라향 등 10개의 재료가  들어간다. 앞에서 말한 그 단순한 초콜릿의 성분에서 벗어나, 무언가 성분 표시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초콜릿이라기보다는 카카오 분말이 들어간 공산품일 뿐이다. 우리는 여태껏 그것을 초콜릿이라 믿어왔고 먹어왔다. 다량의 지방과 설탕으로 버무려진 유사 초콜릿은 충치와 비만의 원인으로  지적받아왔다. 사탕과 함께 어린이들에게 먹여서는 안 되는 식품으로까지 추락한 것이 초콜릿, 아니 ‘유사  초콜릿’이다. 실제로 경화유로 만들어진 유사 초콜릿을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해진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초콜릿 한 판을 먹으면 식용유 한 숟가락을 그대로 삼키고 있으니 텁텁하고 느끼하다. 

우리는 본래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치장한 것을 분장이라고 한다. 분장은 주어진 역할을 소화하기 위한 연극의 장치다. 분장을 지운 배우는 다시 평범한 자기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분장을 하고 있는 동안은 그 사람이 아니다. 공산품 초콜릿은 분장을 한 초콜릿이다. 다만 유사 초콜릿 가공품에 맡겨진 역할이 ‘리얼 초콜릿’ 일뿐, 분장이 지워지는 순간 초콜릿이 아니다. 

유사 초콜릿 맛에 익숙한 소비자가 실키봄을 입에 넣으면 처음에는 낯선 맛일 것이다. 

실키봄은 표면은 딱딱하지만 혀에서 부드럽게 녹는다. 생긴 것으로 봐서는 전혀 ‘실키’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입 속에 넣는 순간  녹아내린다. 뚝뚝 잘라낸 무뚝뚝한 몸체에 그런 부드러움의 반전이 ‘실키’란 이름으로 숨겨져 있다. 표면의 카카오 파우더가 쌉쌀한 맛을 툭하고 던졌다가 입안의 온기로  녹아내리기 시작하면 부드러운 단맛이 스며온다. 이를 ‘내유외강’의 맛이라고 부르면 딱 맞겠다. 이런 반전의 맛은 72시간의 숙성 과정에서 나온다.  3일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야만 실키 봄이란 이름으로 쇼케이스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오로지! 카카오 버터를 기본으로 한 초콜릿과 헤이즐넛(개암) 페이스트로 반죽을 한 뒤, 24시간 1차 숙성 과정을 거친다. 1차 숙성 반죽을 판(몰드)에 붓고 반듯하게 잘라낸 뒤 순도 100%의 코코아 파우더를 듬뿍 묻혀 냉장고에서 또 긴 시간을 견딘다. 숙성은 초콜릿의 조직을  안정화시키고, 재료끼리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다. 꽃이 필 시간, 초콜릿이 익어가는 시간. 그 시간만큼 기다릴 줄 알아야 사랑이 완성되듯이 말이다. 반죽을 하고 바로 기계로  뽑아내는 유사 초콜릿 가공품의 생산 과정과는 달리 미련하게 시간을 견뎌야 한 조각의 실키봄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카카오봄의 초콜릿은 초콜릿이어서 비싸다. 물론 공산품 초콜릿에 비하면 말이다. 하지만 시간과 재료의 힘은 우리의 혀를 배신하지 않는다. 여태껏 초콜릿의 이름으로 배신당했던 당신의 혀를 위로할 수 있는 맛. 


매거진의 이전글 감자조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