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거제는 대구
조선소의 도시 거제. 커다란 조선소를 품을 만큼 섬의 규모가 제주도 다음이다. 섬을 한 바퀴 돌려면 한나절 걸릴 정도다. 몇 없는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 두 명의 대통령이 나온 곳이 또한 거제다. 겨울의 거제는 대구다. 금어기인 대구를 잡을 수 있는 두 개의 항구 중 하나가 거제에 있다.
바다에 겨울이 오면 대구는 상대적으로 따듯한 진해만을 찾아온다. 진해만에서 산란하고는 러시아 해역으로 돌아간다. 국내산 대구는 한때 금값에 버금갈 정도로 비쌌다. 닥치는 대로 잡았기에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방류 사업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어느 정도 자원이 회복되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거제 외포항. 차를 주차하고는 약 100m 정도 거리에 임시 텐트를 치고 생대구와 말린 대구를 파는 곳 구경에 나섰다. 거제 외포항과 창원 용원항 두 곳만 금어기의 대구를 잡을 수가 있다. 그것 또한 무한정 잡을 수가 있지는 않다. 전에는 없던 표식이 꼬리에 달려 있었다. 처음에는 외포항 대구라는 표식인 줄 알았다. 흑산도 홍어임을 알리는 표식처럼 말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니다. 배마다 잡을 수 있는 대구 수량이 있다고 한다. 잡은 대구는 표식을 달아야 경매에 올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알과 정소는 방류 사업단에서 채취한 다음이다. 잘하는 일이다. 애써 방류 사업한 결과를 또다시 무분별한 남획으로부터 지키는 일이다. 그래야 다음 세대도 대구를 맛볼 수 있다. 구경하러 다니다가 몸체가 날렵한 수컷 한 마리를 골랐다. 크기에 따라 한 마리에 4~7만 원 사이다. 대구는 보통 탕이나 찜 요리가 주다. 회로도 먹기는 하는데 딱히 권할 맛은 아니다. 주로 먹는 회의 쫄깃함은 없고 물컹거림이 대구회의 맛이다.
간혹 낚시를 가면 백 번에 한 번쯤 목덜미 쪽 부위를 회로 먹을까 말까 했었다. 커다란 수컷 대구 한 마리를 골랐다. 포를 떠서는 생선가츠나 전을 부치면 별미 중의 별미가 된다. 별다른 솜씨를 부리지 않더라도 맛있게 만들 수가 있다. 솜씨가 좋으면 더 맛있을 수가 있겠지만 없더라도 별 상관없는 게 좋은 재료로 만드는 음식은 맛있다. 포를 뜬 대구살에 소금만 치고는, 후추는 뿌려도 그만 안 뿌려도 그만이다. 신선한 대구는 비린내가 ‘일’도 없다. 밀가루나 전분을 묻히고 달걀 푼 것에 담가 앞뒤로 노릇하게 구우면 맛있는 대구전 완성이다. 생선가츠는 손이 더 가지만 전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요리다. 살살 부서지는 대구전은 겨울 별미다.
거제 고현 시장은 한 번 취재했었다. 2년 전 겨울이었다. 별생각 없이 와서 돌아다니다가 다음날 장날만 보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모든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느 정도 예측하며 일을 한다. 하지만, 예측하기 힘든 일이 날씨다. 장흥에서는 대설 특보가 그랬고, 같은 따듯한 남쪽인 거제에서는 한겨울의 여름철 호우 경보처럼 내리는 비에 오일장 취재가 불발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자료 조사를 해보면 고현시장 5, 0으로 장이 선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전날 4일 거제면 오일장 취재를 하고 다음 날인 5일 고현시장까지 취재하면 딱 맞겠다 싶었다. 거제면 오일장은 작았다. 면사무소와 거제면 시장 사이의 몇십 m 정도 길이의 골목에 장이 섰다. 장은 작았지만 그나마 위안은 사람이 꽤 많이 몰렸다는 것. 거제면 시장의 특징은 면사무소 쪽 골목 초입에 자리 잡은 할매들이다.
문치가자미며, 감성돔 등 잡은 것을 저렴한 가격에 판다. 문치가자미는 도다리로 판매를 한다. 거제, 통영, 남해, 고성은 문치가자미를 도다리라 한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도다리쑥국에는 문치가자미는 있어도 도다리는 없다. 가자미 쑥국이다. 남쪽의 시군 오일장 중에서 가장 작지 싶을 정도로 구경거리가 적다. 구경하는 데 5분이 걸리지 않는다. 거제면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바로 고현 시내다. 이튿날 고현 장날을 기대하고 장터에 들어섰다. 장날이 아니었던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다. 고현 장날은 없었다. 2년 전 폭우 때문에 장이 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없던 것이다. 잘 못 알고 있었다. 주차장 장터가 그때나 지금이나 오일장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다.
고현시장은 분식의 시장이다. 보통 시장에 두어 군데의 분식점은 있다. 여기는 두어 군데가 아니라 대충 세어봐도 열 곳은 되어 보였다. 김밥, 떡볶이, 어묵, 튀김 등 메뉴는 대동소이. 김밥의 가격이 싸다. 김밥 한 줄 1,500원이다. 꽤 괜찮아 보이는 김을 사용함에도 저 가격이다. 어디를 가나 떡볶이 판이 가득하다. 오전임에도 어는 곳이나 가득 담겨 있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방증.
채소는 주차장 장터에서, 횟감은 나란히 붙어 있는 곳에서, 지역의 별미인 왕우럭조개를 비롯해 굴이나 조개 등을 파는 곳도 따로 있다. 조개를 파는 골목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굴을 봤다. 바위굴이라는 칭하는 커다란 굴이다. 거제는 왕우럭조개를 비롯해 잠수부들이 따는 조개가 꽤 있다. 수심 20m 권에서 채취하는 바위굴 또한 잠수부가 채취하는 굴이다. 거제와 통영에서 양식하는 굴은 바위굴과 다른 참굴이다. 바위굴은 참굴보다 깊은 수심에 자라기에 껍데기가 두껍다. 가격은 그날 시세는 kg 5,000원으로 굴 너덧 개 정도다. 먹는 방식은 참굴과 같다. 다만 커다란 몸체만큼 맛 또한 풍부하다. 참굴과 달리 한여름에도 식용할 수 있다.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는 벚꽃굴과는 다른 맛과 향을 지닌 것이 바위굴이다. 거제 고현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별미다.
시장을 얼추 봤다면 순댓국 한 그릇 하자. 경남지역은 순댓국보다는 돼지국밥이 대세지만 고현시장에서만큼은 순댓국이다. 잘하는 순댓국집은 새우젓만 보면 된다. 새우젓이 국물 없이 새우만 보이면 그 집은 제대로 하는 곳이다. 새우젓을 사서 물과 소금, MSG를 넣고 양을 불린 곳은 새우젓에 국물이 흥건하다. 그런 곳은 순댓국도 원가 생각해서 건더기 또한 부실한 곳이 많다. 두 번째로 봐야 하는 것이 밥이다. 공깃밥 내주는 곳 치고 제대로 하는 곳이 드물다. 토렴식으로 밥을 내는 곳은 기본 이상 하는 곳이 많다. 이 두 가지 모두를 하는 곳이 시장 내 충남식당이다. 내장과 순대를 섞은 국밥을 주문했다. 토렴한 밥이 든 순댓국은 뚝배기는 건더기가 한가득하다. 다대기를 넣기 전 국물을 맛봤다. 고소한 돼지 뼈 국물이 참으로 괜찮다. 다대기와 새우를 넣고 간을 맞춘다. 토렴한 밥이 육수를 가득 품고 있다. 공기 안에서 서로 달라붙어 있는 밥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부드럽게 잘 삶은 내장의 맛이 아주 좋다. 전국에서 먹어 본 순댓국 중에서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맛이다. 충남식당
폼생폼사,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외포항의 대구탕이 딱 폼생폼사다. 차림에 신경 쓰다 보니 정작 주인공인 대구탕은 부실하다. 탕이 메인이 되어야 하지만 열 가지의 찬을 내야 하니 원가가 높아진다. 탕을 보면 대구 덩어리 하나에 정소 조금이 다다. 그리고는 가격은 2만 원이다. 탕이 좋으면 찬은 김치 하나 정도면 된다. 아쉬우면 대구의 고장이니 알젓 정도면 된다. 하지만 대충 썬 채소에 시판 소스 뿌려서 내는 샐러드까지 내다보니 탕을 허투루 낸다. 거의 2년에 한 번 정도 외포에서 대구탕을 먹는 듯싶다. 외포 대구탕은 이번이 마지막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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