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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Mar 20. 2024

버금농산물?

못난이 농산물은 분명히 있다.

#못난이농산물

#MD의식탁

못난이 농산물은 분명히 있다.

못난이 농산물은 있다. 분명히 있지만, 사람들이 이야기는 못난이와 나의 못난이는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채소나 과일의 미덕은 맛이다. 농산물에서 못 났다는 것은 맛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못난이 농산물은 외형만으로 가치를 판단한다. 농산물을 모양으로 골라야 한다는 잘못된 상식을 말로 그리 표현한다. 진짜 고쳐야 할 표현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이들은 이런 이들이다. 글을 쓰거나 방송에서 말을 할 때 모양 반듯한 것을 고르라고 강조하는 이들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당연하게 하는지 따져 묻고 싶다. ‘반듯하다’라는 모양을 표현하는 형용사다. 대상의 형태, 색깔, 질감을 표현한다. 예쁘다, 빨갛다, 노랗다, 길다, 뚱뚱하다, 동그랗다, 네모지다 등 모두가 ‘형태’만을 이야기한다. 어디에도 식재료가 가져야 할 절대 미덕인 맛은 표현하지 못한다. 반듯한 것이 곧 맛있는 것은 아니다. 보기 좋은 떡은 보기만 좋을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왕이면 다홍치마’는 치마 고를 때나 쓰거나 아니면 음식을 다 만들고 예쁘게 담을 때나 써야지 식재료를 고를 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음식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예쁜 거 고르세요”라고 하는 순간 “나 무식해요, 나 아는 것 없어요” 하는 듯싶다. 시장 볼 때 상처 난 것이 저렴하다면 그것을 산다. 며칠 내에 소비한다면 가격 저렴한 것이 낫다. 상처 난 부위만 도려내면 요리할 때 아무런 상관이 없다. 칼질 해야 하는 채소라면 더 그렇다. 

여행자의 식탁이라는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판매하는 것은 현재의 관점이라면 못난이가 많다. 사과도 상처 나고 흠이 나 있는 것을 판다. 귤도 12월 제철에 딴, 생채기 난 것만 판다. 겉이 반질반질한 귤은 팔지 않는다. 내가 파는 귤은 향기롭다. 물론 다른 귤도 향이 있다. 향의 강도가 다르다. 강렬한 향이 꽤 오랫동안 지속한다. 겨울에만 딸 아이와 거의 40kg을 먹어 치었다. 당도는 다른 것보다 떨어진다. 단단한 신맛이 단맛과 어우러져 입맛을 당긴다. 앉은 자리에서 예닐곱 개는 그냥 먹는다. 보통 과일은 당도와 외형만 우선한다. 과일이 단맛만이 능사가 아니며 단단한 신맛과 향긋함이 있어야 과일의 성격이나 품격이 제대로 드러난다. 할인점의 황금 당도니 혹은 당도 보장제 등의 마케팅을 보면 답답하다. 과일이 가진 수많은 장점을 당도 하나로 귀결시키는 마땅치 않은 마케팅이다. 많이 팔지도 못해도 내가 가진 생각을 쇼핑몰에 투영한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못난이라는 맛을 사용하지 않는다. ‘흠과’ 정도는 사용한다. 근래에 들어 못난이 농산물 파는 것을 무슨 봉사활동 하는 것처럼 뉴스에 나오곤 한다. 심지어 전문 사이트까지 몇 개까지 있을 정도다. 실제 들어가 보면 그냥 농산물 사이트이지 싶을 정도로 별 내용이 없어 보였다. 그냥 못난이 농산물을 향기로운 미끼로 쓰는 것으로 보였다. 이 글을 쓰면서 ‘못난이’라는 단어를 5번 이상 썼다. 이 말 대신 다른 표현은 없을까? 사람의 외관을 비하하는 말은 예전부터 썼어도 고쳐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앉은뱅이 밀은 키 작은 밀로 고치고 있다. 몇 날 며칠, 몇 달을 못난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없을까? 생각해봤다. 농산물 본연의 가치인 맛을 오롯이 품고 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봤다. 몇 가지가 눈에 띄었지만 ‘버금’이란 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버금’, 첫 번째 또는 으뜸의 다음을 뜻하는 단어가 버금이다. 농산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서 한 가지인 외형이 다를 뿐, 농산물의 원래 가치는 그대로 지니고 있기에 으뜸 다음의 의미로 버금이 좋지 않을까 한다. 

못난 것이 아니라 외형이 다를 뿐이기에 이 말이 좋다고 생각한다. 외형만 보고 생산하기에 우리는 주지 않아도 될 것을 더 주게 된다. 과수의 겉을 싸는 봉지 작업이라든지, 오이, 애호박을 똑같이 생산하기 위해 필름을 씌어서 생산한다든지, 깻잎 두께를 더 주기 위해 비료를 한 줌 더 준다든지의 번잡한 일을 한다. 모든 것이 맛하고는 상관없는 형태적 만족을 위한 행위로 안 해도 되는 일이다. 세상에 못난 농산물은 형태가 못난 것이 아닌 맛이 못난 것이다. 이제는 바꿔서 버금 농산물로 부르자. 좋지 않나? 모양이 반듯하지 않더라도 반듯한 것과 맛은 같은 버금 농산물! 

#버금농산물

얼추 식재료 관련한 원고를 다 썼다. 그중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 채소편인 듯싶다.

#음식 #음식강연 #음식인문학 #식품MD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167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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