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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un 11. 2024

지극히 미적인 시장_영해

영해는 영덕

경상북도 영덕, 울진의 지역 특징은 ‘길다’라는 것이다. 뭐가 긴가? 남과 북이 참으로 길다. 해안가를 따라 군의 경계를 위아래로 오가는데 한참이 걸린다. 영덕은 대략 40km, 울진은 59km다. 긴 도로여도 드문드문 산등선이 가리기는 해도 동해를 끼고 달리는 길의 풍경이 좋다. 영덕에 유기농 생산 농가를 방문할 겸 영해 오일장에 맞추어 다녀왔다.

영덕 대진항 주변의 은하수

영해장은 오랜만이었다. 매년 생산자를 찾아 여름 초입에 방문했어도 일부러 오일장 일정에 맞춘 것은 5년 만이다. 2019년 6월 오일장에 다녀온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의 영해 오일장은 흥이 넘치는 시장이었기에 그 기대를 하고 오일장을 찾았다. 여전한 흥이 있었지만 마음 한쪽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그라졌다!” 5년 전과 다른 쇠함이 눈에 띄었다. 글을 쓰기 전 내 느낌이 다르기를 바라며 영덕의 인구수 추이를 찾았다. 예전보다 약 3,000여 명이 줄었다. 시장에서 받았던 느낌이 맞았다. 이웃한 영양은 여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만 사람이 복잡거리는 나라 우리나라다.


영해장은 5, 0장이다. 강구도 장이 서는데 영해장의 1/3일 수준으로 4, 9장이다. 강구장에 대한 기억은 볼 거 별로 ‘없다’이다. 영해장은 상설시장에 설치한 오일장터 주변으로 열린다. 한 측은 수산물이 자릴 잡고 나머지는 농산물이다. 영덕은 대게만 유명한 동네, 대게만 있을 법한데 실은 그렇지 않다. 다양한 농산물이 나는 동네다. 게다가 가을에는 이웃한 청송, 영양, 봉화와 함께 송이가 많이 나는 동네가 이 동네다. 가을에는 자연산 버섯 사러 가기 좋은 시장이다. 가을에 버섯이 좋은 동네는 봄에 나물 좋은 곳이기도 하다. 계절 따라 시장 볼 때 제철을 따라 다니면 같은 가격으로 빛나는 맛을 살 수가 있다. 사실 6월은 맛이 예매한 시기. 봄이 들어가고 여름이 나오는 시기인지라 5월과 6월은 맛이 없다. 6월보다 맛이 7월은 더 없고 8월과 9월은 그다음이다. 10월이 돼야 비로소 만물에 맛이 차기 시작한다. 장터에는 감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생산지 가면서 본 들판의 감자밭에는 아직 꽃펴 있는 것이 많아 보였다. 시장에 나온 감자는 하우스 이거나 터널 재배한 것이 대부분일 듯싶다. 원래 6월은 매실이 시장에 차고 넘쳤다. 어느 시장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매실 열풍이 사라진 지금은 가격도 내려가고 보이는 양도 예전보다 적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천년, 만년 가는 게 드물다는 말이 매실을 보며 실감이 났다. 

영해시장은 회 골목이 있다. 회 떠 주기만 하는, 주로 물가자미 회를 떠주는 곳으로 약간의 채소와 함께 주는 집이 여럿 몰려 있다. 가격은 작은 바구니에 만 원으로 시장 내 보리밥집에 가면 2,000원만 내고 먹을 수 있다. 물론 보리밥이든 다른 메뉴를 먹어야지만 가능하다. 이른 아침임에도 손님이 간간이 있다. 아마도 포장을 해서는 집에서 회무침이나 회국수를 할 것이다. 돈 만 원으로 횟밥과 국수, 물회를 만들어 먹을 수가 있다. 간혹 물 좋은 고등어도 바로 회를 썰어 놓기도 했다. 만 원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시장을 다니다 떡 한 봉지 생산자에게 주려고 샀다. 시장을 벗어나기 전 완두콩을 조용히 까는 할매가 눈에 들어왔다. 완두는 중앙아시아와 지중해가 원산지로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영양이 어쩌고저쩌고 할 생각은 없다. 밥에 넣어 먹거나 쪄 먹으면 맛있다는 이야기만 할 뿐이다. 맛있으면 된 거 아닌가? 맛있으면 0 칼로리라지? 한 봉 5천 원이다. 할매들의 특징은 돈을 내밀고 가만히 있어도 덤을 준다는 것이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시간상 내가 개시였을 듯싶었다. 

오랜만에 찾은 영해시장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지방의 작은 군 오일장이 비슷할 처지일 것이다. 시장에는 사람이 있어야 재밌다. 시장은 동네 사람이 찾는 것도 있지만 외부인의 출입이 잦아도 흥성한다. 곧 여름이다. 여름에 시장은 덥다. 대신 마트에 없는 정과 가격은 있다. 

영덕에 갈 때마다 들리는 식당이 대진항 앞 돌고래횟집이다. 매번 여기서 꼭 한 끼는 먹는다. 두 끼를 먹든 한 끼를 먹든 한 끼는 꼭 먹는다. 이 집을 선택하는 이유는 고추장이 첫 번째다. 집 고추장으로 색이 시커멓다. 시판 고추장의 빨간색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색이다. 고추장 색이 진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의 맛이 쌓였다는 증거. 빨갛던 고추장 색이 시간이 지나면서 빛나던 색은 빛나는 맛으로 바뀐다. 그 고추장을 사용한다. 회가 많다는 것이 두 번째다. 회는 매번 바뀐다. 처음 왔을 때 먹었던 것이 횟대였다. 횟대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 부시리, 가자미, 성대 등 매번 바뀌었다. 게다가 주는 회 양이 공깃밥 양하고 비슷하다. 회도 좋고 양도 많다. 세 번째는 반찬을 허투루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식해만 먹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만난 식해를 내줬다. 세 가지의 이유가 있어 여기를 매번 찾아간다. 나에겐 찾아갈 이유가 충분한 곳이다.     


 #음식 #음식강연 #음식인문학 #식품MD #오일장전문가

https://brunch.co.kr/publish/book/5634


당분간은 오일장 취재를 안 할 생각이다.

7월은 장마와 무더위로 모든 음식에서 힘이 빠질 때.. 가끔 강원도 정도 할까? 말까 정도다..

본격적인 시장 취재는 9월말에 다시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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