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새벽시장외 횡성과 홍천 오일장
오후 1시 30분. 집에 돌아온 시간. 새벽길을 달려 원주 들렸다가 횡성 다시 원주 그리고 홍천 오일장까지 들렸다가 온 시간이다. 집을 떠난 시간은 오전 5시 20분경. 원주 새벽시장에 도착하니 7시 조금 넘었다. 새벽녘이어서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았다.
두 달 만에 찾은 원주 새벽시장. 유월과 달리 썰렁하다. 8월에 사람은 에어컨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전혀 활기가 나지 않는 시기. 뙤약볕 아래 작물은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기를 못 피는 것은 당연지사. 24시간 내내 습식 사우나 환경, 시기가 시기인지라 모양만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을 뿐 맛은 맹한 맛. 그나마 더위를 좋아하는 가지나 오이의 과채류만 조금의 활기를 띤다. 그저 삶을 연명할 뿐 봄의 활력이나 가을의 충만함을 느끼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기다.
8월에 나는 것에서 맛이 제대로 드는 것은 거의 없다. 깻잎이나 오이, 가지 등의 과채류를 비롯해 감자 정도 외에는 복숭아, 수박, 자두도 이 시기에는 수분감만 느낄 뿐 제대로의 단맛 보기는 애당초 포기했야 한다. 비가 많이 와도 문제, 안 와도 문제 뭐든 날씨를 핑계 댈 수밖에 없는 8월이다. 입추가 지나 밤이 선선해져야 맛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새벽시장 또한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상품 구성이 다양함이 없다. 팔러 나온 사람도 없고 사러 나온 이도 드문드문 눈에 띌 뿐 활기가 보이지 않는다. 흥이 나야 시장은 재미진다. 오가는 흥에서 서로 주고받는 정이 합쳐지면 맛있는 흥정이 된다. 그러나 흥이 없으니 정이 생기다 마는 게 8월의 새벽시장이었다. 원주 새벽시장은 이번이 네 번째다. 가장 재미가 없었다. 재미는 없었지만 새벽시장에 온 목적은 달성했다.
8월에 원주 새벽시장은 토종 오이다. 토종 오이 생김새는 짤막한 게 등급 외 상품으로 보인다. 길쭉한 다다기나 취청오이와는 다른 모양새다. 요새 가끔 보이는 피클용 오이와 길이는 비슷해도 몸통 전체가 진한 녹색인 피클용과는 모양새가 확연하게 다르다. 암튼, 오늘의 목적은 토종 오이로 장아찌를 담글 생각이었다. 작년에 담가 먹었던 토종 오이장아찌의 아삭거림은 일품이었다. 김은 여름의 시장은 토란대, 고구마 순, 감자가 있다. 감자가 보인다. 수미이거나 수미거나 가끔 두백도 보인다. 두백이나 수미는 짬짜면 같은 녀석들. 적당히 맛있고 적당히 수확이 좋다. 그러나 쪄 먹는 용도는 아니라고 판단해서 사지 않는다. 두백은 분질성이 좋으나 집 용으로 단맛이나 감칠맛이 부족하다.
수미에 비해 부서지는 질감이 있어 더 환영받는 듯싶지만 실제는 둘 다 내 생각으로는 맛없는 감자다. 두백이라는 이름의 감자를 큰 온라인 몰에서 판매한 것이 나다. 2013년도 쿠팡 팀장으로 있을 때 시도했었고 수미 일변도의 잔잔한 감자 시장에 짱돌을 던졌다. 그 파장이지는 않겠지만 감자 다양성에 한몫했었다. 드디어 찾던 토종 오이가 눈에 띄었다. 한 무더기만 있다. 급한 마음에 가격을 묻고 샀다. 1만 원, 요새 오이 값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샀다. 잘 샀나 싶은데 몇 걸음 가자 무더기로 있는 토종 오이 발견! "아~씨" 시장에서 다음은 없다는 걸 5년의 시장 취재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머리가 무조건반사를 했고 그걸 믿었다. 그러나 가끔 이런 반전이 있는 게 또한 시장이다. 4~5개 한 무더기에 2천 원. 아까보다 저렴하다. 양도 많고 말이다. 더 살까 하다가 말았다. 더 사지 않은 것은 집에 와서 오이를 먹었을 때 바로 후회했다. 토종 오이는 다다기오이, 취청오이, 가시 오이와는 달리 진한 고소함이 있다. "설마, 오이가 에이"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 먹어 보지 않으면 내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 3년 전에 원주시장에서 맛보고는 매년 여름마다 내가 토종 오이를 찾는 이유가 다른 고소함 때문이다. 복수박이 있으면 살까 했는데 수박 종류는 없었다. 과일은 복숭아와 자두뿐. 자두를 딱히 좋아하지 않아 사지 않았다. 살 생각도 없었다.
원주 새벽시장은 오전 4시부터 9시까지 운영한다. 주차장 끝에는 시장을 관리하는 분들이 허가를 받은 사람만 장사할 수 있도록 통제를 하고 있다. 주차장 밖에 있는 이들은 원주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 다리 주변에 있는 상인들은 외지인이거나 농민이 아닐 수도 있다.
염두에 둔 식당은 9시에 문을 연다. 시간을 보니 7시 50분 정도. 아직도 1시간 삐대야 문을 연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은 8월 6일, 횡성 오일장 서는 날이다.
횡성 오일장은 토종 자두인 오얏과 시장 안 감자전 생각이 제일 먼저 난다. 원주 새벽시장에서 횡성 시장까지는 20분 남짓, 그렇다면 Go. 시장 보고 와서 밥 먹고 집에 오면 괜찮을 듯. 그렇게 도착한 횡성. 시장에 나서니 이른 듯 사람이 너무 없다. 봇짐 들고나온 할매들은 이미 장을 폈고 전문꾼들은 한창 피고 있었다. 한 바퀴 돌았다. 여도 원주와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전문 오일장러들이라 다양한 상품이 있다. 물론 원주 새벽시장 옆이 전통시장으로 2, 7장인 오일장이 선다. 오늘이 6일이니 내일 7일이 원주 장날이다. 여기에 물건을 푼 이들은 내일 원주장에서 상품을 팔 것이다. 오얏이 있나 한 바퀴 돌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상설시장 안으로 들어가 감자 전집을 찾았다. 감자를 갈아서 부쳐주는 곳이다. 몇 년 전 오일장 취재차 왔다가 맛나게 먹은 기억의 집이다.
오늘은 첫 손님으로 입성. 잠시 앉아 있의 강판에 간 감자와 부추, 호박, 매운 고추를 넣는다. 속으로 "역시, 그렇지!"를 외치는데 냉장고 옆 구석탱이 흰색의 커다란 포대로 간다. 쓰여있는 글귀는 '타피오카 전분'. 전분을 넣는다고? 궁금함에 여쭸다. 많은 양은 아니고 한 국자 정도. "전분을 따로 넣는 이유가 있나요?"
(원래 반말 아님)
할매 : 안 넣고 부치면 식으면 딱딱해져. 그래서 다들 넣어. 서울은 밀가루가 반 이상 들어갈 껄.. 그나마 여긴 이거 조금 넣지
나 : 아 그러면 보들보들한 것은 다 들어갔다고 보면 되겠네요?
할매 : 그치
감자 전분 대신 타피오카를 넣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해서 일 것이다. 물론 보들보들한 것 좋아하는 현대인의 욕구에 충족시키는 것도 있을 것이다. 부들부들한 감자 전을 먹는데 할매가 검은색 봉투에 든 것을 보더니만 나에게 묻는다.
할매 : 다래 샀네
나 : 여기 초입에서 팔고 있길레. 오얏을 안 보이네요
할매 : 벌써 끝났지.. 내년 여름에 와
여름만 생각했다. 품종이 바뀌어도 자두는 여름을 지킨다고만 생각했다. 아둔했다. 오얏은 토종 자두로 새콤한 맛이 좋은 여름 과일이다. 단맛만 있는 개량한 자두와는 다른 풍미를 지닌다. 토종의 힘은 다양한 맛이 장점이다. 내년 여름을 기약하며 사람 없는 횡성 오일장을 떠나 내장탕 먹으러 다시 원주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여기서 장날은 오일장이 아니다. 여기서 장은 장(葬) 레의 장이다. 운수 좋은 일을 만나면 가끔 사용하기도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누굴 만나러 갔는데 상중이어서 낭패를 겪었을 때처럼 안 좋은 의미로 써야 맞다. 식당은 휴가 중이었다. 여기서 밥 먹고 횡성의 이가본때에서 커피와 빵을 살 생각이었다. 밥은 넘기고 이가본때를 검색하니 여기도 오늘 휴무였다. 원주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사이 생각난 것이 홍천의 중화각. 홍천을 지키는 오래된 중식 노포다. 문들 닫았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다시 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영업 중. 홍천행이다. 마침 홍천도 횡성처럼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홍천에 도착하니 9시 30분 조금 넘었다. 불과 세 시간 만에 원주, 횡성, 홍천 세 곳의 시장 방문이다. 중화각은 홍천 시장 바로 옆에 있다. 주차한 곳이 때마침 중화각 근처. 이른 시간이라 별생각 없이 건너편 길을 걷고 있었다. 문이 닫힌 중화각, 푯말이 붙어 있다. '정기 휴일'. 오늘은 가는 곳마다 장날이었다. 실제의 장날과 장날이 겹치는 날이 있는데 바로 오늘이었다.
홍천장도 원래 사람이 적은 장이만 유독 적었다. 더위가 장날마저 삼켰다.
홍천은 중앙시장 내 홍총떡(메밀전병을 이 동네에선 이렇게 부른다) 집이 줄줄이 있다. 중앙시장과 마주 보며 전통시장이 따로 있다. 시장 중심에서는 오고 가는 이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과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사람이 없는 탓에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그나마 옥수수 찌는 곳이 사람이 몰려 있다. 한쪽에 쌓아 놓은 옥수수 포대를 슬쩍 만져봤다. 열이 없다. 옥수수에서 열이 없다는 것은 수확한 지 며칠 지났다는 것. 사실 원주 새벽시장에서 또 하나 노리고 있던 것은 바로 따서 온 옥수수. 바로 딴 옥수수는 그냥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단맛이 돈다. 뉴슈가의 단맛이 아닌 옥수수가 품은 단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옥수수 손질하는 아주머니한테 언제 땄는 지 물었는데 돌아온 답은 오늘 새벽이라고 한다. 만져 보니 열기가 없었다. 그대로 돌아 나왔다. 이틀까지는 옥수수 알갱이가 겔 상태에서 고체가 되면서 열기를 내뿜는다. 그런 옥수수를 찾았지만 없었다. 밥은 먹고 집에 가야 할 듯싶어서 시장 근처 칼국수와 만두를 파는 곳으로 갔다. 이름하여 튀김 없는 튀김식당이 되시겠다. 만둣국과 칼국수, 여름 한정으로 콩국수를 판다.
만둣국과 콩국수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만두를 콩국수보다 더 좋아하거니와 직접 만드는 만두, 게다가 김치도 직접 담그는 곳이니 선택은 만둣국. 여기는 음식이 나온 시간이 조금 길다. 만둣국을 먹는다. 약간 피가 두껍다는 느낌. 만두 크기는 한 입 보다 조금 크다. 먹다 보니 슬금슬금 느글한 맛이 올라온다. 여기도 MSG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듯하다. 결국은 다 먹지 못하고 하나 남겼다. 계산을 하며 왜 튀김식당인지 물었다.
"아주 옛날엔 튀김이 있었어요"
라는 대답을 듣고는 집으로 출발했다. 여기는 나에게는 맞지 않으나 평소에 설탕과 MSG가 듬뿍 넣는 백종원식 레시피를 좋아하는 이라면 환영할 듯.
본의 아니게 원주, 횡성, 홍천 시장까지 들려 집에 도착하니 오후 1시 30분. 그리 빡세게 돈 것이 아님에도 잘 돌았다는 생각. 다름에는 강릉 새벽시장 들렀다가 동해 북평장을 가볼까 한다. 둘 다 봄과 겨울에만 가본 시장으로 여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홍천 중앙시장에서 산 약과가 그나마 먹을 만했다. 달콤한 겉에 부드러운 속살, 그렇다고 찹쌀약과처럼 진득한 맛은 없는 밀가루 약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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