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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Aug 12. 2024

8월의 마산 새벽시장

더위는맛을 맹하게 만든다

원래는 창원행이 예정에 없었다. 유기농 배 출장 때문에 급하게 오일장을 알아보다가 생각난 것이 마산 수산시장의 새벽시장이었다. 올봄에 마산 롯데마트 앞에서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번개시장 취재할 때 수산시장의 새벽시장 또한 같이하려다가 불발 난 것이 기억났다. 일요일에 경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경매가 열리지 않으니 수산물로 경매할 일이 없었던 것인데 나만 몰랐다. 그 덕에 꽝치고 여명이 살짝 비추고 있는 새벽시장에서 홀로 돌아서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한번 가보자. 금요일에다가 며칠 동안 날도 좋았으니 배가 안 떴을 리도 없고” 그렇게 창원 들러서 새벽시장 보고 옆 동네는 아니지만 같은 경남인 사천 오일장도 같은 날이니 거기까지 갔다가 산청 일보면 얼추 시간이 맞을 듯싶었다.

지난 봄, 일요일 새벽시장은 아무도 없었다.

밤길을 달려 창원에 도착했다. 수산시장 한 편의 번개시장 옆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길을 나섰다. 주차 허용 시간이 11시까지다. 고맙게도 무료다. 골목에 있는 새벽시장, 백열등의 불빛이 여명의 밝음에 밀리고 있었다. 상인은 경매받은 생선 전시하고 한두 명 손님이라도 지나가면 가격을 부르며 흥을 던졌다. 돌아오는 대답에는 정이 없었다. 흥정이 일어날 일이 만무. 작은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시장 내에 있는 유료 주차장을 지나니 박스로 판매하는 도매상 몇 곳이 불을 켜고 손님과 흥정 중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상자째 산다. 아마도 식당 쥔장이지 싶다. 소매상부터 시작한 시장은 도매상까지의 100여 m 정도면 끝난다. 다시 뒤돌아서서 시작점으로 돌아가니 백열등 꺼지고 여름 해가 뜨기 시작했다. 진열한 상품을 본다. 고등어나 전갱이 그리고 갈치가 있다. 입추가 그제였으나 성급한 상인들이나 손님들은 전어를 앞에 두고 흥정을 한다. 크기가 엇비슷한 거로 보아 양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어는 세 마리 1만 원. 손가락 세 마디 조금 넘는 갈치도 세 마리 1만 원이다. 손질까지 해주니 저렴하다. 

한치도 군데군데 보이지만 크기나 선도가 선뜻 지갑 열 만한 정도는 아니다. 돌문어 또한 크기나 가격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그나마 이 시기에 괜찮은 붕장어는 크기가 좀 아쉽다. 여름의 수산시장은 재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잘 가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재미를 찾았지만 역시 아니었다. 수산시장 앞에는 어시장이 있다. 어시장은 횟감을 파는 골목과 수산물만 파는 상점 포함 과일, 반찬, 채소 등이 있는 종합시장 격이다. 여기 시장이 작은 시장이 아니다. 제대로 구경하려면 시간이 걸릴 정도로 규모가 큰 시장이다. 잠깐 들러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한 바퀴 돌았다. 횟집 골목이 시작하는 서쪽 입구에는 붕장어를 손질해주는 몇 집이 모여 있다. 그중 한 집을 보는데 원했던 크기의 붕장어가 있었다. 

가격을 물으니 1kg 기준 27,000원, 아까 새벽시장에서 본 가장 굵은 크기보다 예닐곱 배 굵다. 새벽시장의 작은 크기 붕장어는 두서너 마리 달아서 1kg 18,000원, 안 사면 바보다. 이래저래 최종 흥정가는 25,000원. 한 마리 무게를 다니 2. 5kg,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손질해서 두 마리는 처가 주고 한 마리는 집에서 먹기 위해 샀다. 집에서 와서 소금만 쳐서 구웠다. 간장이나 고추장 양념은 애당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런 건 소금만 있어도 식재료가 알아서 다 한다. 생각했던 대로 구운 붕장어의 맛은 예술이었다. 담백함과 풍부한 지방의 사이에서 맛은 이리로 저리로 옮겨가면서 맛을 터트렸다. 껍질과 살 사이에는 풍부한 지방의 맛이, 두툼한 살은 부드러우면서 씹는 맛을 동시에 준다. 풍부한 지방과 단백질이 내는 맛의 하모니가 예술이었다. 8월의 붕장어가 이런 맛이라면 초겨울의 붕장어의 맛은 아마도, 아니 분명히 핵폭탄급일 것이다.

새벽시장을 나와서의 원래 계획은 사천 오일장 취재 예정이었다. 창원 어시장을 보니 여름 바닷가 시장은 더는 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 가더라도 여기와 별반 차이가 없을 듯싶었다. 오늘 목적지인 산청의 정부환 생산자에게 오전도 괜찮은지 물었다. 좋다는 대답에서 바로 창원에서 산청군 단성으로 향했다. 산청 방문 목적은 배 때문이다. 가을 배를 보러 갔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여름에 나오는 한아름이라는 이름을 지닌 배를 보러 갔다. 여름에 익는 배가 한아름으로 초가을에 익는 아오리보다 먼저 나온다. 아오리 시장에 많이 있는데? 있긴 있다. 하지만 덜 여문, 익기 시작도 안 한 풋사과일 뿐이다. 지리산 아래 산청의 8월, 제일 먼저 익는 여름 배 맛보러 가는 것이 오늘 출장의 목적이었다. 목적대로 배는 아주 맛있었다. 이름 그대로 풍부한 과즙과 단맛은 단박에 여름 No. 1 과일로 등극했다. 과장이 적당히 섞은 표현이겠지 추측하지만 아니다. 맛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참고로 산청의 정부환 생산자하고 인연은 23년째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해인 2001년 초가을부터다. 내비도 없던 시절 피처폰으로 물어물어 찾아갔던 선돌농원. 해지는 노을 아래에서 바지춤에 쓱 비벼서 내밀던 원황배. 배를 껍질 그대로 먹냐는 우문에 “일단 드셔보셔”라는 현답을 믿고 베어 물었다. 배라는 게 이리 향기로운 과일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부드러운 배향이 코를 황홀하게 만들고는 이내 입안 가득 채워지는 배의 과즙은 처음이었다. 이후 내 과일 선택의 기준은 향이 되었다. 크기나 상처는 별거 아니다. 눈만 호강할 뿐, 정작 먹는 행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일에 향이 좋은 것을 찾기 시작한 것이 이날 이후였다.

배 농장 일까지 마치니 오전 11시 즈음. 지금 출발하면 차는 막히지 않겠다 싶지만, 휴게소에서 맛없기 싫기에 단성 시내로 나가 어죽 한 그릇. 원래 다니던 함양 수동의 어죽 집은 할매가 양도한 이후로 가진 않는다. 몇 년 전 허영만 선생님과 맛본 이후로 어죽집 하면 생각나는 곳이 단성에 있었다. 어죽 먹을 때 꼭 필요한 제피와 방아를 주는 곳이다. 어죽을 무엇으로 끓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을 더 해주는 이 두 가지가 빠지면 서울 시내에서 먹는 프랜차이즈 추어탕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밥 먹고 근처에 있는 목화빵집에서 우리밀 빵과 핸드드립 커피를 사서는 출발했다. 목화빵집에는 일회용기가 없다. 텀블러 없이는 테이크 아웃이 안 된다. 집에 오니 오후 4시 조금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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