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좋은 시장
이번에는 영동이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을 중심에 두고 영서와 영동으로 나뉜다. 영동은 충북 영동이 아니라 대관령, 한계령 등 령(嶺)의 동쪽이라는 의미다. 영의 서쪽 중심은 원주, 원주 농민새벽시장이 있다. 영동은 강릉이 중심이다. 강(릉)원(주)도의 두 중심 도시답게 농민이 운영하는 새벽시장 또한 쌍벽을 이룰 정도로 잘 운영되고 있다.
새벽길을 달려 강릉 중앙시장 옆 천변 도로를 지나니 잠시 후 새벽시장이 나온다. 크기나 규모는 원주와 엇비슷하다. 저렴한 가격이나 선도 좋은 농산물 또한 비슷하다. 다만 원주와 다른 것이 수산물. 곁에 바다를 두고 있으니 당연지사. 여름철이라 딱히 살만한 것은 없으나 원주와 다른 점은 바로 어물전의 유무다. 몇 바퀴 돌았다. 찾는 감자인 남작이 있는지가 내 관건. 판매하는 농산물은 주로 여름 과채류와 감자탕용 깻잎순이 많았다.
여름 대파는 굵은 것이 없다. 낮은 온도에서 잘 자라는 특성 탓이다.
다대기오이와 토종오이 노각, 가지, 고추가 주였고 박 종류인 동아 또한 가끔 보였다. 그래도 가장 많은 것은 뭐라 해도 옥수수. 강원도 하면 옥수수와 감자. 감자는 수미이거나 두백으로 보였다. 옥수수는 망에서 꺼내 즉석에서 껍질을 벗겨 주거나 아니면 셀프다. 다니면서 옥수수를 만져보니 미지근하다. 하루 정도 지난 듯. 그래도 이만하면 아무것도 넣지 않고 쪄도 맛있을 듯싶었다. 집에 와서 쪄보니 예상대로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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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시장 끄트머리 두부 파는 곳. 유일하게 사람이 줄 서는 곳이다. 예전에 왔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줄을 선다. 이미 맛으로 새벽시장 찾는 이들에게 인정을 받았기에 그러는 듯싶어 줄이 짧아졌을 때 한 모 샀다. 가격은 커다란 두부 한 모가 2,500원. 한없이 가벼운 포장 두부와 달리 두부가 묵직하다. 중량은 420g 나가는 옛날식 두부와 무게가 비슷했다. 옥수수를 사고 두부를 사고는 주차한 곳으로 갔다. 짐을 정리하며 두부를 잘라먹어봤다. 고소함이 남다른 두부였다. 강릉 사람들이 왜 줄을 서는지 알았다. 끄트머리를 서너 번 더 잘라먹었다. 씹을수록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예전에 2001년도에 전주 함씨네 두부를 맛봤을 때와 같은 감동이었다. 여기 두부 ‘찐’이다.
출발하기 며칠 전, 강릉 새벽시장에 들렀다가 동해 쪽으로의 방향과 양양 쪽 사이에서 고민했다. 당일치기라 일정 조정이 필요했다. 동해라면 3. 8장, 양양은 4, 9장이다. 동해는 삼척 새벽시장과 일정을 맞추기로 하고 양양으로 방향을 잡았다. 양양을 가기 전 주문진에 들러 어시장 구경도 하고 소머리 국밥으로 아침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매주 목요일 휴무인데 이번 목요일은 광복절. 그로 인해 하루 앞당겨 하필 내가 가는 수요일이 휴무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주문진항에 도착. 주문진은 어민들이 운영하는 외관이 비닐로 되어 있는 판매장과 패널로 되어 있는 두 곳으로 운영되고 있다.
몇 번 방문이었지만 수산시장쪽이 사는 것에 편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그 사이에 수산물 시장은 횟집이 주다. 한 곳은 경매 받은 자연산만 취급, 또 한쪽은 양식도 같이 취급한다. 가격은 시세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 번 이용해 봤을 때 자연산을 취급하는 어민 직판장이 낫다는 느낌이다. 좌판풍물시장에서는 가격 물어보는 것도 어렵다. 가격 물어보면 살 거 아니면 묻지도 마라는 식으로 응대하는 이를 종종 만나기도 한다. 가격을 알아야 흥정이 시작되지만, 흥정 자체를 거부했다. 오늘도 두 곳 다 돌아봤다. 풍물시장은 구경만, 직판장 쪽에서 삼치와 고등어를 샀다. 두 시장 사이에는 횟집과 경매장이 있다. 경매장을 지나야 수산시장이 나온다. 수산시장 쪽으로 가는데 살아 있는 고등어를 실은 손수레가 수산시장으로 간다. 경험상으로 이런 고등어는 횟감뿐만 아니라 조림이나 구이 또한 맛이 좋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살에 단맛이 돈다.
수족관에서 빙빙 도는 횟감용 고등어는 아니다. 뒤쫓아 가보니 좌판에 그대로 붓고는 사라진다. 속으로 “OK”를 외치고는 가격을 물으니 커다란 고등어 세 마리 2만 원. 손질해달라고 하고는 중 삼치 한 마리 2만 원 주고 샀다. 둘 다 구이용이다. 제맛이야 겨울이지만 선도를 보니 안 사면 손해일 듯싶었다(실제로 구워보니 사 먹던 고등어에서 맛보기 힘든 단맛이 있었다). 두 가게 사이에서 망치(고무꺽정이)가 나도 사달라는 듯 생생한 상태로 유혹을 보낸다.
여기선 매운탕 해서 먹는데 아귀가 형님 할 정도로 시원하다. 슬쩍 보면 아귀처럼 보인다.
자세히 보면 아귀와 달리 똘망똘망한 눈이 있어 외모가 귀엽다.
양양장은 매번 봄과 가을로만 다녔다. 봄은 나물, 가을은 버섯이 많다. 특히 봄에는 주변에서 나는 나물로 부쳐주는 전이 예술이다. 시장에서 군것질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여기서는 꼭 한다.
봄에 맛보는 모둠 나물전은 먹어보면 잊지 못해 다시 찾는다. 여기서는 딱히 무엇을 살 생각이 없었다.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게 인생. 돌아올 때 내 손에는 두 개의 봉지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떡, 생각해 보니 여기서 떡은 꼭 샀다. 양양에서 인제 넘어가는 초입에 있는 송천마을은 떡으로 유명하다. 오일장이 서면 마을에서 떡 팔러 나온다. 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부로 만든 소가 든 바람떡을 샀다. 또 하나의 봉지는 그렇게 찾던 남작. 장터에 감자만 있으면 슬쩍슬쩍 보고 다녔다. 대부분 수미였다. 강원도에서 하지에 나오던 감자를 하지감자라고 했다. 감자 품종이나 동네 이름이 아니라 24절기인 하지에 나오던 감자를 그리 불렀다. 그때 하지감자라고 부르던 감자의 분이 하얗게 나던 남작이었다. 모양은 좋지 않더라도 쪄서 먹으면 그만한 감자가 없었다. 수미 감자는 모양도 좋고 수량도 좋은 감자다.
남작에서 수미로 품종을 바꾸면서 남작 찾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두 바퀴째 돌 때 드디어 만났다. 파는 아주머니 뒤편에 감자 박스도 없다. 작은 바구니 두 개만 놓여 있다. 감자 표면을 보니 거북이 등가죽처럼 갈라져 있거나 점점이 박혀 있다. 수미나 두백은 표면이 매끈하다. 재래 감자인지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한 바구니 5천 원. 집에 오자마자 쪄서 맛보니 맞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남작이다. 감자가 거기서 거기지 하겠지만 똑같은 분질 감자라고 하더라도 입자의 부드러움과 단맛과 감칠맛의 조화를 이루는 것은 남작이나 하령 정도다.
양양장에서 그냥 출발하기 뭐해 제철인 옹심이 한 그릇 하고 양양장을 떠났다. 감자가 제철인 시기에 감자 전분으로 만드는 옹심이가 제철이 아니면 뭐가 제철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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