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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Aug 17. 2024

짜장면이다

나의 음식이야기


지금은 사라진 인천의 덕화원

짜장면이다. 소울푸드니 뭐니 이런 소리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짜장면의 맛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평택에서 인천의 부평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 살던 동네는 내가 나온 초등학교 근처였다. 연탄을 파는 집이었는지 기억에는 연탄집으로 남아 있다. 사람 얼굴 잘 기억 못 하는 내가 어릴 적 주인집 아주머니 얼굴은 기억하고 있다. 서글서글한 눈망울을 지닌 얼굴을 기억할 정도니 인상이 꽤 깊게 남아 있었다. 몇 년 연탄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다가 언덕 너머 예전 일제강점기 광산 노동자의 줄 사택이 남아 있던 삼능이라는 동네에 집을 사서 갔다. 거기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 동네에는 두 곳의 중국집이 있었다. 둘 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어차피 이름의 끝은 '루'나 '각'이었을 것이다) 내 짜장면에 대한 기억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아주 가끔 먹던, 어쩌다 먹던 음식이 짜장면이었다. 후에 짜장면의 탄생 신화(?)를 들었을 때 그런가? 하고는 넘어갔다. 

1970년대 중식 메뉴판과 가격

춘장으로 면을 볶아 저렴한 가격에 부두 노동자가 먹던 음식이 짜장면의 시작이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그렇다고 하는데,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가 하고는 넘어갔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때가 1979년이다. 그 동네에서 3학년 인가까지 다녔으니 80년대 초반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기에 외식은 일 년에 한두 번이었다. 대부분 짜장면이었다. 볶음밥을 맛보고 싶었지만 집에서 볶아먹으면 되지 못하러 사 먹냐는 엄마의 잔소리에 대학 갈 때까지 먹어보지 못했다. 미군부대 군무원인 아버지 외벌이로 삼 남매를 대학 보내기 위한 엄마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넉넉하지 않더라도 못 살지 않던 살림이었지만 짜장면 한 그릇도 80년대 초반까지는 낭비에 가까운 행위였다. 그런 음식이 짜장면이었다. 고급 진 음식은 아니었어도 쉽게 맛보기 어려웠다.

캐러멜 춘장의 출시 .비로소 지금의 짜장면 모습을 갖추는 계기였다.

짜장면 박물관에 있는 짜장면 탄생 비화(?)를 보자. 80년대까지 나에겐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었지만 1900년대 초반의 중국인 부두 노동자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음식이 짜장면이었다니! 면을 만드는 밀가루가 부두 노동자의 배를 채울 수 있는 저렴한 재료였나 하는 생각은 일단 하지 않는다. 짜장면 가격 또한 다른 음식보다 저렴했던 것은 정부에서 가격인상을 인위적으로 막았던 영향이 가장 크다. 다양한 짜장면은 정부의 방침을 비껴가기 위한 하나의 방도였다. 

다양한 짜장면, 정부의 가격 억제를 비껴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 재료가 필요하다. 하나는 검은색이 나는 캐러멜 소스가 든 춘장, 동그란 양파, 돼지고기가 필수다. 이 세 가지를 볶아야 제맛의 짜장면을 만들 수가 있다. 표준 레시피가 있는 라면을 끓여도 끓이는 이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허물면 라면도 아닌 세 가지 재료를 볶아서 만든다면 수만 가지의 맛이 나올 것이다. 그렇기에 내 입에 맞는 맛있는 짜장면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가 맛있다고 한들 나에게 맞지 않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내가 현재 싫어하는 짜장면은 훔볼트 오징어 등 냉동 해물을 넣은 해물 짜장이나 쟁반 짜장이다. 이건 짜장면도 아닌 춘장으로 볶은 해물 볶은 면이 지 싶다. 좋아하는 짜장면의 맛은 양파, 돼지고기를 춘장에 잘 볶은 것이다. 이걸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그냥 맛을 보면 입안에서 “짜, 장, 면!”임을 알아챈다. 아삭함과 무름의 중간 정도로 볶은 양파, 양파 사이에 알맞게 익은 돼지고기, 섵탕과 춘장의 단맛에 MSG의 적절함의 조화가 이루어져 있는 짜장면이 되게 그렇다.

연합뉴스 캡쳐

검은색 춘장의 개발이나 밀가루가 흔하게 된 것은 6. 25 이후다. 양파는 1960년대 창녕군에서 대량 재배를 시작한 이후 전국으로 퍼졌다고 한다. 돼지고기 또한 1970년대부터 대량 사육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짜장면은 1960년대 이후 모양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멘장인지, 총장을 볶아 면에 올려 먹은 것은 중국 산동반도에서 식문화이다. 예전 화교의 인터뷰를 보면 공장표 춘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직접 담그거나 사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인터뷰 내용으로 봐서는 강원도식 막장하고 비슷한 색이 아니었나 한다. 게다가 양파도 귀했던 시절인지라 양파 대신 무를 넣었다는 내용도 볼 수가 있다. 짜장면이 중국 산동 지역의 음식에서 시작한 것 맞지만 시대 상황으로는 박물관의 짜장면 설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짜장면에는 춘장이 필수다. 필수에만 초점이 맞추다 보니 다른 부재료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 갔다. 그 당시 밀가루 가격이 어땠는지, 양파나 돼지고기가 지금처럼 풍부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오로지 짜장면=춘장만 쫓은 결과가 짜장면의 탄생 설화로 발전한 것이지 싶다. 우리가 짜장면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1910년의 공화춘에도 없었고 중화루(두 곳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차이나타운의 청요릿집이다)에도 없었다. 모든 게 발효의 시간을 줄이고 색소와 MSG로 맛을 낸 사자표 춘장이 나오고, 보리 대신 환금작물(판매를 위해 재배하는 작물)로 대량 재배를 시작한 양파의 보급과 수출용 돼지고기를 제외한 나머지 부위의 국내 유입, 거기에 미국의 저렴한 원조 밀가루가 더해져 격변기의 산업화가 만들어 낸 음식이 짜장면이다. 전통의 맛은 희미해지고 산업적 생산한 식재료가 우리네 먹거리 시장을 사로잡기 시작한 음식이 짜장면이고 라면이라 생각한다.

<한국 중화요리의 탄생, 조희풍 저, 이데아>을 읽고 짜장면 박물관의 내용을 보니 짜장면이 너무 전설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진짜 본론. 내가 좋아하는 짜장면에 대한 이야기다. 네이버를 비롯해 음식점 후기에서 믿고 거르는 것이 두 개 정도 있다. ‘사장님이 친절해요’ 이런 시작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가던 식당 대부분 욕쟁이 할머니가 포진하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이야기로 시작한다. 친절은 기본 아닌가? 과잉의 친절이 아니고 내 집에 음식 먹으러 오는 사람한테 불친절한 식당 사장이 과연 있을까 한다. 만일 있다면 금세 문 닫지 않을까 싶다. 짜장면 면발을 칭찬하는 이들, 면에 탄성을 주는 첨가물을 사용해 만든 면에서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다. 일본의 우동처럼 오랜 시간 반죽과 숙성을 번갈아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런 글로 시작하는 것은 일단 거른다. 짜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밸런스다. 맛있는 짜장면이란? 양파와 돼지고기 그리고 춘장이 부르는 노래에 설탕과 MSG가 적절한 화음을 넣어 만들어야 한다. 조화가 완벽할수록 맛있는 짜장면이 된다. 뭐 하나 흐트러져도 맛은 망가진다. 쉬워 보여도 그걸 해내는 곳이 많지 않다. 그저 달거나, 기름지거나, 느글느글하거나 하는 맛에 양파는 너무 익혀 아삭함이 없거나, 덜 익혀 다시 밭에 심어도 무방할 정도이거나 한다. 간짜장의 경우는 일반 짜장을 퍼서 내주는 식당도 허다하다. 내가 전국을 다니면서 맛봤던 짜장면 중에서 기억에 남는 곳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짜장면은 남의 기준은 참고일 뿐이다. 남인 내 기준으로 선정한 것이니 참고만 하면 된다. 


순창식당

내가 생각하는 no. 1 짜장면이다. 작게 썬 양파와 크기에 맞게 썬 돼지고기의 조화가 좋다. 여기서 짜장면을 먹은 이후 집에서 만들 때 양파를 작게 썰기 시작했다. 면과 먹어도 좋고 밥을 더해 비벼 먹어도 좋다. 양파 싫어하는 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맛이다.


미광식당(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살짝 비켜 있는 집이다. 여기는 케첩 탕수육 또한 유명하다. 적당하게 자른 양파와 돼지고기의 볶음 정도가 좋다. 이건 실제로 먹어보지 않으면 설명을 당최 할 수가 없다. 11시 30분 오픈이지만 10시 30분부터 줄 선다. 한 번 가봤는데 가끔 생각나는 맛이다. 여기와 비슷한 맛이 사위가 아닌 사장님이 직접 웍을 잡던 시절의 인천 산곡동, 지금은 사라진 덕화원의 짜장면이었다.


중화각(홍천)

간짜장도 맛있지만 일반 짜장도 훌륭하다. 양파, 돼지고기, 춘장에 더한 나머지가 잘 받쳐준다. 느끼하지도 그렇다고 달고 느글거리지도 않는다. 적당한 그 어딘가에 맛이 위치하고 있다. 집안일로 문을 닫고 있다가 문을 다시 열었다.


소림각(고창)

서해안 고속도로 선운산 IC에서 가깝다. 부안면 사무소 근처다. 작은 테이블 몇 개 놓인 것이 전부인 시골 식당이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맛있게 먹고 나온 집이다. 양파 정도는 아니어도 가뭄에 콩 나듯 들어있는 돼지고기와는 달리 고기 씹는 맛을 즐길 수 있는 간짜장이다.


진미식당(곡성)

곡성, 구례, 순천 함양, 산청 등 지리산 자락에 근처에는 흑돼지 키우는 곳이 제법 있다. 그것이 듀록과 교잡이든 뭐든 일단 흑돼지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은 비계가 맛있다는 것이다. 비계가 맛있으면 돼지기름 또한 고소하다. 흑돼지를 사용해 짜장을 만든다. 백돼지로 볶은 짜장과는 다른 맛이 있다.


진향(서울)

서울에서 만나는 버크셔 흑돼지로 만드는 짜장면이다. 흑돼지비계를 볶아 기름을 내고 바삭해진 비계는 짜장의 재료로도 사용한다. 버크셔 돼지기름으로 춘장을 볶는다. 옛날의 중식은 대부분 돼지기름, 즉 라드로 요리를 했다. 전통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라드나 우지를 사용하던 옛날식 짜장면 맛을 보고 싶다면 여기다. 버크셔 돼지비계의 고소한 맛이 잘 살아 있다.


부앤부(인천)

1990년대 초반 월미도 해군 사령부에서 방위로 근무했다. 그 덕에 매일 부평에서 첫차를 타고 인천역에서 내려서 지금의 월미공원까지 걸어서 출근했다. 그 당시 기억으로는 차이나타운에서 무엇을 먹었던 기억은 없다. 요리를 떠나 짜장면조차도 먹지 않았다. 어느 순간 관광객이 늘면서 차이나타운에서 한두 번 먹어 봤어도 딱히 마음에 드는 짜장면 집은 없었다. 일단 믿고 거르는 동네가 그 동네다. 중식 용어 중에 '유슬'이란 것이 있다. 길게 자른다는 의미라고 한다. 고기, 채소를 길게 잘라서 볶은 것이 유슬짜장이다. 약간 매콤한 것이 꽤나 먹을만했다. 차이나타운에서 유일무이하게 먹을만한 짜장면이지 싶다. 

업장명은 부엔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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