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와 양배추의 궁합

by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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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옆 양배추, 우연이 아닌 130년의 필연

돈가스를 주문하면 으레 접시 한쪽에 수북이 쌓인 양배추 채가 나온다. 누군가는 드레싱 맛으로 먹고, 누군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양배추에는 요리사의 치열한 고민과 식품학적인 궁합, 그리고 계절의 이치가 숨어 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4컷 만화와 함께 풀어본다.


1895년, 긴자 렌가테이의 혁신

흔히 돈가스 곁의 양배추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징병으로 인한 일손 부족 때문에 양배추를 익히지 않고 생으로 낸 것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그보다 앞선 1895년(메이지 28년), 일본 경양식의 발상지라 불리는 긴자의 '렌가테이'에서 이미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서양의 커틀릿은 감자나 당근 등 익힌 채소(온야사이)를 곁들이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렌가테이의 2대 사장 키다 겐지로는 고민했다. 밥과 함께 먹는 일본식 식사에서 기름진 커틀릿은 자칫 느끼할 수 있었다. 그는 과감하게 서양의 방식을 버리고, 일본인이 구하기 쉽고 식감이 아삭한 양배추를 얇게 썰어 곁들였다. 이것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서양 요리를 일본의 식문화로 재해석한 '발명'이었다.


위장을 지키는 방패, 비타민 U

돈가스와 양배추의 만남이 130년 넘게 지속된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기가 막힌 영양학적 근거가 있다. 돈가스는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음식이다. 아무리 잘 튀겨도 소화가 더디고 위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이때 양배추가 등장한다. 양배추에는 '카베진'이라 불리는 비타민 U가 풍부하다. 이는 위 점막을 보호하고 손상된 위벽의 재생을 돕는다. 또한 풍부한 식이섬유는 튀김의 기름기가 체내에 과도하게 흡수되는 것을 막아준다. 돈가스 한 입에 양배추 한 젓가락은 맛의 균형을 넘어, 내 위장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식품 MD의 참견, 여름 양배추의 배신

마지막으로 30년 차 식품 MD로서 팁을 하나 더한다. 돈가스 집에서 유독 양배추가 맛없는 날이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여름일 것이다.

양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작물이다. 겨울과 봄에 나오는 양배추는 조직이 단단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온다. 반면, 고온 다습한 여름에 수확한 양배추는 성장이 너무 빨라 조직이 무르고 수분만 가득하다. 씹으면 아삭함 대신 물컹거리고, 단맛 대신 밍밍한 물맛이 난다. 이때는 오이채를 추천한다.

그러니 한여름 돈가스 가게에서 양배추가 맛없다고 주방장을 탓하지는 말자. 그저 자연의 섭리가 그렇다. 반대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돈가스보다 양배추를 더 많이 리필해 먹기를 권한다. 그때의 양배추는 그 어떤 보약보다 달고 맛있다.

돈가스 옆의 양배추, 그것은 장식품이 아니라 1895년부터 이어져 온 맛과 건강의 이중주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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