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불고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하면, 강화도나 서해안 포구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으레 "봄에는 밴댕이지!" 하며 횟집으로 향하는 발길들이지요. 매콤 새콤한 양념에 버무린 밴댕이 회무침 한 접시를 두고 봄의 미각을 논하곤 합니다.
하지만 식재료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저는 그 풍경을 보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 과연 지금 드시는 저 밴댕이가, 밴댕이가 가진 최상의 맛일까 하고 말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봄 밴댕이'의 진실과, 진짜 미식가들이 기다리는 '겨울 밴댕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오뉴월 밴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말 틀린 것 없다지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밴댕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획량이 많으니 축제가 열리고, 자연스레 사람들이 몰리게 되지요.
하지만 '많이 잡힌다'는 것이 곧 '가장 맛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중적인 인기가 식재료의 품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것이 우리가 미식을 대할 때 경계해야 할 첫 번째 통념입니다.
맛의 비밀은 밴댕이의 생체 리듬, 즉 '산란'에 숨어 있습니다. 봄은 밴댕이에게 사랑의 계절이자 산란기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산란을 앞둔 물고기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알에 집중시킵니다.
몸속 구석구석 저장해 두었던 지방과 영양분이 오로지 알을 낳기 위해 소진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벚꽃 놀이를 즐기며 밴댕이를 찾는 그 시각, 바닷속 밴댕이는 사실 산란의 과업을 수행하느라 홀쭉해지고 기진맥진한 상태입니다.
영양분이 빠져나간 생선 살은 정직합니다. 봄철 산란기 밴댕이는 살이 얇고 식감이 푸석합니다. 씹을수록 배어 나와야 할 특유의 기름진 고소함도 덜합니다.
우리가 봄철 밴댕이를 주로 '회무침'으로 먹는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한 초장 맛과 채소의 아삭함으로 밴댕이 자체의 부족한 맛과 식감을 보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미식은 양념 맛이 아니라 원물 본연의 맛을 즐기는 데서 시작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밴댕이가 가장 맛있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바로 산란을 준비하기 위해 먹이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몸안에 지방을 가득 가두는 '겨울'입니다.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릴 때 잡힌 밴댕이를 보신 적이 있나요? 은빛 비늘은 윤기가 흐르고, 살점은 통통하게 올라 있습니다. 칼을 대면 칼날에 기름이 묻어날 정도로 지방이 풍부합니다. 이때의 밴댕이는 굳이 강한 양념으로 맛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약간의 간장이나 된장만 있어도, 입안 가득 퍼지는 녹진하고 고소한 풍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제철의 정의를 다시 내려봅니다. 단순히 시장에 많이 나오는 시기가 아니라, 그 식재료가 가진 잠재력이 폭발하는 시기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남들이 다 봄꽃놀이와 함께 밴댕이를 찾을 때, 조금만 기다려 보시길 권합니다. 모두가 춥다고 웅크리는 겨울, 살이 꽉 찬 밴댕이 한 점이 주는 기름진 위로를 경험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진짜 제철의 맛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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