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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클로이 Feb 13. 2021

함께 먹는 미역국

요리로 배우는 인생.






우리 집엔  오랜 전통이 있다. 평소엔 김치 하나만 놓고 밥을 먹더라도  생일날에는 고기반찬에 미역국을 끓여 먹고 내년 생일까지 건강하기를 비는 풍습이다.  서로 투닥투닥 싸우다가도  생일날만큼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생일을 축하하며  밥을 먹곤 했다.  가족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 함께 살아 있음을 축하해주며  먹는 생일상 미역국이거늘 나에게는  잊지 못할 일들이 많이 있었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만 먹고살던 철부지  아이는 그저 생일이 돌아오는 것을 즐거워라 했지만  자신이 결혼을 해서 남편의 미역국을 끓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아니 고민할 수 없었다.


미역국을 어떻게 끓여야 맛있을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냥  끓여야 한다는 사명감에 끓였던 첫 번째 미역국인데 그날 아침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소고기 미역국을 끓인다고 한다면 소고기는 핏물을 빼두고   보통은 먹을 만큼 미역을  물을 붓고 불린다.  불린 미역을 흐르는 물에 씻어서  물기를 뺀 다음  핏물 뺀 소고기를 달달 볶다가 미역 넣어 볶고  국간장 1스푼과 육수를 넣은 다음 은근히 끓인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모든 요리는  오차범위는 조금씩 준수해야겠지만  정량을 지켜야 음식 고유의 맛을 낼 수 있다.  



미역을 불려야 하는데  얼마나 불려야 할지 몰라서 대략  불린 미역이  부엌에 춤을 추고 다녔다.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이른 새벽부터 일어났으나  미역이 춤을 추고 다니는걸 어찌 수습해야 할지 몰랐다. 놀랜 토끼 눈을 뜨고 돌아다니니 남편이 깨서 그 상황을 목격했고......

순식간에 불어버린 미역을 수습하느라  결혼 후 첫 번째 남편의 생일상 미역국은 장렬하게 실패했다. 




남편의 두 번째 생일날,   이번에는  어디서 본건 있는지  미역도 넘치지 않게 불리고 고기도 볶아 나름의 미역국 모양새를 갖추었다.  너무나 확신에 찬 눈으로  맛있을 것이란 생각에  생일날 밥상을 차렸다.   중요하건 우리 집 남편은 혼자 자취한 세월이  많아서 밖에서 사 먹는 음식으로 입맛이 배어 있는 사람이라  국물요리는  한 숟가락 먹어보고 자기 입맛에 안 맞으면   손도 안 대기에 유명한  사람이었다.   


나도 확신에 차 있었고,  이번만큼은 성공하리라 했다. 

 남편도  미역국처럼 생긴 비주얼에   내심 기대를 하고   한 수저를 떴는데  아무 말 없이 숟가락만 내려놓는 남편이 미웠다.   다른 집 남편들은  소금국을 주어도 맛있다고  먹는다는데  힘들게 끓인 음식인데  한 숟가락만 먹고 내려놓다니  나도 말을 더 섞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보란 듯이  남은 미역국을 들고나가서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렸다.    그 이후 한 동안 우리 집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함께 모여 먹는 사람도 없었다.



 2년 전, 엄마의 생일날 우리 집 분위기는 음산했다.  

내 딸내미 때문이었는지 나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엄마는 마음이 많이 상해있었다. 미역국이라도 맛있게 끓였어야 했는데 눈치 없는 나는 미역국을 끓여서 엄마에게 드렸으나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남편처럼 한수저만 떠서 먹어보더니 딸내미에게 먹어보라고 시켰다.  남편보다 우월한 미각을 가지고 있었던 내 딸내미는 한수저를 먹어보더니 남편과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쏟아부 치는 엄마.



이걸 누가 먹으라고 끓였냐!!!  니 딸이 얼마나 입이 고급인 줄 아니?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미역국은 결국 내가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먹으면서도 왜 정성을 몰라주나면서 속상해했던 나였다.  그러나  밖에서 파는 시제품도 많은데  왜 내 가족들이  맛없는 내 미역국을 먹어야 할까?   남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미역국일지라도  왜 내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가 없으면 그 미역국은 존재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기본 원리만 알면  누구나 쉽게 끓일 수 있는 미역국이지만 혼자만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음식이 맛있는지 만들어서 먹어도 보고 무엇이 부족한지에 따라 보완도 할 줄 알면서  먹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할 줄 알아야 맛있는 음식이 탄생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같은 달에  생일이 겹치기에 내 생일은 온 데 간데 없어지기도 했지만 매년 생일날에는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다. 왜 맛있는지 어떻게 하면 맛있게 끓일 수 있는지 모른 채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겠만 먹기만 했었는데...... 작년 내 생일날에는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을 수 없었다.

엄마가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을 앓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엄마의 미역국을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엄마의 빈자리가 뼈저리게 느껴져 슬피 울기도 많이 운  나였지만 이제는 따뜻한 엄마손 길이 담긴 미역국을 먹을 수 없어 슬펐고 나 혼자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더 슬펐는지 모른다.    서글피 울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엄마이기에 내 생일에 미역국은 먹을 수 없게 되었지만 내 딸에게는 정성 담긴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전체 흐름도 머리에 그려보고 하나하나 단계별로 준비하면서  아이가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해가며 딸에게 끓여주는 미역국을 끓이면서 나는 혼자 슬피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 미역국이  무엇이 그렇게 어렵다고  엄마한테 한번 제대로 만들어 주지 못했을까?  너무나 이기적이었던 나는 엄마가 평생 내 옆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내 옆을 떠날 것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가 아프면서  지독한 홀로서기는  시작되고 있었고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기만 하는 철부지가 아닌 스스로 혼자 일어서는 연습을 해야 했던 것이다.  나만 먹는 미역국이 아닌 함께 먹는 미역국을 만들다 보니 한 가지뿐 아니라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각도의 재료로 만드는  미역국으로 집밥 밥상을 만들어 가는 연습을 시작했다.


건새우 미역국, 참치 미역국, 된장 미역국  얌체처럼 먹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만드는 사람으로서 미역을 바라보니 미역 하나만으로도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보면서 지난 동생의 생일에는 엄마 병원을 같이 가서 내가 끓인 미역국으로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는데 맛있다 먹는 동생과 엄마의 모습만 보아도 배가 불렀다.  이래서 엄마들이  먹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부른다 하는 것이구나 할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의. 식. 주라 했다.   기본만 잘 갖추면  세상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거늘  고집불통 외고집으로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만 먹고 살 때는  무엇 때문에 기본을 중시하는지 알지 못했다.  서툴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 먹는 음식을 배우고 만들면서 소통 하며 인생을 배워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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