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설득력과 말하기 능력

말보다 글

by 밀당고수 N잡러

맹목적인 사랑은 누가 뭐래도 부모의 사랑이지만 애정도 없이 맹목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는 직업이 바로 변호사다. 잔혹한 살인범을 변호하거나 유명 정치인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변호사로서 정말 억울하다.


물론 아무리 돈이 좋아도 굳이 그런 사건을 맡아서 범죄자를 변호해야 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은 어떤 변호사든지 수임을 할 수밖에 없고, 수임할 변호사가 없어져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임해 주기 때문에 결국 어느 변호사는 그 사건을 맡아 살인자 등을 변호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살인자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인간 취급하지 않더라도 직업상 당사자가 살인 등의 범죄행위를 부인하면 변호사는 무조건 의뢰인의 뜻에 따라 동일한 주장을 해야 한다. 겉과 속이 완전 다른 이중인격자 같지만 직업의 특성상 불가피하고, 그 정도의 스트레스를 견딜 정신력이 없다면 변호사를 하면 안 된다.


물론 나도 변호사 초창기에 국선변호로 배당된 사건이 내연남과 함께 자신의 자녀를 살인한 사건이어서 도저히 사건기록을 읽다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재판부에 전화해서 사건을 맡을 수 없다고 통보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몇 년간 국선변호를 하지 못했었다. 지금이라면 내 분노나 양심과 달리 그저 사건 자체만 보고 변호할 수 있다. 그리고 기록을 통해 살인자라는 심증이 있어도 만일 당사자가 부인한다면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 무죄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런 사건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건 수임과 별개로 변호사의 역할은 판사를 설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사자의 의견이나 사실관계, 법률적 쟁점을 판사가 몰랐던 것이라면 이해하기 쉽거나 아는 것이라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궁극적으로 판사가 나와 의뢰인의 주장을 인정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처럼 언변이 좋아야 변호사를 잘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언변은 오히려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할 때 더 필요하고, 판사를 설득할 때는 말보다 글, 즉 서면이 가장 중요하다. 글의 순서도 중요하지만 논리적으로 나의 주장을 상대가 인정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서두에 결론을 미리 큼지막하게 던져놓고 왜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는 방식이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판사를 설득하는 데 성공해서 무죄 혹은 승소를 받으면서 판결문에 내가 서면에서 주장했던 내용이 그대로 복사한 듯이 쓰여 있을 때 쾌감이란 성공보수 입금을 확인하는 것과 별개로 내가 변호사로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참 뿌듯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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