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당고수 N잡러 May 27. 2021

갑자기 화가 나는 이유

부끄러움의 다른 이름

어제 재판이 있었는데 변론 중에 내가 기록도 제대로 읽지 않고 참석해서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재판부도 그런 말을 할 필요 없다고 제지했지만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화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재판이 끝나고 귀가하다 갑자기 따져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법정 앞과 주차장까지 상대를 찾아 헤맸지만 만나지 못했다. 혼자서 씩씩대면서 지하철을 타려고 승강장에 있는데 거기서 상대를 만났다. 왜 그랬는지 물으니 이미 제출한 자료에서 회사명이 변경됐지만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데 순순히 사과하는 말을 듣고서야 내가 이렇게 화를 낼 일인가, 혹시 화를 내는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와이프와 결혼 전 전세를 구하면서 공인중개사무소와 소통 중에 사소한 오해가 있어 갑자기 엄청나게 화를 낸 적이 있다. 지금도 와이프는 그 얘기를 하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왜 나를 무시하냐"는 거였다고 한다. 전혀 그런 일도 없는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이유를 알고 있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운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푸는 나쁜 습성이었다. 남 탓하는 거다.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오랜 기간 살아왔다. 자존감 부족이 심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경우가 있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모든 문제의 귀결이 부모인 것처럼 내 인생의 모든 문제는 주변이 아닌 바로 나다. 이걸 깨닫는데 40년이 걸렸다. 참 어리석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특별했던 경험과 남은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