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밥상

맞춤형 집밥

by 코코 COCO

오늘도 나는 부엌에서 머리를 굴린다. 주어진 도구들을 가지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세 식구의 밥상을 차릴지 고민하는 과정은 내가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숙제다. 그 과정의 시작점은 우리 가정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과거 홀로서기 시절, 나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텨낸 나를 위해 소박하지만 정갈한 한 끼를 스스로 정성껏 만들어 먹었다. 기분이 참 좋았다. 그렇게 집밥 요리의 묘미를 깨달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남편과 나의 식성에 차이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간이 센 걸 선호했고 나는 싱겁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좋아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나와 남편은 물의 양을 조절하고 소금과 간장을 활용하여 각자의 입맛에 맞게 집밥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가장 소중한 존재, 최고의 보물이

찾아왔다. 난생처음으로 아이를 위한 요리책을 구입했고 정석대로 요리했다. 대충대충 가감하며 맛을 보던 내가 최대한 아이의 입맛에 맛게 요리하는 엄마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다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시기가 찾아오면서 한결 수월해졌다. 여전히 아이를 고려해 따로 반찬을 만들었지만 이유식 시절에 비하면 눈감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싱거운 맛을 선호하는 내가 아이의 입맛에 조리한 음식을 먹으면 되었기에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아이의 입원과 함께 장내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료진의 진단을 듣게 되었다. 평소 아이는 가끔씩 변비에 걸리곤 했다. 그래서 여러 유산균을 골라가며 먹였고 변비가 자주 오진 않아서 크게 걱정하진 않았던 나였다. 그런데 아이 뱃속에 가스와 돌멩이와 같이 단단하게 뭉친 변들이 가득한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서야 심각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가 퇴원한 후부터 아이의 식단관리가 시작되었다. 아이에게 잡곡밥 대신 흰밥을 먹이고 국과 반찬을 더 싱겁게 만들었다. 유제품과 밀가루 제품은 최대한 제공하지 않았다. 밀가루 대신 쌀로 만들어진 제품들을 찾았고 직접 만들어 해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밥 한 끼를 차리면서도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설상가상 건강상의 이유로 내가 미역 등 요오드 함량이 높은 해산물을 제한하게 되면서 더욱더 복잡해졌다.

집밥은 엄마의 식성을 따라간다 했던가?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집 밥상에서는 생선, 미역국, 김 등 해산물 반찬이 조용히 그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주의해야 할 식품이지만 남편과 그리고 한참 성장해야 할 아이에게는 필요한 음식들인데 매번 고기반찬과 야채들 뿐이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그때부터 나의 맞춤형 상이 시작되었다.


먼저 밥을 짓는다. 쌀밥을 소량 짓고 난 후 바로 잡곡밥을 짓는 것이다. 국을 끓인다. 맨 처음은 삼삼한 간이 베이도록 끓인다. 어느 정도 속재료들이 익기 시작하면 1차적으로 나와 아이가 먹을 만큼의 국을 덜어내고 본격적으로 여러 조미료들을 투하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남편의 국이 완성된다. 해산물이 들어가거나 해산물 육수를 넣어야 할 때면 국을 두 개로 소분하여 아이에게 줄 때 적정한 비율로 섞어준다. 조미가 많이 되지 않으면서도 해산물 육수를 섭취할 수 있도록 기 위함이다.


밥과 식재료들을 한껏 썩어야 하는 볶음밥은 최근 꽤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 유용하게 활용 중이다. 맨 먼저 잘게 다진 야채 고기 등을 섞어 볶는다. 간장이나 후추 등의 조미료를 첨가할 때도 아이의 기준에 맞춘다. 사실 아이의 기준과 내 기준은 동일하다. 내 입에는 충분한 간이다. 그 후 볶은 식재료들을 잠시 하나의 그릇에 옮겨 담은 후 아이가 먹을 만큼만 다시 프라이팬에 덜고 쌀밥을 넣어 볶으면 아이의 볶음밥이 완성된다. 이어 나머지 식재료들을 다 프라이팬에 옮긴 후 남편과 나의 분량에 맞게 잡곡밥을 담아 다시 볶는다. 그리고 내가 먹을 만큼 덜어내 내 몫을 만든다. 마지막으로는 남편의 입맛에 맞게 아낌없이 조미료를 넣어준다. 그러면 남편의 볶음밥까지 만들어진다.


요식업에 종사한 적도, 요리 자격증 하나 없는 나이지만 프로는 도구와 상황에 개의치 않는다는 말을 생각하며 혼자 흐뭇해진다. 예전처럼 이것저것 다 빼놔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기존처럼 주어진 도구만 있어도 충분하다.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의 식성과 건강을 고려해 만들어내는 밥상에 뿌듯하다.

사실 나는 부모님과 살 때 '요리'라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생각했고 그저 매일 집밥을 해 주시는 마께 감사하는 마음만 가졌다. 내가 일손을 보태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손재주가 없어 괜히 일을 키울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하기 싫어 둘러댄 핑계였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의 헌신과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많이 건강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오늘도 나는 맞춤형 집밥을 만들고 있다. 나름대로 단체생활을 하는 아이가 친구들과 지내는 공간에서도 식단 관리를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집에서 만큼은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쓰려고 한다. 여전히 한 번씩 서글픈 눈망울을 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가 안쓰럽고 짠하면서도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맞춤형 집밥을 더 열심히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맛깔난 손맛을 보유하신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도 가끔 너무 싱겁다는 말을 할 때면 심술궂게 되받아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별말 없이 잘 먹어줘서 고마울 뿐이다. 몸에 건강한 천연 조미료를 찾아보고 내 입맛에 살짝 짭조름하다 할 정도로 간을 맞추려고 애쓴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까 싶어 밥상 옆에 가지각색 조미료들을 둔다. 여태 투박한 통들을 올려놨는데 더 예쁜 통들로 바꿔야겠다.


오늘도 맞춤형 집밥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내 머릿속에서 마구마구 튀어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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