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무기력에서 겨우 벗어나는가 싶었더니 열등감이 내 마음을 칭칭 감아버렸다. 자존감이 살짝 오르나 싶었는데 명절 연휴를 보내면서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아무도 내게 슈퍼우먼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았는데 왜 스스로 슈퍼우먼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떳떳하지 못할까.
결혼 전 나는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도 일을 하는 여성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예상치 못한 시기에 퇴사를 해야 했지만 '만약 건강에 이상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변을 못하겠다.
완벽한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바로는 100 % 완벽한 방법은 없었다. 늘 아쉬움이 뒤따랐다. 다만 그 아쉬움마저 받아들일 수 있는 만족감과 기대감이 넉넉했기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 내게는 퇴사 후 전업주부가 되면서 느꼈을 만족감과 기대감이 일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지 않은 사람들, 아이를 여럿 키워내는 사람들, 육아를 하면서도 자신을 가꾸는 사람들 틈에서 자꾸 위축되어 가는 내 모습이 싫었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았고 때로는 무능하다는 질책을 받기도 했지만 적어도 예전의 나는 언젠가는 반짝일 미래를 기대하며 힘을 내고 용기를 얻는 사람이었는데.
분명하게 말하자면 내가 처한 현실에 대응했던 나의 방법은 궁극적으로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내 선택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주도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일까?
큰 의미 없을 타인의 말 한마디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작은 부분까지 들춰내고 자책하는 나의 행동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긴 연휴를 맞이하면서 끊임없이 맴돌았던 질문이었다.
더욱이 명절에는 양가 가족들과 친척들을 뵙는 자리이니만큼 스스로 위축되었던 것 같다. 치솟는 물가와 추석맞이 용돈 지출의 증가는 전업주부이면서 재정 관리를 전담하는 나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기도 했다. 괜히 눈치가 보였고 머릿속에서는 계산기가 쉴 새 없이 두들겨졌다. 60대의 부모님은 여전히 경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계시는데 30대의 나는 무직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외벌이 하면서도 나에게 몸 건강을 위해 쉬라고만 하는 남편에게도 미안했다.
그렇게 속으로 고민하며 긴 시간 속에서 내가 얻어낸 결론은 열등감이었다. 열등감 때문이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내 모습과 진짜 내 모습 사이의 차이가 다른 누군가의 모습과 대조대면서 극대화될 때면 일차적으로는 부러웠고 이차적으로는 우울했으며 삼차적으로는 모든 게 한없이 공허해졌다. 지속되면 안 된다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열등감, 이 열등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내가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과 함께 타인과 비교하는 열등감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도 있는 법이고 최선을 다했지만 생각만큼,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해내는 일들이 때로는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다 못 해내는 일들이 나에게는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지금 흘러가는 시간은 빠르지만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아직도 많다. 언제 삶을 마감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굳이 일찍 끝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까진 없다. 어차피 모르니 이왕이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거라는 생각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오래 살 거라는 가정하에 현재 나의 전업주부 기간은 내가 엄마의 역할을 해냄과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가기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주변의 미묘한 시선과 압박도 너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당장 결과물을 보여줄 순 없지만 결과물을 얻기 위해 잠재력을 키우는 중이니 그저 내게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뭔가를 얻으려면 내려놓아야 할 것도 있다. 당분간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경제적 능력이다. 남편에게 큰 부담을 주어 미안하지만 무거운 짐이 되지 않게 돈을 계획적으로 사용하고 나의 경제적 능력을 키우고 기회가 생길 때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
또한 인정할 것은 인정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다자녀를 키우는 엄마들과 달리 나는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일이 버거운 엄마임을. 나에게는 어렵다. 어쩌겠는가. 내 능력이 여기까지인 것을. 하지만 최선을 다할 거다. 아이가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존재로 키우기로 다짐했다.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쏟아 정작 아이에게 쏟을 에너지가 고갈되어 불필요한 언성을 높이는 대신 선택과 집중으로 아이에게 온전히 에너지를 사용할 것이다.
고민 끝에 내린 다짐이 다소 진부할지라도 곱씹고 곱씹어낸 고민의 결과이기에 만족한다. 끝나가는 연휴, 나의 열등감과 그에 대한 고민도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