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는 태도도 때로는 필요하다
한 살을 더 먹으면서 드는 생각 하나가 있다. '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힘도 필요하다'라는 생각. '열심히 하면 된다, 노력하면 된다'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살다 보니 때로는 열심히 해도, 노력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걸 차차 깨닫게 된 것 같다.
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힘이 턱없이 부족했을 때, 나는 격렬하게 저항하고 부딧치고 울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의 눈물,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과 통곡 속에서도 해야 할 일들은 존재했고 어찌 됐든 나는 살아나가야 했다.
마음이 철렁 내리며 앞이 캄캄하던 순간이 있었다. 20대 때와 30대 때 각각 한 번씩, 20대 때는 두려움이 압도되어 밤에 눈을 감는 순간마다 며칠 후에 눈을 뜨길 남몰래 기도했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뜨는 순간부터 숨이 차올랐다. 열심히 해도, 최선을 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실패했다. 내 마음을 누군가가 두드리면 두 눈에서 왈칵 눈물이 솟아날까 봐 겉으로는 더욱더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시기였다.
30대 때,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런데 신기했다. 두려움보단 이성적인 판단이 더 앞섰다. 경험과 연단의 결과였다. 한 때 SNS에서 많이 봤던 문구처럼 나 역시 하나님께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지혜를 달라고,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일에는 모두 하나님의 뜻에 맡기겠다'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턱없이 연약하다. 잘 지내는 것 같았지만 나도 모르게 감정이 동요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에게 보내는 메신저를 통해 하나님께 내 마음을 고백했다. 힘들다고 너무 힘들고 두렵다고, 하지만 내일 나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아이 등원을 준비하고 출근할 테니 함께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결국 내 의지로 좌지우지되지 못하는 일들이다. 안타깝지만, 속상하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실, 내 의지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들. 누군가에게는 가능한 일일 수도 있는데 결국 그 불평등한 상황도 때로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다. 무너진 하늘에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 방법이 결국 '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힘'이다. 내면에서 견고하게 힘을 키웠을 때 비로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할 수 없는 일들에 미련을 버릴 수 있다. 아주 담담하게.
나이를 먹어가니 얼굴과 몸에서 연륜이 느껴져 싱그러운 젊음이 부럽기도 하지만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생각과 삶의 기준만큼은 지금이 더 좋다.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삶이 좀 더 평온해진 것 같다.
2026년이다. 작년까지 깨닫지 못했지만 잘 키어온 '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힘'을 바탕으로 과거에 연연하기보단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나'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