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아이의 부모구나'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이를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과의 만남 특히 부모 상담을 할 때이다.
아이의 어린이집에서는 1년에 두 번 부모 상담이 진행되었다. 사전에 미리 질문지를 작성하는데 쓰다 보면 어느새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빈틈하나 남김없이 써 내려간 질문지를 보며 어떻게 이렇게 썼나 싶지만 질문지 칸이 크다 한들 나는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썼을 것이다. 그만큼 자라나는 아이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지금도 여전하지만).
부모 상담 당일, 나는 긴장과 설렘을 안고 보육 기관에 방문했다. 등하원 때와 달리 담임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인 만큼 내 나름대로 단정하게 꾸미고 집을 나섰다.
상담을 통해 나와 남편이 알고 싶었던 것은 무엇보다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는가였다. 혹여나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앞으로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를 일목요연하게 유아 교육 전문가이신 선생님께로부터 듣고 싶었다.
인사와 함께 시작된 부모 상담 시간,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내게 하신 말씀은 우리 부부가 써 내려간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 질문이었다.
"어머님, 우리 oo 이는 올해 oo반으로 올라오면서 많이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답니다. 어머님이 보시기에는 oo이의 어떤 면이 크게 성장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아이의 성장폭이 다른 때보다 크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았기에 그 부분을 중점으로 대해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은 맞다고 맞장구를 쳐 주시면서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의 답변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랬다.
"어머님, oo 이는 지금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가장 아이다운 수준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완벽해지려는 성향 때문에 실수로 의기소침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아이의 실제 어린이집 생활 모습을 들어보니 자존감이 높았다. 신경 써서 지도해 줘야 할 것 같았던 부정적인 감정 표현도 딱 아이의 수준에 맞았다. 또래에 비해 자주 안아달라고 하는 등의 모습을 때문에 주변에서 '동생이 없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설명도 해주고 동생들을 챙겨준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불리는 별명이 '꼬마 선생님'이라고 선생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동안 나는 내 수준에서 훈육이라는 명분하에 아이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했다는 걸 이번 부모 상담을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미안했고 부담감을 안고도 잘 성장해 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잘 지켜봐 주고 아이를 믿어주신 선생님께 감사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역지사지이다. 나는 이 덕목을 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와 갈등이 생길 때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그 덕목을 쏙 빼놓는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잘 모르니까 부모인 내가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앞선 나머지 정작 아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보육기관에서 올챙이가 자라는 모습을 매일 이야기해 주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개구리 같은 부모가 되지 말자. 아이는 지금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