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by 코코 COCO

한 번씩 피곤함이 빗발치듯 밀려올 때가 있다. 나름 체력에 자부심이 있는 나였는데 나이가 자꾸 그 자부심을 긁어먹는다.


그날도 그랬다.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피곤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아이를 등원시키면서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청소를 하던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깜박 졸아 하마터면 아이가 전전긍긍하며 어린이집에서 나를 기다리게 할 뻔한 날이었다.


하원하기 약 5분 전에 극적으로 눈을 뜬 나는 부랴부랴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많이 늦지 않았고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점점 강렬해지는 햇빛 속에서 아이와 나는 손을 잡고 주변을 산책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있는 아이를 향해 욕실로 향하라 했고 여러 번의 실랑이 끝에 아이를 씻기고 저녁밥을 먹였다. 아이의 이를 깨끗하게 닦아주고 놀잇감을 가지고 함께 놀았다. 중간중간 졸음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참을만했다. 이제 곧 있으면 아이를 재울 시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몸을 눕힐 시간, 어쩌면 오늘 하루 내내 기다리고 있었던 바로 그 순간이 찾아왔다. 은은한 조명등을 켜고 아이에게 말했다.


"oo야 이제 자자"

"엄마 이거 한 번만 하고 자자. 응?"


뜬금없이 다른 놀잇감을 들고 와 한 번만 하자는 아이, 나의 피곤함과는 별개로 자야 할 시간이었기에 안된다고 말했지만 그날도 아이는 내 말에 떼를 쓰면서 놀잇감들을 이불 위에 펼쳐놓기 시작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내가 배운 훈육의 기본자세라 함은 아래와 같다. 감정을 배제하고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일관된 말투와 표정을 지을 것,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왜 안되는지 이유를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설명해 줄 것, 대안책을 제시할 것, 아이가 수긍할 때까지 기다려 줄 것.


늘 되뇌고 되뇌다 보니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졌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날 나는 어김없이 큰소리로 아이를 꾸짖고 말았다. 규칙적인 수면습관을 위한 훈육이라는 포장지로 감싼 나의 감정들이 입 밖으로 튀어져 나왔다. 남편이 지금 옆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당시 남편은 건강상의 이유로 입원 중에 있던 상태였다. 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아이에게 조건을 걸었다.


"좋아, 그럼 딱 10분만 하는 거야. 그 이후에는 무조건 자리에 눕는 거야. 알겠지?"

"응, 엄마."


그렇게 시작된 놀이, 아이는 언제 혼났냐는 듯이 평소처럼 말했지만 한 번씩 내 눈치를 봤고 그런 아이를 쳐다보고 있으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불필요한 짜증을 부렸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죄책감이 점차 몰려왔다.

"엄마 왜 자꾸 나 쳐다봐?"

"oo야 엄마한테 와 봐."


말없이 바로 내게 안긴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의도치 않았는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사회생활 할 때 어떤 상황이더라도 단 한 번도 타인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였는데 아이 앞에서만큼은 자꾸 실패를 하고 만다.

"oo야 엄마가 화를 내지 않고 말해도 되는 거였는데 큰 소리로 화내서 미안해. 엄마가 좀 피곤한 상태인데 그래서 엄마가 조금 힘들었나 봐. 그래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엄마가 oo한테 정말 미안해."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엄마."


아이의 눈동자에는 나를 향한 원망도 미움도 슬픔도 전혀 없었다. 오로지 사랑만 가득 담긴 눈동자였다. 맙소사, 내가 아이를 다독여줘야 하는데 아이가 나를 다독이는 꼴이라니.


아이는 평소처럼 즐겁게 놀잇감을 가지고 놀았고 끝나기가 무섭게 눕고 잠이 들었다. 나 역시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잠이 드는 순간에도, 그다음 날 내 발을 간질거리며 깨우는 아이의 손길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에도 어제 내게 보여 준 아이의 눈빛과 말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안다. '괜찮아' 이 말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큰지. 그 한마디가 넘어진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짧고도 강렬한 문장인지.


그 말을 내가 아이로부터 듣게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





이전 04화아이가 원하는 행복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