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온 치즈 양반 [이방인]

옛구닥다리 이야기보다, 지금의 행복 앞으로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

by 썬썬


우리 모두 이방인이다

그럼에도 타인을 이방인 처럼 대하면

그건 또다른 차별이다. 이방인이라는

말과 행동으로 타인에게 상처주지 말자



이방인 [이:방인] - 명사 :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또는 나와 다른 사람을

행동이나 말로 표현 할때 쓰는말


우리는 매일 사람들을 마주한다. 길에서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연이건 내 가까운 친구이건 살을 맞대고 사는 내 남편 그의 오랜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아내들 그외에 짧게 나마 소개받고 알게되는 잘 모르는 제3자들까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면 서로간의 마치 엉켜있는

실 처럼 관계가 복잡한거같다.


그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의 털실이 잘풀리면 좋은 인연이 되고 제대로 엉키면 골치 아프거나 피곤해지는 것이 우리의 매일 일상 인것이다.


나는 말 못할만한 사정이 있는 가정사가 있는건

아니지만 우리 가족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나 말할 기회가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의 고등학교때 친구, 대학교때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들과도 왕래하며 지낸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내나이를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살아온 날 보다는 외국에서 살아온 날이 더 길지만 나는 단한번도 내가 이방인 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고 나를 키워준 부모님을 떠나 나는 이른 나이인 18세에 혼자 독립하였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혼자 하이스쿨과 컬리지도 다니며 너무나 좋은경험도 많이 해서인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남다르다는 말을 주변에서 가끔 듣기도 했다. 어린 나이 이다 보니 세상 경험이 없어 세상이 좋게 보인 이유도 있는것 같다. 그렇게 십대를 보내고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와 혼자 캘리포니아로 독립을 하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를 통해 나는 많은 친구를 한꺼번에 얻었다.


그렇게 우리 여러사람들은 잘 지냈고 잘 지내는줄 알았다. 나는 적어도 한달에 세번정도 만나는 우리 부부동반 친구들을 만나며 연신 수다도 떨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하루는 날을 미리 정하고 4시간을 차로 운전해서 남편의 대학 친구인 베트남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그가 싱글일때부터 지금은 만나지 않는 옛여자친구와도 잘 아는정도로 나는 내 남편의 베트남 친구가 내친구처럼 편했다. 그친구가 결혼을 하고 큰집 장만 하고 부터 그집에서 부부모임으로 자주 만났다. 그렇게 그집에 그날 도착하고 나서 30분을 그집 거실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쉬는중에 남편의 친구인 Joe는 별다방에 커피를 사러간다 해서 내가 따라 나섰다. 나와 내남편이 동갑인데 비해 Joe는 우리보다 2살이 많은 미국계 베트남사람이었다.

키는 160cm로 외소하고 말랐지만 직업과 연관 되어그런지 변호사 답게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 반면 말이 빠른편이이다.


우리들 부부끼리 모이면 6명이 되는데 해외여행도 부부동반으로 많이 다녔고 친구들중에 Joe는 잘 웃어주고 사람을 늘 편하게 대해주던 그런 친구이다. 내 남편의 친구 이긴 하나 그날 그의 차를 타고 별다방으로 간것은 조금은 내가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후에 내스스로 자책을 하였다.


그의 차를 타고 별다방으로 가는 도중에 그가 차에서 대뜸 내게 물었다. Where is your Parents? 너는 부모님이 어디계셔? 그의 질문을 받자 기분이 나쁘기 보다는 왜? 이걸 지금 내개 묻는거지? 머릿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막상 대답을 하려니 뭔가 텐션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의 입이 쉽사리 뗴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지난 20년동안 내게 물어볼 기회가 많았을것인데 나는 그의 집에 방문한 친구의 아내이고 왜 아무도 없고 우리둘만이 있는 차에서 물어보는것인가? 별다방에 도착해서도 뭐지 이느낌?

나는 오래전부터 그들에겐 이미 이방인이 었던것이다. 부부동반 모여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화려한 디너를 먹고 그 많은 해외 여행들도 다녔음에도 그들에겐 내가 이방인 이었단걸 알고부터는 우리

남편의 친구들을 대할때 내가 그들에게 웃어 보여도 내마음이 그들에 대해 진짜마음이 생기지 않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나이가 어린 학생이던 나이가 많은 사람이던 한번쯤은 이방인 취급 받아 봤을것이다. 그 장소가 교회가 됬던 학교가 됬던 소모임이던 등산모임이던 온라인의 실시간 댓글창이던 이방인 취급은 여러방면을 나타나는것 같다.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범위가 다르지만 누가 나를 반갑게 반기지 않는다면 이방인 취급 밥는거 같아 기분이 나쁠수도 있고 화도 날수 있다.


나는 우리 신랑 친구 Joe의 뜬금 없는 질문에 우리가 20대때 알게되서 이젠 40대가 되었는데 부모가 어디있는지라는 질문을 받고 솔직히 대답해주었다.


사실 우리 엄마는 내가 결혼 하기 한달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 하셨고 아버지와는 내가 나이 들고 늦게 나마 연락하게 되었다라고 잘 설명을 해주었지만 사실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가족을 돌보지 않은것에 대해 이제와서 아버지를 원망 하거나 하는것이 무슨 의미이며, 아버지에 대해 솔직히 말하게 되면 아버지를 욕보이게 되는거같아 어떠한 거론을 하고 싶지 않은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큰 비밀이 아니다. 내 아버지가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라는 말을 남편 친구에게 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결혼식은 조촐하게 치뤄졌고 우리 부모님은 오시지 않으셨다. 사실 못온것이 맞다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는 안계셨고 아버지는 시카고 집의 연락처를 알수가 없어 결혼여부에 대해 알리지 못하였던

이유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우리 신랑도 그런부분은 이해를 해주는 부분이었다.


나는 결혼 생활도 재밌고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가족사에 대해 또는 나의 조촐했던 결혼식에 대해 주변지인들은 물어보는일은 없었다. 예전에 알고지내던 분이 내게 해주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혹시 인생을 살면서 나와 다르다고 선입견을 두고 말을 안하거나 나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멀리 하라던 말이었다. 사실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못랐었다.

그분말씀은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과

생명은 결국 혼자살아가게 된다고 그러니 일찍 독립 했어도 타인에 의해 외로워질때 외로워 하지도 말고 혼자 있다고 주눅들지 말라며 태어날때도 혼자 였고 죽을때도 혼자 간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제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그친구들에겐 나는 늘 이방인으로 낙인 찍히고 이것이 벌써 6년전의 일이 됬어도 Joe는 여전히 나는 이방인 인것이다.


사람은 때론 상대에 대해 궁금한것이 있어도 상대가 말하지 않는다면 먼저 묻지 말길 바란다. 나는 궁금하지만 상대는 말하기 곤란한 일일수 있거나 별것이 아니면 대답을 해줄수 있을테지만 내가 궁금해하는것을 그냥 물어봤다가 상대는 떠올리기 싫은 옛일을 떠오르게 할수있으니 말이다.


하이스쿨 시절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이른 아침 친구집에 들러 친구를데리고 같이 학교를 등교한적이 있다.


그집에 가면 2층집에 늘 친구뿐이었다.

다른 가족은 없었고 친구와 대화를 하면 늘 그친구 엄마얘기다.


나는 단한번도 그친구의 가족 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물어본적이 없고 그저 친구로만 대했다.

상당히 오랜 시간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친구가 먼저 말해주면 들을것이고 굳이 그에대해 묻지 않을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이의 예의 일것 같다라는 마음을 굳힌지 오래고 그렇게 친구에게서 큰 교훈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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