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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깨지는 순간, 리더는 무너지는가

by 최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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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농구 클럽팀, 휠체어농구 국가대표팀, 그리고 비장애인 생활체육팀을 지도해오며 나는 다양한 유형의 선수들을 만났다.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능력이 뛰어난 선수일수록 머릿속에 ‘그림’을 정교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리딩 가드 역할을 맡은 선수들은 경기 흐름을 설계하는 전략가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1차, 2차, 3차 전술 시나리오가 마치 GPS처럼 그려져 있다. 문제는, 그 정교한 설계가 현실에서 틀어지는 순간에 찾아온다.


어느 날, 클럽팀의 한 선수가 훈련 중 보여준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눈빛만으로 팀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경기 이해도가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동료가 예상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자, 그의 패스는 허공으로 흘렀고 그는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한참을 멈춰 있었다. 휠체어농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유사한 장면을 본 적 있다. 완벽한 설계를 가진 선수가, 팀의 움직임이 어긋나자 스스로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 말이다.


이 문제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멘탈’, 즉 감정 조절과 수용의 문제다.

스포츠 심리학자 Jim Afremow 박사는 그의 저서 “The Champion’s Mind”에서 이렇게 말한다.


“엘리트 선수들은 기술이 아닌 멘탈로 승부가 갈린다. 특히 팀 스포츠에서 리더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비장애인 생활체육팀을 지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능력이 좋은 선수일수록 '왜 저렇게 안 해?', '왜 내 그림대로 안 움직여?'라는 감정이 앞선다. 그러나 팀 스포츠의 본질은 '함께 맞춰가는 것'이다. 리더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팀 전체가 흔들린다.


NBA 전설 Magic Johnson은 말한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동료를 믿을 때 완성된다."


그는 완벽한 동선을 고집하기보단,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힘이 진짜 리더십임을 증명했다.


나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너희들이 아무리 정교한 그림을 그려도, 현실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그때 중요한 건 '화'가 아니라 '믿음'이고, 다시 그릴 수 있다는 ‘유연함’이다.”


코트 위의 그림은 혼자 그리는 작품이 아니다. 함께 붓을 들고, 함께 채색하는 공동작업이다.

그리고 이 말은 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다양한 팀을 지도하며, 나 또한 내가 그린 전술과 방향성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지금 내가 흔들리는 것은 외부 때문인가, 아니면 내 안의 감정 때문인가?”


결국, 그림이 깨졌을 때 드러나는 것이 진짜 리더의 품격이다.

멘탈이 강한 리더는 무너진 설계 위에 다시 팀을 세운다. 그것이 진짜 ‘리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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