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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남의 실패를 기다릴까

by 최용윤

나는 대한민국 휠체어농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선수들과 함께 세계 무대를 누비며 매일 성장의 순간을 마주한다.
코트 위에서 선수들이 서로의 휠체어 바퀴를 맞물리며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준비하고 노력해도, 예상치 못한 시선과 평가가 늘 따라붙는다.
모든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일부 휠체어농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돌기 시작했다.


“전술이 엉망이다.”
“어떤 선수는 왜 뽑혔는지 모르겠다.”
“몇몇 선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결과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이미 판단과 소문이 흘러다녔다.
한 경기만 보고 모든 걸 단정 짓는 사람들, 그리고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퍼뜨리는 이들.
그들을 보며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팀의 땀과 노력이 평가보다 앞서야 하지만, 현실은 늘 그 반대였다.


처음엔 억울하고 속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이런 현상이 단지 개인의 비난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깊은 뿌리와 관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즉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은밀한 쾌감이라 부른다.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경쟁적 관계 속에서 상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느끼며 무의식적인 안도감을 경험한다고 한다고 한다.


즉, 누군가의 성공은 곧 나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타인의 실패는 나의 안정을 보장해주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런 심리가 강한 집단일수록, 남의 노력이 빛나기도 전에 그것을 깎아내리려는 움직임이 잦다.
결국 우리의 경기 결과보다 더 치열하게 흔들리는 것은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선 속에서도 내가 확신하는 것이 있다.
진짜 성장은 결과보다 과정에서 비롯된다.
우리 팀의 한 선수는 꾸준한 합숙 훈련을 통해 눈에 띄게 성장했다.
기록은 향상됐고, 경기 내 역할도 더욱 단단해졌다.
비록 외부의 평가는 냉담했지만, 나는 그의 땀과 집중력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비난을 연료 삼아 더 단단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배웠다.
“비난은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방향은 우리가 정한다.”
외부의 말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의 신뢰였다.
누군가가 평가를 내리기 전에, 우리는 이미 서로를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야말로 진짜 강팀을 만드는 힘이었다.


소문과 비난은 팀 전체의 분위기에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동시에 하나의 시험이 된다.
그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진짜 리더십의 본질이다.
코치로서 나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이 뭐라 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네가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그 말 뒤에는 내 경험이 녹아 있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실패가 아니라, 남의 시선에 흔들리는 나 자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가 뭐라 하든, 팀이 굴리는 바퀴의 방향은 우리가 정한다는 것을.


경기 후, 나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결과가 전부가 아니었다.
비난이 들려올수록, 우리는 더 굳건히 나아갔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남의 험담은 결국 그들의 불안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진짜 강한 팀은 그 불안을 이겨내는 법을 안다.


남의 실패를 기다리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가둔다.
남의 성공을 축하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짜로 성장한다.
세상은 여전히 평가와 시기로 가득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묵묵히 굴린다.
소문은 사라지지만, 진심으로 흘린 땀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그 믿음으로 선수들과 함께 코트를 향해 나아간다.
누가 뭐라 하든, 우리의 휠체어 바퀴는 같은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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