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회는 늘 같은 사람에게 갈까

by 최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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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는 말보다 먼저 도착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같은 장면을 보곤 했다. 같은 아파트 동에 사는 한 사람은 늘 먼저 인사를 건넸다. 눈을 맞추고 고개를 숙이고 또렷한 목소리로. 처음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까지 예의를 갖춰야 할까 싶었고 괜히 내가 더 신경 쓰이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그 인사는 날씨나 기분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다. 바쁜 아침에도 피곤해 보이는 저녁에도 늘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인사를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모습은 오래된 기억을 하나 끌어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팀 코치 선생님은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90도로 인사하셨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선수 학부모 심지어 길에서 마주친 동네 어른에게도 같은 자세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늘 같은 말을 하셨다. 농구는 코트에서 하지만 평가는 코트 밖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그땐 성적과 실력만이 전부라고 믿고 있었기에 그 말은 마음에 오래 남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문장은 내가 겪는 현실과 놀라울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돌이켜보면 그 가르침은 처음 접한 것이 아니었다. 더 오래된 기억 속에 이미 같은 방향의 메시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동네 어른을 보면 반드시 먼저 인사하라고 가르치셨다. 고개를 숙이는 건 상대를 낮추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낮추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땐 그 말이 그저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사회에 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며 나는 그 의미를 반복해서 떠올리게 된다. 인사는 예의가 아니라 관계의 출발선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배웠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서는 순간을 자주 마주한다. 회의실에서 프로젝트 현장에서 평가를 앞둔 자리에서. 결과만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기회는 늘 비슷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보고서를 제출하는 태도 회의가 끝난 뒤의 인사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보이는 말투와 표정. 공식적인 평가표에는 적히지 않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분명히 남는 장면들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의 근거가 된다.


휠체어농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현장에 서면서 나는 그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확인했다. 같은 훈련을 소화하고 비슷한 체력과 기술을 가진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얼굴은 늘 비슷하다. 훈련이 끝난 뒤 묵묵히 코트를 정리하는 선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도 태도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수 스태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선수.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신뢰는 조용히 쌓아 올린다. 그리고 결정의 순간 지도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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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여러 인터뷰에서 태도와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동일한 실력을 가진 선수라면 자신은 태도가 좋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력은 훈련으로 어느 정도 비슷해질 수 있지만 태도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언론과 NHK 인터뷰에서도 그는 인사와 일상적인 태도가 팀 신뢰의 출발점이라고 언급했다.


심리학 연구 역시 이 이야기를 뒷받침한다. 미국심리학회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과 첫인상이 신뢰 형성과 전문성 인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말의 내용보다 태도와 행동이 먼저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사람을 판단하고 그 판단은 이후의 기회 배분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기회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축적의 결과다. 매번 먼저 건네는 인사 같은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태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의 자세. 그것들은 당장 성과로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신뢰가 쌓이고 결국 선택의 순간에 조용히 힘을 발휘한다.


실력은 언젠가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태도는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생각보다 자주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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