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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omanist Jan 02. 2024

라일락 꽃과 계절

오늘 한 장, 히사이시 조 - 인생의 회전목마/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조각글 모음은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미지를 글로 옮기는 글쓰기 연습 프로젝트입니다.

 주관적인 창작글이니 가볍게, 노래와 함께 즐겨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NXt-YY3Xt8Q&pp=ygUW7J247IOd7J2YIO2ajOyghOuqqeuniA%3D%3D

히사이시 조 - 인생의 회전목마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한 줌 불어오는 바람이 지나가는 이들의 걸음을 붙잡았다. 산뜻한 봄바람과 은은하게 퍼지는 라일락 향. 가을과 같이 높고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완전했다. 완벽하게 눈부신 봄의 어느 날. 한 방울 눈물이 미소 지은 입술을 타고 떨어졌다. 흑백 사진 같은 기억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대리석 길 옆으로 라일락 나무가 늘어서있다. 낯선 보라 빛으로 물든 거리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짙은 향기를 뽐냈다. 새빨간 원피스를 입은 유리의 손을 지우가 가볍게 쥐고 있었다. 다른 손엔 분홍의 솜사탕이 들려있다. 천진하게 웃는 모습. 왁자지껄한 놀이동산 저 멀리 회전목마가 보였다. 빙그르, 돌아간다. 많은 이가 앉아 있는 말과 마차 사이로 아무도 타지 않은 백마가 유독 눈에 띄었다. 마주친 목마의 눈이 한없이 슬퍼 보인다. 유리는 재우를 마주 봤다. 그가 빙그레, 웃었다. 그 편안한 미소로 유리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그의 품에서 고혹한 라일락 향이 났다. 유리의 기억에 온전히 배었다.


 유리는 눈물을 훔쳤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무섭도록 고요했다. 지나간 옛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추억이 불현듯 밀려오듯이, 봄이면 불어오는 라일락 향은 지우와의 기억을 어김없이 동반했다. 네이비 색 정장을 입고 라일락 향 향수를 쓰던 지우. 그는 나를 어떻게 추억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과 연인이 여럿 보인다. 그들 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자신을 보니 홀로 회전 판 위를 돌고 있는 목마가 된 것 같았다. 불어오는 봄바람 사이로 발걸음을 옮긴다.


 올 해도, 내년에도. 그다음 생에도, 라일락 향은 바람과 함께 날리리.


 흐르는 강물처럼, 돌고 도는 회전목마처럼. 그 고독한, 목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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