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장, MC스나이퍼의 유서(강릉에서)
https://youtu.be/nSqM-_I-H4w?si=M5QdEzYltoNGYQD5
이어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미안해요 그댈 외롭게 해서. 놓지 마요 우리 지금 잡은 손. 언제 어느 곳에 있어도 항상 당신 곁엔 내가 있단 걸, 잊지 마요.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제법 아름답다. 파도 소리가 들린다. 하늘엔 무수히 많은 별이 빛나는데, 칠흑 같은 바다 위론 그 흔한 빛 한 줌 없이 적막했다. 끝없는 심연. 그럼에도 보고 있자니 편안해지는 건 왜일까.
핏빛 구두를 벗어 모래 위에 고스란히 두었다. 맨발로 해변을 걷자니 기분이 묘했다. 어릴 적 부모님과 갔던 해수욕장. 대학 시절 동기들과 갔던 해운대. 몇 해 전 사랑하는 이와 갔던 정동진까지. 맨발로 모래사장을 거닌 기억은 모두 눈이 부셨다. 그 기억의 끝맺음이 오늘이라니, 조금은 씁쓸했다. 하지만 나쁘진 않다, 마지막 떠올림이 그들이라면.
한참을 실없이 웃으며 걷는데 파도 끝이 발을 적셨다. 칼로 에는 듯한 냉기에 화들짝 놀랐다.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강렬한 삶에의 의지.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굳어버렸다. 망부석처럼 돌로 변했으면 했다. 내가 나의 목숨을 스스로 끊지 못하도록. 또 한 번의 파도가 굳어있던 나를 깨웠다. 이번엔 불타는 용광로 같았다. 흐르는 용암이 발에 닿은 듯 뜨거웠다. 하지만 이내 무뎌졌다.
눈먼 기억이 떠올랐다. 미친 듯이 차갑다가도, 불처럼 뜨겁던. 하지만 다시 돌아봤을 땐 이미 모든 것이 무감각해진. 젊음을, 사랑을, 그, 삶을. 몸을 돌려 바다를 등졌다. 높은 산맥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이 산맥 뒤 어느 게쯤, 내가 살던 곳이 있을 테지. 거친 욕을 뱉어주었다. 그리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보는 이도 없지만, 삶에 끝에서 이 정도 청승은 괜찮겠지.
유서는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정적인 선택인 건 아니다. 죽으려는 이의 생각을 어찌 살아있는 이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했을 뿐이다. 구구절절 떠들어 이해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죽으려 마음먹은 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이 어쩔 수 없음을.
이어폰도 빼지 않았다. 노래가 없다면, 살아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발, 그것만큼은. 바다는 여전치 차가웠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새하얀 원피스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손에 걸려 불편했다.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자 공포가 밀려왔다. 벌써부터 숨이 막혔다. 누군가 가슴을 짓누르는듯하다. 그렇다고 멈추진 않았다. 물보다 이곳이, 훨씬 무거웠다. 잠시 제자리에 멈춰 숨을 고르는데 검은 언덕이 보였다. 다가왔다. 달려오는 차에 치인 것처럼 순식간에 균형을 잃었다. 물속으로 부유했다. 육지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엄청난 힘이 또다시 잡아끌었다. 고통스러웠다. 몸이 의식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자, 그토록 원했던 죽음이 실감 났다. 두려웠다. 살고자 발버둥 치는 몸이 의식 저편에서 흐릿하게 느껴졌다.
피식,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