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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omanist Dec 12. 2023

오늘 한 곡, 콘서트

오늘 한 장, 아이묭(Aimyon) - 너는 록을 듣지 않아

 조각글 모음은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미지를 글로 옮기는 글쓰기 연습 프로젝트입니다.

 주관적인 창작글이니 가볍게, 노래와 함께 즐겨주세요.


https://youtu.be/Bq0JS2uiduE?si=_ajltsvcEujd5fL7

아이묭(Aimyon) - 너는 록을 듣지 않아(君はロックを聴かない)

 하얀 조명이 너의 이마를 비췄다. 기타 위로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드럼 소리에 맞춰 관객들이 뛰고 있다. 너는 하얀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감싸 쥐었다. 첫마디와 함께 환호가 터져 나온다. 조명이 폭죽처럼 터지며 무대를 비췄다. 노래가 정점을 향해 가며 무대 위 연주자들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쏟아진다.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동경하던 록스타들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노래하고 있지만, 이 무대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기에 괜한 감정이 북받쳤다. 고작 3분 남짓한 무대에 지난 7년이 오롯이 담겼다. 붉어진 눈시울을 모른 체 더욱 열정적으로 드럼을 두들겼다. 이 무대가 우리의 마지막 무대니까.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밴드는 해체됐고 각자 생업을 찾아 나름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 무대 이후 그녀는 습관처럼 이젠 록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일종의 선언이었다. 더는 록을 듣지 않아. 더는 록을 좋아하지 않아. 바늘로 스스로를 찌르듯 다그치는 모습이 못내 안쓰러웠다. 그 정도 결심이 아니라면 그녀는 결코 노래를 포기할 수 없었으리라. 그걸 알기에 옆에 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잃은 젊음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을 울타리를 얻어냈다. 지금이라면 다시 음악이란 유혹을 삼켜도,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에 안정도 이루었다. 문득 올려다본 거실 형광등이 오늘따라 눈부셨다. 그 옛날 조명처럼.

 10월 달력에 끝이 보인다. 서늘한 바람이 단풍 사이로 불어왔다. 어디선가 군고구마 냄새가 함께 흘러온다. 그저 하루하루 걷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을의 한가운데였다. 어디 가냐고 묻는 너의 손을 잡고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집 근처에 오래된 상가 앞에 멈춰 섰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아직 한낮임에도 어두웠다. 조심스럽게 한 칸 한 칸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더 어두워졌지만, 이내 눈이 적응하기 시작했다. 지하 2층엔 연습실이 있었다. 불을 켜자 드럼과 앰프, 건반이 보인다. 상황을 살피는 너를 두고 나는 드럼에 앉았다.

 연주할 곡은 이미 정해뒀다. 밴드를 결성하고 처음 연습했던 합주곡. 보컬은 너였지만 드럼과 함께 직접 불러본다. 스틱을 쥔 손을 바삐 움직이며 눈짓으로 연습실 한편에 기타를 가리켰다. 그녀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신기한 구경이라도 하듯 나를 바라봤다. 드럼은 어떻게든 쳐지는데 노래가 도저히 불러지지 않았다. 음이탈이 쉼 없이 나자 그녀가 웃으며 걸어왔다. 비록 기타는 매지 않았지만 마이크 앞에 섰다. 조금은 거칠어진 하얀 손으로 마이크를 쥐었다. 미묘하게 떨리는 어깨가 보인다. 무대를 시작하기 전, 그녀의 작은 습관이었다. 내가 노래를 멈추자 그녀가 입을 연다. 첫마디와 함께 마음속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여전한 목소리다.

 7년을 뒤에서 지켜봤던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이 20년 만에 다시금 펼쳐졌다. 짧아진 머리 뒤로 함께 했던 합주실과 무대들이 겹쳐 보였다. 감정이 복받쳤다. 이젠 붉어진 눈시울을 외면할 틈도 없이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나이가 먹으며 눈물을 참는 근육까지 약해진 건가.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굳은살이 다 빠져버린 손이 아파 온다. 그래도 부서져라 드럼을 두들겼다. 드러머와 어울리지 않는 손으로 변한 나와 달리, 너의 목소리는  20년 전 그대로였다. 이런 목소리를, 어떻게 참아왔을까. 어쩌다 흥얼거린 노래에도 흠칫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 시절 록을 다시금 쏟아내고 있었다. 조명도 관객도 없었다. 베이스도 건반도 없었다. 드럼과 보컬뿐인 연주지만 춤추듯 합주를 이어갔다. 첫 합주곡이었던 만큼 가장 오랜 시간, 정말 질리도록 연습했었다. 함께 있지 않은 세션의 연주도 들리는 듯하다. 지하의 연습실에서 폭죽을 쏘아 올리듯, 그녀의 목소리는 화려하게 드럼 위를 수놓았다.

 노래가 끝났다. 갑자기 무리한 손은 빨갛게 물집이 잡혔다. 여전히 그녀의 손은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우린 더는 가수가 될 순 없다. 불혹의 록스타를 노리기엔, 그 젊음으로도 해내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록을 할 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의 간절함과 절실함은 없지만, 순수한 열정만은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우린 여전히, 록을 좋아했다.

 록에 설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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