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장, 박효신의 Gift.
조각글 모음은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미지를 글로 옮기는 글쓰기 연습 프로젝트입니다.
주관적인 창작글이니 가볍게, 노래와 함께 즐겨주세요.
https://youtu.be/haM03BYST8c?si=R8_MhpAUGp4yzwMG
따스한 겨울의 햇살이 집 안을 감싸 안았다. 푸른 하늘에서 내려온 그의 옷자락은 집 안으로 길게 늘어서 내 발끝을 간질였다. 무릎을 감싸 안고 얼굴을 파묻은 나를 부르듯, 온기가 전해졌다. 그는 따스했으나 집 안은 고요했다. 고요한 집은 하릴없이 밝았다. 하얀 벽지와 깔끔하게 정리된 가구, 집 안을 비추는 겨울의 햇빛. 그 안에 홀로인 나와 나를 가둔 소리의 부재. 푸른 하늘, 따스한 햇살 아래 오롯이 나만 홀로였다.
창문을 열자 거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고요했던 집 안이 갑자기 들이닥친 냉기 앞에 몸서리쳤다. 따스한 햇살 아래 고독보단 세찬 바람 앞에 홀로가 좋았다. 봐, 너만 홀로 추운 게 아니야. 세상도 이렇게 춥잖아. 이렇게 거센 바람이 불잖아. 냉기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햇살 앞에 초라하던 모습은, 살을 에는 바람과 친구가 되며 조금은 가셨다. 하지만 여전히, 햇빛은 나를 붙잡는다.
두꺼운 외투, 하얀 목도리에 얼굴을 묻고 밖으로 나섰다. 모두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땅만을 바라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 모습을 따라 고요한 발걸음을 옮기며 보니, 삼삼오오 모여 입김을 불어가며 웃음 짓는 이들이 보였다. 장난치는 학생들과 바짝 붙어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 사랑스레 품에 안은 아이를 보는 가족. 이들의 주변엔 온기가 가득했다. 햇살과 같은 온기가.
하늘을 올려봤다. 그늘진 내 얼굴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흰, 빛. 그 앞에 인상을 찌푸렸다.
겨울의 하늘은 유독 따뜻하다며, 마지막으로 겨울 하늘을 꼭 보고 싶다던 이가 있었다. 무더웠던 여름날, 허무맹랑한 그의 말에 코웃음 치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약이나 거르지 마. 그는 피식, 웃으며 말없이 하늘만 올려다봤다. 따스한 겨울 하늘을 느끼듯이. 거친 여름의 햇빛이 아닌, 따스하고 부드러운 겨울의 햇살을 그리듯이.
그는 다신 볼 수 없을 포근한 웃음과 함께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만의 온기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서늘한 온기가.
이제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겨울의 하늘은 다른 어떤 하늘보다 따스했다. 모두가 춥다며 싫어하는 겨울의 하늘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햇살을 내려주었다. 아무리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겨울의 햇살이 나를 비추면, 나는 그 포근함 속에서 웃을 수 있었다. 당신이 간절히 바랐지만 보지 못했던, 그래서 나에게 남겨준 잔혹하게 아름다운 선물. 이젠 그대 몫까지 내가 느껴야만 했다.
내일의 하늘은 오늘 보다 밝고 따뜻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그랬듯, 언제나처럼 그렇게. 그렇게 나에게만 따뜻하던 겨울의 하늘은, 네가 내게 남겨준 선물은 떠나간다. 너를 보내며 다시 다가올 겨울을 기다리다 보면,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겨울의 하늘이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을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