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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omanist Jan 09. 2024

rewind

오늘 한 장, 성시경의 넌 감동이었어

 조각글 모음은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미지를 글로 옮기는 글쓰기 연습 프로젝트입니다.

 주관적인 창작글이니 가볍게, 노래와 함께 즐겨주세요.


https://youtu.be/JG8DufK1xP0?si=kzlRCotsM1PFu3HI


“헤어졌냐?”

 소주 한잔을 들이켠 은석이 던지듯 묻는다. 재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헤어진 이후 내색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쓴 재우였다. 잘하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티 났냐는 물음에 은석이 고개를 주억인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서 도저히 모를 수가 없겠더라. 너나......”

 은석이 뒷말을 삼킨다. 그가 가만히 술잔을 채웠다. 이내 자신의 잔도 채우고는 부딪혀 왔다.


“얼마나 된 거야, 헤어진 지.”


“글쎄. 2주? 3주? 모르겠네.”


“정말 헤어진 거야?”

 은석이 재우를 빤히 바라봤다. 재우와 나경은 헤어질 사이가 아니었다. 주변 모두가 둘의 미래를 그렸고, 축복했다. 그런 그들이 헤어졌다니, 믿기지 않았다. 대답을 요구하는 은석의 눈빛에 재우는 빈 잔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은석이 입을 열었다.


“너희가 헤어질 수 있을 리 없잖아.”

 또다시 술잔을 채운다. 재우는 밝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됐어. 그냥, 그렇게 됐어.”
 뒤틀린 웃음에 은석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타인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재우와 나경 모두 타인이라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우리 셋은.


 둘이 만난 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친구로 십여 년, 연인으론 단 1년. 그럼에도 둘은 자타공인 천생연분이었다. 말이 1년이지, 모두가 둘의 만남 이전부터 둘을 인정하고 있었다. 은석 또한 그 모습을 보고 나경에 대한 마음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으니.


 둘은 함께 있는 것 만으로 주변 모두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엄마 품에 안겨 방긋방긋 웃는 아이처럼,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힘이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깍지 낀 두 손에서, 서로를 대하는 말투에서. 어디서든 둘의 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잘 된 거야. 다 잘 된 거야.”

 재우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말했다. 은석이 버럭 목소릴 높였다.


“뭐가 잘 돼, 잘 되긴! 너 정말 이렇게 나경이랑 헤어질 수 있어?”

 재우가 나경의 이름에 멈칫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은석을 바라봤다.


“헤어진 게 아니야. 그냥…… 그냥, 그렇게 된 거야.”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표정. 은석은 재우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이제 와서 도망 따위 치지 마.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너희, 이렇게 못 헤어져.”

 재우는 힘없이 일으켜 세워진 채로 술잔만 바라봤다. 여전히 무력했다.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그저 웃음만 났다.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무엇보다 날카로운 흉기가 되어 그의 몸을 꿰뚫었다. 그럼에도, 웃음만 났다. 가만히 지켜보던 은석의 주먹이 날아왔다. 묵직한 주먹이 재우를 흔들었다. 은석이 쓰러진 재우를 일으켜 앉히며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너한테 이러지도 않아. 나경이, ……”

 은석은 복받치는 감정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 살려야지. 나경이. 재우, 너도.”

 은석이 털썩 주저앉았다. 솥뚜껑 같은 손에 얼굴을 묻더니 그 큰 덩치가 들썩였다. 울고 있었다.


 통증 속에서 나경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는 떠올리지 않으려 억지로 지워버린 얼굴. 은석이 그녀를 재우의 심연에서 끌어냈다. 표면으로 떠오른 나경은 재우 안을 미친 듯이 헤집어 놓았다. 투명한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재우를 잠식했다. 그동안의 억압에 대한 분노인양 나경은 그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녀의 긴 머리, 작은 손, 조그맣고 오뚝한 코, 검은 눈동자까지. 재우가 탁자를 짚고 힘겹게 일어섰다.


“나경이, 어디 있냐.”


“너랑 헤어지고 시골로 내려간 거 같더라. 심장이 또 말썽인 것 같아.”

 은석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여린 친구였다. 다 알면서 찾아와 준 그에게. 기꺼이 주먹을 날려준 그에게 감사했다. 


“병원비는 안 받을 테니까 계산은 네가 해라. 난……”

재우는 외투를 집어 들며 말했다.


“되돌려야겠다,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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