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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omanist Jan 16. 2024

낯선 익숙함

오늘 한 장, 박정현의 꿈에

 조각글 모음은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미지를 글로 옮기는 글쓰기 연습 프로젝트입니다.

 주관적인 창작글이니 가볍게, 노래와 함께 즐겨주세요.


https://youtu.be/k3PkCxvbK18?si=NqDhbEGfgEoakYER


 보랏빛 하늘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노란 바람과 주변을 가득 채운 하늘빛 냄새. 내리쬐는 연두색 햇살까지. 그 안에 긴 머리의 내가 서있다. 낯선 익숙함 속에 가벼운 걸음을 옮긴다. 주변엔 처음 보는 물건 투성이었다. 노란 바람을 타고 헤엄치는 목마, 하늘빛 냄새를 머금은 코스모스, 연두색 햇살 아래 걸어 다니는 커피 잔까지. 이 기묘한 광경이 거부감 없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아니, 조금은 뭉클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멀리서 불어오는 노란 바람에 새콤달콤한 노랫소리가 실려온다.

 노랫소리를 따라 홀린 듯 도착한 곳에 너의 모습이 보였다. 양탄자처럼 넓은 나뭇잎 위에 누워 노래하던 너는, 나를 보더니 가만히 손짓했다. 달콤한 노랫소리는 나를 그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팔을 베고 누워 가만히 그를 끌어안았다. 올려다보는 하늘의 보랏빛이 눈부셨다. 초저녁 노을 같기도, 극지 어딘가에 오로라 같기도 한 신비로운 보랏빛 하늘. 그곳에서 내리쬐는 연두색 햇빛. 주변을 감싼 노란 공기까지. 평화롭고, 아늑했다. 줄곧 그리워하던 그의 팔베개와 목소리는 기분을 붕 뜨게 했다. 이곳이 낯선데도 익숙한 이유를,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놀이동산에서 함께 회전목마를 타던 날, 천진하게 웃으며 같이 사진을 찍으며 놀던 그날. 놀이동산에 황금빛 조명은 실로 눈부셨다. 그 노란 조명은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우리의 사진과 함께 내 기억 깊숙이 남았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함께 갔던 코스모스 축제도 떠올랐다. 그날의 하늘은 유독 높고 푸르렀다. 그대와 손잡고 걷던 한강 공원은 푸른 하늘과 그 하늘을 담은 파란 강물로 반짝였다.

 연두색 햇살. 그 아래 커피 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같이 가던 카페였다. 숲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던 연두색 벽과 갈색 마루. 곳곳에서 숨 쉬는 초록의 나무들. 이 모든 추억에는 네가 함께였다. 이제는 다시 볼 수도, 연락할 수도 없는 그대가.

 달콤하던 노랫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따뜻하던 그의 체온이 사라져 간다. 손을 뻗어보지만 잡히지 않는다. 안쓰러운 미소로 나를 보는 그대의 눈은 점점 희미하게, 멀어져만 갔다. 이제는 눈을 떠야만 했다.

 꿈에서 벗어나니 그 황홀한 풍경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홍의 가로등 불빛만이 창문 틈새로 희미하게 들어왔다. 눈가가 촉촉했다. 머리를 쓸어 넘겼다. 꿈에 보았던 긴 머리는 만져지지 않았다. 그대와 이별하고 짧게 자른 단발만이 손끝에 스친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이젠, 오지 마요. 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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