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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국 Jan 06. 2024

나만 결혼식이 하기 싫어?

결혼식을 앞두고 공포회피형 여자와 회피형 남자의 파혼 위기 9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연애 때부터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애를 할 때는 거리감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되어서인지 남자친구의 성격이 그저 남들과는 다른 거라고 생각하면서 맞춰갔다.


몇 가지 유난히 독특하다고 느낀 특성을 적어보자면,


1. 변덕이 심하다.

선택 후의 변덕은 없는 편인데, 선택하기 전의 생각과 감정 변화가 심한 편이었다.

예를 들면, 남자 친구가 '언제 여행 가자(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남자친구는 경제적 이유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의 경우는 상대가 그렇게 말을 했으면 함께 그 목적지나 일정을 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걸 기대하게 되는데, 남자친구는 말만 던지고 전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나는 기다리다가 결국 내가 혼자 구체적인 부분을 계획하고 준비해서 여행을 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을 하는 순간에는 가고 싶어서 말을 던졌는데, 준비하려니 귀찮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 하다 보니 마음이 바뀐 거다.


결혼도 그런 식이었다. 한 달 정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되면서 결혼 얘기를 꺼내고 진지하게 준비해 보자고 말한 건 남자친구였는데, 막상 준비를 하는 건 다 내 몫이었다.

심지어 준비 중에 매번 결혼식이 하기 싫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결혼식 준비 내내 마음 상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냉랭하게 굴 때가 많아서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는 늘 눈치를 봐야겠구나 느낄 때가 많았다.


2. 타인을 판단하는 자기만의 틀이 확고하다.

싸우고 나면, 남자친구가 어김없이 하는 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나에 대한 호감을 점수로 표현하면서 점수가 깎였다는 것.

그 말은 들을 때마다 내 발작버튼이 눌릴 정도로 굉장히 기분이 나쁜 말 중 하나였다.


그렇게 감정을 수치화해서 말하는 남자친구의 말을 들을 때마다 인간미가 없게 느껴지고, 또 한편으로는 평소에도 그에게 늘 점수로 평가받는 느낌이어서인지 자꾸 남자친구의 눈치를 보게 되고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려는 무리를 하게 됐다. 내 모습 그대로 온전하고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고, 나도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을 대할 때 그렇게 대하자는 가치관을 갖고 있기에, 이런 남자친구의 태도에 더욱 거부감이 든 것일 수도 있다. 이게 심하게 부담이 될 때는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내가 남자친구가 원하는 이성의 모습에서 한참 모자란 거 같은 느낌이 종종 들 때가 있었고, 그로 인해 감정이 쌓여갔다. 그로 인해 싸움의 순간에 남자친구를 더욱 심한 말로 공격하기도 했다.

가장 힘든 점은 내 본질이나 자유가 관계 속에서 억압받는다는 느낌이었다.

나도 공포회피형인 데다가 너무 힘들 땐, 회피기질이 커지기 때문에, 관계 탈출을 꿈꾸는 순간이 많아졌다.



3. 단점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여자에게는 외모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편이다. 나름 스스로 거부감을 주는 외모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외모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산 적은 많이 없는데, 시각적인 부분이 유난히 발달한 남자친구는 그 부분에 대한 객관적이고 솔직한 지적을 잘한다. 그래서인지 가끔 노화로 인한 주름이 보인다거나 살이 찐다거나 하는 부분을 예리하게 지적할 때가 있는데, 나는 평소 생활할 땐 괜찮다가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도 불편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나 스스로도 외모를 가꾸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해야겠지만, 절대적으로 외적인 기준이 엄격한 그의 앞에서 가끔은 그 만족선에 도달하지 못하면 남자친구가 나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거나 다른 이성에게 한눈을 팔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다.

남자친구의 기준은 스스로의 외모에도 엄격한 편인데, 점점 함께 할수록 나에게는 편하게 있다가 내가 아닌 타인들에게만 외모를 신경 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분이 상한다는 것도 문제 중 하나다.



4. 내 주변의 타인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를 굳이 소개하려고 하지 않는다.

네트워킹은 살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고, 서로를 향한 시각에서 벗어나고 생각을 키워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친구는 이런 나와는 다르게 그런 부분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면서, 심지어 서로의 가족들을 만나는 부분도 부담스러운 반응을 매번 보인다. 그런 면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더욱 크게 문제로 생각이 됐다. 가정을 꾸린다는 건, 결국 네트워킹 확장과도 비슷한데, 이대로도 괜찮을까 생각한 순간이 많다.


물론, 연애 초기에 비해 나에게 좀 더 가깝고 깊은 감정을 보여주고, 자신이 변화하려고 노력해 주는 남자친구지만, 어느 수준까지 가까워졌을 때 좀 더 깊고 신뢰하는 관계로 성장하기보다는 뒷걸음질을 치면서 거리를 유지하는 느낌도 든다.

 


5.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특히 먹는 것)에 대해 자기주장이 강하다.

나는 식사 메뉴를 결정할 때, 남자친구에게 선택권을 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선택한 메뉴가 남자친구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자친구는 바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메뉴를 말하면 무시하고 본인이 먹고 싶은 걸 말한다던가 내 선택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현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식사 메뉴를 정할 때, 선택 장애가 오기도 하고 눈치를 보다가 선택권을 넘기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울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남자친구에 대해 부정적인 부분들을 글로 정리하다 보니 중간중간 울컥해서 자기 연민에 빠질 뻔했다.

글을 써서라도 이렇게 부정적 감정을 표현은 할 수 있다는 게 아무것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렇게 답답한 감정을 느끼고 섭섭했던 만큼 내 남자친구 역시 그랬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나에게 솔직한 감정을 모두 표현하지 못하는 그가 안쓰럽기도 하다.

확실히 부정적 감정은 지나가고 그것을 느낄 때 글로 써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내 감정이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그러면 남자친구의 이런 부분을 이해하고 관계를 더욱 개선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노력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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