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고 소비 요정이 되었다.

내 집에서 사고 싶었던 것들

by 낮잠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자신의 집을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상을 즐겨보는 편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부지런히 자신의 삶을 가꾸는 긍정적인 모습을 본다.


내 집도 아닌데 뭘 사

내 마인드는 사실 이랬다. 돌이켜보니, 내 집도 아니란 생각에 현생을 포기했던 것이 후회된다. 엄마가 '냉장고 좀 사'라고 말할 정도로, 집에 투자하지 않는 원룸 생활을 10년 이상 했다. 내 집을 언제 사게 될지 알지도 못하면서, 현재의 삶을 계속 방치했다.



소비 요정의 긍정성

그래서 나는 집을 사고 강림한 '소비 요정'의 긍정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요정이 집에 강림한 것처럼 내 집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느꼈다.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물건을 어지럽게 쌓아놓지 않아도 되었다. 고맙고 아름다운 소비 요정이 나의 집안 곳곳에 숨어있다.


1. 입식 생활의 요정 : 침대/식탁/책상/화장대/커피장

좌식 생활에서 탈출했다. 침대가 생기고, 오로지 식탁으로서만 기능하는 식탁이 생기고, 오로지 책상으로서만 기능하는 책상이 생겼다. 허리가 아플 일이 없어 건강에도 좋고 집안 청결 및 개인위생에도 좋았다. 수납은 인테리어의 완성이라고 했던가! 잡동사니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지 않아서 좋았고, 찾기도 쉬워졌다. 공간의 힘을 가장 많이 느낀 소비가 식탁, 책상, 화장대, 커피장이었다. 물건을 그때그때 옮겨와서 쓰지 않아도 되서 정리하기 좋은 것은 물론이고 일의 생산성도 올라갔다.


2. 무드의 요정 : 간접조명 침대 프레임/다양한 소재의 커튼

IOT 조명이 잘 되어있는 신축 아파트라 조명을 따로 사지는 않았다. 단, 간접조명(타이머 기능 있는)이 있는 침대 프레임을 샀다. 같은 아파트 사람들이 거실과 화장실에 간접조명 공사를 하고 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침대 프레임에 있는 간접조명 하나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조명 덕분에 잠자리에 들기 전 숙면을 위한 무드 조성이 된다. 가격이 비싼 만큼 만족도가 큰 소비였다.


커튼이 집의 분위기를 크게 좌우한다는 것도 내 집 마련을 통해 깨달았다. 원룸에서 셀프로 달았던 두꺼운 암막 커튼에서 탈출했기 때문이다. 내 집마련 후 각 방의 분위기에 따라 상이한 소재와 기능의 커튼을 설치했다. 외출했다가 귀가하면 하얀 커튼이 있는 집 거실이 나를 맞아줘서 기분 전환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흰색 커튼 사이로 햇살이 가득 내리쬐는 거실을 보면 눈부셨다. 상쾌한 하루의 시작과 편안한 하루의 끝을 선물해 주는 것이 집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3. 빨래의 요정 : 워시타워(건조기 아주 칭찬해)

원룸에서 좁은 방 안에 빨랫대를 펴고 빨래를 말리던 습기 찬 삶을 살았었다. 베란다 구석 벽에서는 곰팡이가 폈고 빨래를 말릴 때마다 빨랫대가 원룸에서 큰 자리를 차지해 생활하기 불편했다.


방 두개인 내 집을 사고서야 넉넉한 용량의 워시타워를 설치해 편하게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불 빨래도 걱정이 없었다. 뽀송하게 마른빨래를 건조기에서 꺼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겨울 패딩 점퍼도 편하게 세탁할 수 있었다. 탈수없이 약하게 세탁기를 돌린 다음, 건조기로 옮겨 건조기 코스 중 패딩리프레쉬(세탁기 제조사 어플에서 설정) 기능을 선택하니 패딩이 쪼그라들지 않고 새것처럼 말랐다. 빨래의 요정 덕분에 세탁소에 갈 일이 거의 없어졌다.


요즘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하나의 일체형으로 잘 나온다고는 하지만, 세탁 후 건조할 빨래만 따로 분류해 건조시키려는 나에게는 워시타워가 잘 맞는 것 같다. 가사를 덜어준 최고의 가전이다.


4. 요리의 요정 : 김치냉장고가 포함된 키친핏 냉장고, 오븐레인지

원룸에 살 때는 김치냉장고가 없었다. 푹 쉬어버린 엄마의 김치를 회사에 도시락으로 싸 갔던 적이 있다. 회사 사람들과 도시락을 같이 먹는데, 신김치를 먹고 인상을 찌푸리는 상사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내 집마련을 한 뒤에는 무조건 큰 냉장고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거실 인테리어를 고려하다 보니 너무 크지 않은 냉장고, 키친핏으로 구매했지만 싱글에게는 키친핏도 넉넉하다.


냉장고가 커지니 음식물이 오래되기 전에 버리기도 편했다. 냉장고 깊숙이 숨어서 썩어가는 음식물이 발견되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엄마의 소중하고 맛있는 김치가 오래도록 맛을 유지하게 된 점이 최고로 좋았다.


오븐과 에어프라이어, 전자레인지 기능이 하나로 합쳐진 오븐레인지도 샀다. 원룸에 살 때는 자취생의 필수품이라는 에어프라이어도 없는 형편이었다. 전자레인지 하나로 버텼는데 이번에 내 집 마련을 하면서 낡은 전자레인지를 버리게 되었다. 공간을 아끼고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제품을 찾다가 오븐레인지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싱크대에서 식기세척기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오븐레인지를 넣었을 만큼 나에게 '간편 요리'의 요정은 소중했다! 기능이 많아 다양한 기능을 다 활용하지는 못하지만(거의 전자레인지 전용이 되어가는 중) 기능을 쓰지 않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언젠가 요리의 요정이 내게 찾아와 주길 기다릴 수 있는 만족스러운 소비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5. 정리의 요정 : 시스템 행거 서랍장

행거보다 튼튼하고 고급스러운 시스템 행거겸서랍장에 거금을 들였다. 수납의 질이 달라졌다. 수납한 물건들을 가릴 수 있는 붙박이장은 깔끔했지만 수납공간이 획일적이라 옷과 물건을 정리하기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해 주는 정리의 요정을 구입한 덕분에 편하게 서랍에서 꺼내 입을 옷과 행거에 걸어야 하는 옷 모두를 깔끔하게 수납할 수 있었다. 서랍 맨 위층을 액세서리용 서랍으로 선택해 설치했는데, 그곳에 선글라스나 허리끈 등의 물건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 좋다. 정리의 요정만큼 내집마련을 뿌듯하게 해 주는 요정도 없을 것 같은!


6. 취미의 요정 : 커뮤니티, 라운지 카페

신축아파트로 이사 왔기에 반 강제로 구입해야 하는 서비스(관리비에 만오천원씩 매달 청구)가 커뮤니티 이용이다. 커뮤니티 이용 덕분에 기존 취미(헬스, 카페 가기)를 아파트 단지 내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커뮤니티 강좌(필라테스, PT, 줌바댄스, 골프, 배드민턴 등) 중 가장 배우고 싶었던 운동인 배드민턴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료가 추가적으로 발생하지만 저렴하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이동비가 들지 않는다.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을 취미로 들일 수 있게 해 준 취미의 요정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다.


라운지 카페는 고층에 있어 창문으로 전망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이용한다. 카페 규모도 크고, 음료 가격도 일반 카페의 절반 수준이다. 주말이 아니면 사람도 북적이지 않아 눈치 보지 않고 긴 시간 동안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할 수 있다. 무거운 백팩을 메고 멀리 카페 원정을 갈 필요가 없어져 매우 편리하다.



집을 산 후 나는 다양한 요정들을 집으로 맞이했다. 좁은 원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느라 찌뿌둥하게 일어나는 일도 없고, 겨울에 베란다의 세탁기가 얼어서 공용 세탁소를 전전하는 일도 없어졌다. 아파트 체력단련실에서 러닝머신 달랑 하나만 지겹도록 이용해야 할 필요도 없고 원하는 운동을 선택해 새롭게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관리비는 불과 5만원 이내의 차이인데도 말이다.


나에게 맞는 것들을 새 도화지에 하나씩 그려가는 느낌이었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도 나의 집 이야기를 즐겁게 할 수 있게 되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때도 무료함을 느끼지 않는 진정한 집순이가 될 수 있었다. 내 집에서 사는 행복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가졌을 누군가는 모르는 감탄을, 감사함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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