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보다는 이사가, 말보다는 선물이 좋다.
서비스직만큼 폐쇄적인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을 응대하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일일 것 같지만, 아쉽게도 나의 조직에서 내가 하는 일은 폐쇄성으로 수렴한다. 아무리 바쁜 소속에서 일을 맡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답변해야 할 질문들이란 이런 내용의 무한 반복이었다.
몇번 플랫폼에서 기차를 타야 하나요?
화장실은 어느 쪽인가요?
기차를 놓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버스는 어디서 타나요?
변기가 막혔어요.
이상한 사람 제지 좀 해주세요.
토사물이 있으니 치워주세요.
왜 또 고장났나요?
왜 또 지연되나요?
파업했나요?
환불해주세요.
왜 제가 수수료를 내야 하죠?
물건을 놓고 내렸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대화도 단조롭다. 상사나 사내 빌런 혹은 진상 고객에 대한 뒷담화 같은.
적당하면 직장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비스직들끼리 모여 앉아 할 수 있는 일이란 대화가 메인이라는 게 문제다. 적당하게 대화하는 직원을 찾기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정도의 어려움이 있었다. 애초에 말이라는 건 뱉어낸 이상 적당해지는게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프로경청러였던 나는, 모든 말들을 진심으로 들었기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유독 내부 고객, 외부 고객 할 것 없이 '빌런', '진상'들의 해우소가 되는 상황이 많았다. 어떤 동료는 나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굿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진짜 무당을 만났다.
"거기 계속 살면 아플 거에요. 왜 아직도 거기서 살아요? 얼른 이사하세요."
진짜 무당은 '굿'이 아닌 '이사'를 제안했다. 굿은 할 생각이 없어도 이사는 마침 할 때였다. 이사를 한다고 내 험난한 인생이 풀린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계속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사 때문에 내가 소속을 바꾼다는 소문을 들은 회사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은 뻔했다. 나는 집을 샀다는 자랑을 하며 그들의 걱정을 덮었다. 그들 역시 내가 멀리 이사를 가는 진짜 속내를 알았다. 그래도 감사한 관심이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이별 선물도 받았다. 자잘한 것들이라 잘 기억에 남지는 않는데 그중 하나는 자잘하면서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센스만점 선물이었다.
지옥을 함께한 동료만이 줄 수 있는 선물
[잘 풀리는 집] 선물세트가 도착했습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자마자 나는 피식 웃었다. 일이 안 풀린다는 나의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주던 동료가 보내준 이사 축하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사 가서는 잘 풀리라는 직장 동료의 메시지. 너무 감사했다.
배송된 선물세트를 풀고 나서 한번 더 웃었다. 화장지와 물티슈가 들어 있는데 물건마다 하나같이 [잘 풀리는 집]이라는 글자가 써 있는 것이 살짝 유치하면서도 재밌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옥 같다고 생각한 조직의 사람으로부터 가장 즐거운 이사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삶이 나에게 '해방없는 일상'이란 고통을 준 이유는,
가끔 아이러니라는 즐거움을 선물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지옥에서 출고된 위트 만점 이사 선물. 덕분인지 나는 한동안 생각보다 운 좋은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 조직에서 만날거라 상상해본 적 없는 좋은 상사와 동료들을 만나 얼마간 평화롭게 지냈다. 약빨이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