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아파트 나홀로 적응기

싱크대 물이 왜 안 나올까?에서부터 시작되는

by 낮잠

나홀로 신축아파트 적응기 (1) 살아보며 시작하는 방 정리


이사를 온 날부터 진짜 이사가 시작되었다.


포장이사 업체에서 넣어주신 짐들을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다시 정리했다. 짐을 정리하다보니 수납장과 책장, TV장을 구입해야 짐을 깔끔하게 수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을 통일감 있는 색상의 가구 구입을 위해 다양한 브랜드의 가구를 알아보고 주문했다. 벽걸이 TV도 주문했다. TV뒤의 선을 깔끔하게 숨겨줄 업체를 불러 선정리를 마쳤다.


싱크대에도 오븐렌지를 넣을 공간이 필요했다. 렌지의 크기에 맞춰 싱크대 서랍을 장으로 리폼해줄 업체를 불렀다. 그리고 이사 첫 날 나를 놀라게 했던 작은 방 벽면의 스위치들! 그들을 위해 특별히 치수를 맞춰 주문한 시스템 행거 설치도 완료했다. 결과만 적어놓고 보니 순조로웠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가구 설치 업체에서 부품을 가져오지 않아 약속한 당일 설치가 되지 않거나 불량 제품이 배송되어 교환을 해야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업체에서 친절하게 처리해주기는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가구를 사용해보고 싶은 사용자 입장에서는 기다림의 시간이 늘어만 가는 일이다. 배송지를 예전 집으로 지정해서 다시 배송을 온 식탁도 있고, 인터넷만 보고 주문했던 오븐장이 생각보다 부피를 많이 차지해서 오븐장을 반품해버린 일도 있다. 나는 부모님 앞에서 탄식하며 말했다.


"고작 한 사람이 사는 집인데, 왜 이렇게 많은 게 필요할까?"

내 인생에서, 이렇게 물릴 만큼 폭풍 쇼풍을 해본 적이 더 있었던가 싶다. 혼수를 사고 새로운 신혼집 하나를 차리는 수준이었다. 그런 수준을 혼자 꾸리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한 사람이어도 하나의 가구니까. 다 필요하지."

아빠는 대답했다. 그렇다. 나는 한 명이지만 하나의 가구를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한 가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사람이었다. 지난한 이사 과정을 통해 크게 깨달았다. 사람들이 이래서 결혼을 하는구나. 둘이서 힘을 합쳐 하나의 살림을 차려야 이익이 되는 규모의 경제가 있었다. 규모의 경제를 실천하기 어려운 1인 가구는 자유로운 만큼 불리하기도 했다.




나홀로 신축아파트 적응기 (2) 신축 적응하기


'싱크대 물이 왜 안 나오지?'

혹시 내가 방심해서 집에 하자가 있는데 모르고 온 건 아닐까? 순간 생각하다, 이삿날 청소 직원분이 싱크대에서 행주를 빠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났다. 하자는 아니었다. 나는 한참 그 이유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 처음 발견했다. 싱크대 바닥 쪽에 물이 나오게 하는 발판이 있다는 것을. 이 외에도, 신축 아파트에는 내가 처음 사용하는 재미있는 시스템이 많았다.


신축 시스템의 쓸모 혹은 무쓸모와 관련된 이모저모는 이랬다.

(1) 싱크대 발판 : 반 강제적으로 사용중인데 반 강제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기능인 것 같기도. 물이 넘치도록 틀면 안 되니까.
(2) 엘리베이터 호출 : 중층이라 엘리베이터가 너무 빨리 도착한다. 호출을 누르고 나가면 오히려 내가 엘리베이터보다 늦게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놓친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는다.
(3) 화장실 벽면의 현관호출 응답기 : 변기에 앉아 있어도 현관에서 호출이 오면 현관문을 열어줄 수 있으니 아주 유용한 시스템이다. 배달의 민족을 위한 필수품.
(4) 조명, 난방, 전기 IOT 시스템 : 어플을 통해 모두 제어가 가능하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 또는 리모콘으로 조명을 제어할 수 있어 매일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간혹 어플에 에러가 발생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가끔 에러가 있어도 기능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편하다. 추운날 외출하고 집에 들어가면서 난방 온도를 올려놓고 따듯한 집에 들어가는 행복도 느낄 수 있다.
(5) 입주민 홈패스 어플 및 카드 : 블루투스를 켜고 어플 가입을 완료하면 핸드폰으로 나의 진출입을 인지하여 현관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도 자동 호출되고 내가 사는 층수 버튼까지 자동으로 눌려 있다.
입주민 카드를 소지하면 카드 하나로 집 앞 도어락, 현관, 커뮤니티, 단지 내 엘리베이터 사용이 가능하다. 단지 내 엘리베이터의 경우에만 입주민 카드가 없으면 사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외부인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필요한 불편함인 것 같다.


나홀로 신축아파트 적응기 (3) 신축 활용하기


이사와서 가장 유용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 것은 대단지 커뮤니티, 스카이라운지 카페이다. 커뮤니티에서는 헬스, 사우나, 골프, 농구장(배드민턴), 독서실 등을 소정의 비용을 내고 이용할 수 있다. 혹은 관리비에 포함된 커뮤니티 비용으로 헬스장 무료 이용 등의 옵션 선택이 가능하다.


예전에 살던 행복주택 헬스장은 거의 체력단련실 수준이어서, 이사 후 헬스장 시설에 감탄하며 자주 운동을 했다. 정원뷰를 볼 수 있는 통유리창에, 충분한 숫자의 런닝머신, 심지어 천국의 계단도 있다. 비싼 헬스장 등록이 필요 없고 단지 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아 운동을 가지 못 할 핑계가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스카이라운지 카페도 종종 이용한다. 높은 층에서 시내가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며 카페 음료를 주문해 먹는데, 음료의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있다. 카페 크기도 굉장히 커서 아이들이 소란스러울 때는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서 독서를 할 수도 있다. 아파트단지 밖으로 외출할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나홀로 신축아파트 적응기 (4) 출근을 해도 안심


평생 하지 않는 실수를 인생에 한 번쯤 하는 날이 온다. 회사 점심시간에 먹을 도시락을 너무 열심히 만들었던 것 때문이었을까. 아침 출근시간에 고데기 전원을 켜 놓았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출근 버스에 올랐다. 도시락을 만드느라 고데기를 사용하는 것을 깜빡하고 그대로 둔 것이다.

이미 버스를 타서 버스가 다음 정류장으로 이동한 상황. 집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면 회사는 분명 지각이다. 하지만 고데기는 위험했다. 얼마전 고데기가 폭발했다는 뉴스 기사를 읽은 후여서 더욱 걱정이 됐다.


'전원 차단 기능이 있었지!!!!!!!'

잘 사용하지 않던 기능이지만 그 순간에 떠올랐다. 궁금해서 집에서 한 번 테스트해보고,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은 기능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무쓸모' 기능으로 분류해놀 뻔 했던 기능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기능은 '쓸모' 카테고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어플에서 방 별로 전원을 차단하는 기능을 사용했다. 혹시하는 마음이 들어 고데기가 있는 방 뿐만 아니라 전체 방의 전력을 차단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안심하고 출근했다.


일생의 단 한번의 쓸모라도, 정말 유용한 기능도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내 집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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