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를 챙겼어야 했는지도
집을 데우고 싶었던 집주인의 마음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집을 데우는 과정'인 집들이(housewarming)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의 방문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집주인은 그 후로도 열심히 집을 가꾸고 다듬었다. 절친들을 초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늦게까지 싱글로 지내다 보면, 절친한 친구들이 먼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씩 낳아 기르는 상황이 된다. 나의 초대장이 그들에게 귀찮은 청접장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는 고민이 나를 계속 쫓아다녔다.
비록 나의 초대가 그들에게 귀찮은 청첩장이라 할지라도, 나에게는 그들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해 준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결혼할 가능성이 희박해진 시점에 하게 된 집들이는 나에게 결혼식 대신인지도 모르는 행사였다. 집과 결혼한 여자가 자신의 결혼 초대장을 절친들에게 보낸 것과 같았다.
집들이(housewarming)가 되지 않았던 집들이
집을 찾아온 친구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뜻미지근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집들이를 통해 기혼 친구들과 내가 집에 대해 가진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더 크게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지방에서 나보다 큰 집을 매매해서 살고 있었고 자차를 운전해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움직이는 것, 화장실과 침실이 한 개인 집에서 자는 것이 그들에게는 불편했을 것이다.
육아에서 도망치고 싶어 외박이 절실하다던 친구들은 지방에서 먼 길을 올라오느라 피곤이 누적된 상태였다. 즐거운 수다 시간도 잠시, 나는 피곤을 풀어야 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얼른 잠자리를 폈다. 친구들은 더 놀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하면서도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신축이라 좋기는 하다'
친구들은 대체로 이런 반응이었다. 알뜰하게 아이 둘씩을 키우는 주부 친구들은 수도권에서 넓지도 않은 집을 굳이 매매하는 이유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굳이 직접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는 은연중에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다른 가치관을 드러냈다. 친구들에게 중요한 자차 소유에 대해서도 나는 '차는 사자마자 감가상각을 맞지만 부동산은 아니니까.'라고 무심결에 말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너한테는 내가 산 집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
누울 자리 한 뼘도 안 되는 원룸에 놀러 와서 자던 고마운 네 모습이 생각이 나서."
친구에게 나는 말했다. 절친하게 지냈던 세월만큼, 한 친구는 내가 살던 원룸에 전부 놀러 와서 잠을 잤던 경험이 있었다.
발 뻗고 잘 자리도 없던 작은 집에서 즐겁게 깔깔 웃으며 잠을 자고 갔던 친구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아 그래?"
나의 말에 친구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친구 두 명이 누워도 충분할 만큼 큰 침대가 있었다. 그 침대에 친구들을 눕게 하고, 나는 바닥에서 요를 깔고 잤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만큼 해맑게 즐겁지는 않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은근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차가운 집들이의 끝
친구들을 기차역까지 마중하고 왔다. 한 친구가 집들이 선물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쭈뼛쭈뼛 세 명의 밥값을 결제했다. 친구들을 배웅하는 순간까지 눈치싸움이었다. 친구들을 기차에 태워 보낸 뒤 나는 지친 한숨을 내쉬며 내 집으로 귀가했다. 돌이켜보니 1박 2일 중 친구들이 가장 밝았던 건 내 집에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기차역과 연결된 쇼핑몰에서 지방에서 못했다던 쇼핑을 한 순간이었다. 집에 도착해 나는 생각했다.
'역시 혼자가 편하긴 하다.'
친구들도 자기 집에 도착해 비슷한 종류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역시 내 가족이 있는 집이 최고다.'
이제는 어른이 된 우리였기 때문이다.
어른의 집들이는 불편한 청첩장을 받고 의무감으로 참석하는 결혼식과 비슷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