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이 내 위시였었는데 ~
"네가 사는 그 집~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이것은 대중가요의 가사에 입힌 내 마음이다. 물론, 원곡처럼 떠나간 연인을 향해 부르는 가사는 아니다. 이것은 나의 동성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1년 정도 연락을 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선뜻 연락을 먼저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긴, 내 집으로 이사하고 반년 정도가 흐른 시기였다.
나와 친구가 살던 동네는 가까웠다. 하지만 내가 그 동네로부터 멀리 이사했기 때문에 금방 만날 수 있다는 기대 없이 한 연락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나의 소식을 듣더니 놀라며 말했다.
"뭐? 거기로 이사 갔어? 나 다음 달에 거기서 멀지 않은 동네로 이사가."
친구는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시기에 비슷한 동네로 이사를 가냐. 나 이사 가고 안정 좀되면 우리 꼭 만나자.'라고도 말했다. 내가 행복주택에 살던 시절, 그 친구도 멀지 않은 동네의 행복주택에 살았다. 결혼을 한 남편과 함께.
우리는 그때도 서로의 집들이를 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놀랍게도 또, 각자 내집마련을 마친 뒤 서로 집들이를 하게 된다. 평행이론일까?
친구가 기혼이라는 것을 빼면 우리는 평생 비슷한 선택을 하며 살았다. 대학교에서도 40명 정도밖에 정원이 되지 않는 과를 선택해 입학했고 그 학년에서도 다섯 명 정도만이 복수 전공했던 과를 같이 복수 전공했다. 사회에 나온 후 행복주택에 살았고, 그러다 동네와는 반대편인 경기도 어떤 지역에 내집마련을 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다지만 그래도 놀랍다. 우리는 늘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선택을 했을까?
"어머, 얼마만이야. 어떻게 우리 둘 다 또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살 생각을 한 걸까?"
"신기하다 야. 심지어 네가 메고 있는 그 가방 나한테도 있어.
어쩜 우리 이렇게 똑같냐."
1년 만에 나를 만나러 온 친구가 맨 가방도 내가 가지고 있는 가방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가방마저도 똑같은 걸 샀는지. 심지어, 친구가 산 아파트의 브랜드도 내가 산 아파트 브랜드와 같았다.
나는 친구의 집에서 맛있는 커피와 식사 대접을 받은 뒤, 퇴근한 친구의 신랑과 인사하고 친구의 집을 나왔다. 친구는 버스 정류장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아파트 단지 산책은 해 볼 필요도 없었다.
"야. 똑같애. 똑같애. 우리 아파트랑."
"심지어 단지 앞에 있는 교회 건물 생김새까지 똑같네. 나 우리 아파트 온 줄."
나는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보기 위해 지도 어플을 켰다. 친구는 나에게 버스가 자주 오는 동네여서 지도 어플을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친구네 집에 와서 처음 켜 본 지도 어플....... 그리고 어딘가 낯익은 아파트.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야 여기 내가 임장 가려다 매물이 없어서 임장도 못해본 아파트였잖아! 설마설마했다."
지도 어플에는 아파트 매물을 알아보느라 저장해 놓은 친구네 아파트가 오래전부터 저장되어 있었다. 그때 못 했던 임장을 친구의 집들이에서 하게 된 셈이었다.
네가 산 그 집, 내가 사려고 해도 사지 못했던 그 집이었다.
부동산에 올라온 매물조차 거의 없는 신축 중의 신축이었다. 임장도 가지 못한 아파트였다. 그나마 하나 있던 매물의 호가는 내가 산 아파트보다 비쌌고 낮은 평형이었다.
입지가 좋았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한 번쯤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그 지역이었다. 그 집이 네가 사는 그 집이다. 네가 사는 그 집은 내가 매물을 보러 다닐 때보다 실거래가 1억 정도가 더 오른 집이다.
어쨌건 간에, 나는 네가 사는 그 집이 내가 찜했던 그 집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놀라움과 부러움과 신기함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동시에 느꼈다.
아마도 똑같은 위시를 가지고 사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의 벗이 바뀌었다면 나의 위시가 바뀐 것이고, 나의 벗이 내 곁에 있다면 그 벗과 나의 위시는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유유상종의 현대적 표현이 바로 나와 내 친구의 이야기 아닐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놀라운 공통점으로 한번 더 어울릴 수 있었고, 아이러니하지만 서로의 집들이 후에는 따로 만나자는 약속을 잡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바람은 이제 달라지게 될까? 몇년 후 또 같은 선택을 해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