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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Feb 24. 2021

한 번도 역무원을 꿈꾼 적은 없지만

꿈을 싣고 달리는 기차는 필요하다.

한 번도 역무원을 꿈꾼 적은 없지만

입사를 위해 자기소개서에 썼던 나의 지원동기는 이랬다. 요즘은 블라인드 채용이라 출신 지역을 밝힐 수 없지만, 그때는 내가 성장한 지역적 배경을 바탕으로 지원동기를 작성할 수 있었다.     

-도전의 동반자와 함께
OO선의 종착지에서 성장한 저는 자연스럽게 기차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록 가장 적자 노선이라고 하지만, 기차가 싣고 달린 것은 지역의 경제적 가치 이상의 꿈과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열차는 소외된 지역에서 자란 제가 마음껏 도전케 한 동반자였습니다. 버스나 자동차가 대체할 수 없는 편안함과 안전함은 이동 중에도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OO에서 준정부기관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출장을 위해 열차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가 더 많았습니다. 또한 OO역에서 시작한 내일로 기차여행은 마음먹은 어느 곳에나 갈 수 있는 우리나라 철도교통에 감사하게 된 두 번째 계기였습니다.

OO선이 경부선과 같이 성장할 미래를 기대합니다. 꿈이 현실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헌신하겠습니다.  

 

돌아오는 기차를 놓친 면접일의 기억

최종면접 날이었다. 내 면접은 오후 3시 정도에 끝이 났지만, 회사에서는 오후 면접인 면접자들의 전체 면접이 끝나야 면접장을 떠날 수 있게 했다. 오후 5시 반이 되어서야 면접장을 벗어난 나는, 집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놓쳤다.

타려던 열차가 직통 열차인 것도 아니었다. 제천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하는 여정이었기 때문에, 제천에서 집으로 가는 열차와의 환승 시간이 맞아야 했다. 그나마 환승을 통해 집으로 갈 수 있는 기차를 놓친 것이다. 도시에 살았다면 여유 있게 저녁을 먹고 출발해도 되는 시간이었다.

집 근처까지 바로 가는 버스편도 없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역으로 시외버스를 한번 타고 간 다음, 집 근처 지역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는 방법밖에 없었다. 집과 가장 가까운 거리의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로는 갈아탈 수도 없었다. 산 넘고 물 건너 버스를 갈아타고 버스에서 내리면, 마중 나온 엄마가 차에 나를 태워 집까지 1시간을 더 가야 했다. 집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은....... 새벽 1시였다.

 

첫 번째 시외버스에 허겁지겁 타고난 뒤 나는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기차역에서 막차 놓쳤다고 엄마에게 전화로 이미 짜증을 낸 후였고, 저녁도 먹을 새 없이 급하게 마지막 버스를 타야 했던 나의 문자는 더 날카로웠다.  

[왜 이런 촌구석에서 나를 키워서 이렇게 고생하게 만드는 거야.]


[그러게.]

엄마의 답장이었다.


여러 차례 면접을 보러 다니느라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인 터였다. 4시간 거리의 서울과 집을 당일치기로 힘들게 왕복하며, 필기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았지만 탈락했던 때였다. 모든 것이 짜증 났다.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 청년 인턴을 하며 돈을 벌어 월세를 내고 도시에서 취업 준비를 했다. 하지만 1년 동안의 청년 인턴이 끝이 났고 몇 개월 동안의 실업급여도 동이 났다. 시골 부모님 집에서 취업에 도전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어두컴컴한 차장 밖의 풍경을 보니 왠지 더 울컥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도 시골에서 나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등록금과 자취비 걱정부터 하며 같이 기뻐해주지 않은 엄마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나의 죄책감을 잠시 덮었다. 지방 국립대를 권하던 엄마에게 화를 내던 내 모습과 그날의 내 모습은 달라진 게 없었다.


엄마는 내가 더 문자를 보내지 않자 다시 한번 문자를 보냈다.

[우리 딸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나는 결국 그 고생스러운 면접에서 최종 합격이라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딸을 고생시켜서 미안한 우리 엄마의 마음은 끝맺음되지 않았다. 딸의 꿈은 사실 역무원이 아니었다. 취업 축하해! 축하 케이크를 준비해 딸을 환영했지만, 딸은 앞으로 남은 게 많다며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출발할 기차가 있다면, 기차는 딸의 꿈을 싣고 달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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