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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Apr 06. 2021

역마살이 있다는 말은 하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 씨가 되어 역무원이 될지도 몰라


“OO이는 선생님이 잘 어울린다. 선생님 해라.”
“OO씨는 교육을 전공했는데 왜 임용고사 준비를 하지 않았죠?”     

사람들에게 정말 많이 듣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운명은 나를 번번이 선생님이 되지 못하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 교대를 준비했던 나는, 지방 교대의 2차 수시전형(*교대는 수시가 없지만 지역 학생들을 뽑는 학교장 추천 전형이 있었다.)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교대에 무조건 합격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먼저 사범대 2차 수시전형에 지원해 합격했다.

 

하지만 나는 교대에 가고 싶었다. 어린이들을 사랑했고, 선생님이 되기에도 교대가 훨씬 쉬운 길이라는 걸 알았다. 지방 교대 수시전형 지원에 필요한 학교장 추천을 받아 주기로 한 담임 선생님만 그것을 몰랐다. 나만 홀로 열심히 전과목 내신을 관리하고, 수능 최저학력 등급을 만족시키는 것성공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을 믿었던 나는 바보같이 지원서 접수 마감일까지 선생님이 무언가를 하길 기다렸다.

'오늘은 원서 접수가 끝나는 날이니 아무리 바빠도 오늘 학교장 추천서를 써서 교대에 지원하게 해 주시겠지?'

인터넷 접수에 익숙했던 나는 몰랐다. 학교장 추천 전형은 방문 제출만 가능하다는 것을....... 담임 선생님도 나도 서로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은, 그 날을 기억한다.


“사범대 갈 것 아니었어?”

“교대 지원서 쓰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지금 출발해도 마감 시간 안에 도착이 불가능해서 제출이 불가능하다. 미안하다.”     


(*그 다음날 지역 뉴스에 나온 교대 학교장 추천 전형의 경쟁률은 1.xx대 1이었다.)

재수를 할 수 없는 형편이었던 나는 합격한 사범대에서 국어 선생님을 준비하기로 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동기들, 선배들, 교수님들을 앞에 두고 해맑게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열심히 해서 꼭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나의 순수한 자기소개를 들은 교수님들의 표정은 왠지 어두웠다. 신입생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교수님들의 연설 내용은 취업 준비에 대한 것이었다. 임용고사 합격은 바늘구멍이기에 지금부터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한다면 충분히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도전도 해보기 전에 그 길은 안 될 것이라고 단언하는 교수님들을 보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OO이는 선생님이 잘 어울린다. 선생님 해라.'

친구들의 밝은 말 밝은 얼굴과는 다른 세상이 시작되었다.   



“OO아 그거 알아? 06학번부터는 교육학과에서 일반학과 복수 전공을 해도 교원 자격증이 100% 나오지 않는다는 거?
그게 정부 정책인데, 입학 당시 우리 학교 입시 요강에는 교육학과에서 다른 일반학과 복수 전공을 하면 100% 교직 이수가 된다고 나와 있었어.
그런데 정부 정책은 일반학과와 마찬가지로 성적순으로 잘라서 상위권에 들어야만 교직 이수가 가능하다는 거. 지금 난리 났어. 06학번부터는 교직 이수가 보장이 안 되는 거라고.”


나 역시 입시 요강에서 100% 교직 이수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지원했었다. 몇 년도부터 정부 정책이 바뀌어 교육학과에서 교직 이수 100%가 되지 않는다는 글을 본 적은 있었지만, 입시 요강에 100% 교직 이수가 된다고 적혀 있으니 그 학교는 해당 사항이 없는 줄 알았던 것이다. 06학번부터 학과 학생 모두가 교직 이수 100%가 된다고 믿고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전혀 성적 관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결국, 국어국문학과 교직 이수에 실패했다. 우리 학번에서 바로 내 윗 등수까지만 교직 이수가 가능한 순위권에 들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것을 이루도록 도와준다.’고 어떤 작가는 말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고 어떤 작가는 말했다.     

하지만 나의 순박한 신념이 모두 좌절되었을 때 나는 ‘선생님이 되면 안 되는 팔자구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온 우주가 내가 선생님이 되지 말라고 계속 막고 있구나. 내가 선생님이 된다면 수많은 학생들에게 민폐가 될까봐 운명이 온 힘을 다해 나를 막는구나. 나는 운명에 순응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외쳤던 간절함이란 딱 거기까지, 그 정도였다.




다른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채 졸업반이 되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신방과 학생들의 언론사 입사 준비 스터디에 꼈다. 나는 말했다.

“제가 역마살이 있어서요. 어디에 가 있을지 뭐를 할지 저도 잘 몰라요.”


지겹도록 듣는 질문은 이미 들은 상태였다. '왜 교사를 준비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의 역마(驛馬)를 더 겪은 후 랑의 끝에서 나는 역무원이 되었다. 진정한 역마살이 시작되었다. 



※역마

소설 역마」의 '역마’란 당사주()에서 얘기하는 역마살을 뜻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성기는 화개장터에서 주막을 하는 어머니 옥화가 떠돌이 중과 눈이 맞아 낳은 자식이며, 옥화 역시 그녀의 어머니가 떠돌이 남사당을 보아 낳았던 딸이다. 아마도 이런 사연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성기가 세 살 되던 해에 사주를 보니 그에게는 역마살이 끼어 있다는 판정이 난다. 이에 놀란 그 외조모와 어머니는 역마살을 막아보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어느덧 청년이 된 성기에게 이 같은 노력의 결과는, 깊은 병 곧 죽음의 위협으로 나타난다. 겨우 병을 이기고 일어난 성기는 운명에 순응하여 방랑의 길을 떠남으로써 그의 생명력을 회복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역마」라는 작품은,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삶은 본시 하나로 어울리는 법이라고 생각해 온 동양 사상의 한 흐름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 그것을 통해 현대의 혼돈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우리와 천지 사이엔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유기적 관련이 있으며 이 유기적 관련에 관한 한 우리들에게는 공통된 운명이 부여되어 있다”라고 했던 작가의 사상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것이 곧 이 작품인 셈이다.


「역마」의 이 같은 성격은, 이 작품을 쓸 무렵 김동리가 우파 문인을 대표하는 이론가의 자리에 서서 좌파와 대결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네이버 지식백과] 역마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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