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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Feb 04. 2021

혼밥에 익숙한 지하철 역무원

하지만 사건은 식사 시간에 일어난다.

'점심시간입니다. 점심시간 이후에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문을 붙여놓은 역을 본 적이 있는가?

점심시간에도 열차는 운행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오는 등 볼일을 보러 오는 고객도 존재한다. 그래서 역에는 정해진 점심시간이 없다.


역무실에서 중식을 시켜 한창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역무실을 방문한 고객들이 눈치를 보며 문의를 하는 모습을 보면 죄송한 마음이다. 냄새나는 음식을 먹고 있는 사무실에 오고 싶은 고객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방문하는 고객들은 오히려 식사시간에 방문해서 죄송하다고 말씀하시거나, 죄송하다는 눈빛을 보내주시기도 한다.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역무원은 혼밥에 익숙했다. 다 함께 중식을 시켜먹는 일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한 사람씩 번갈아서 교대로 식사를 하고 오기 때문이다. 그럼 남은 한 사람은 역에 남아 다른 사람의 몫까지 업무를 본다. 전철역은 근무 인원이 적기 때문에 역무원이 두 명인 경우 한 명씩 교대로 식사를 하고 오고, 역무원이 한 명인 역은 역장님과 교대로 식사를 하고 온다.     


5~6년 전만 해도 혼자 식당에 가는 일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직장인들이 무리를 지어 찾아오는 식사시간 식당에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혼밥을 하는 역무원은 달가운 손님이 아니었다. 그래서 손님이 많지 않은 곳, 저렴한 분식류를 파는 회전이 좋은 식당에서 빨리 식사를 하고 나오곤 했었다.

     

식사를 하고 남은 점심시간을 편안히 쉴 수 있으면 다행이다. 역장님과 역무원이 교대하는 역은 역무원의 공백을 꺼려하는 역장님이 계시기 때문에 양치질을 하고 사무실에서 남은 점심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사무실에서 남은 점심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일반 사무직들이 자기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갑자기 고객의 전화가 오기도 하고, 비상게이트나 발매기에서 호출을 하는 고객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역에서 열차 안의 유실물을 확인해달라고 업무 요청을 하기도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점심시간에 쉬지 못한다는 것이 많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무원은 항상 칼퇴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퇴근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편이다.     

'아. 이제 퇴근 6시간 남았다.'     


그런데 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에도 머피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 같다. '사건'은 역무원이 점심 교대를 하는 시간, 인원이 부족한 시간에 주로 일어난다.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그 사건들의 공통점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을 처리하러 나가는 직원’과 ‘사건에 대해 보고하고 관제 등의 부처와 연락을 담당하는 직원’, ‘무슨 사고냐고 묻는 고객 및 다른 역의 문의를 처리하는 직원’, ‘사건에 대해 안내 방송을 하는 직원’, ‘열차가 운행하지 못할 경우 미승차 확인증 등을 나눠주고 지하철 게이트를 열어주는 직원’ 등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다양한 역할을 직원 한 명이서 감당하는 것은 어렵다. (물론, 공익요원 한 명이 더 있어서 고객 안내를 도와주고 있다.) 특히, ‘현장에 사건을 처리하러 나가는 직원’은 안전상 두 명이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선로전환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한 명의 직원이 선로전환기를 수동으로 돌는 동안 다른 한 명이 열차 운행을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안내도 안 하고 뭐 하는 거야!”라고 소리 지르며 역무실에 들어오는 고객마저도, 역무원 한 명이서 급한 상황을 처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이렇듯 더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마자 역에 있는 직원이 SOS를 날리는 바람에, 주문한 식사를 한술도 뜨지 못하고 달려온 역장님도 계셨다. 어떤 날은, 역장님이 사무실에서 다 같이 중식을 시켜먹자고 하셨다. 중식을 주문한 후에 선로전환기 장애가 발생했다. 역장님과 팀장님은 선로에 나가 장애를 복구하고, 나는 사무실에서 현장에 나간 역장님과 연락하며 관제에 상황을 보고하는 일을 수행했다. 평소 즐겨 가셨던 도보 15분 거리의 식당에 역장님이 점심을 드시러 가셨다면, 나 혼자 어떻게 해야 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모든 상황이 정상화되고 난 뒤, 불어있는 장면 앞에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장님은 “오늘따라 느낌이 이상해서 멀리 있는 식당에 가면 안 될 것 같았다.”라고 말씀하셨다.


역무원은 혼밥에 익숙해지지만, 사건에는 절대 익숙해질 수가 없다. 사건 없는 하루가 흘렀다면, 그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무사히’라는 응원을 서로에게 보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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