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극한직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잠 Apr 05. 2021

유실물 찾는 역무원

전철 종점과 기차역 종점에서 유실물을 외치다.

전철(종점)역 유실물, 기차(종점)역 유실물 업무를 모두 경험했다. 기차와 전철을 막론하고 '종점' 역무원에게 유실물 업무는 큰 스트레스다. 유실물을 습득했다고 가져다주시는 분들, 습득했으니 가지러 오라는 분들, 유실물을 잃어버렸다고 찾아오는 분들, 유실물을 잃어버렸다고 전화 문의를 하는 분들을 한 명의 직원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1. 유실물 습득 신고 처리

청소 직원 분들이 유실물을 습득했다는 연락을 주시는 경우, 청소원 사무실에 가서 유실물을 받아간다. 보통 한 열차 또는 전동차가 도착하면 여러 가지 유실물이 수거된다. 이를 한꺼번에 가져가야 하며, 캐리어나 무거운 등산 배낭 등 부피가 커서 들고 가기 힘든 물건들도 있다.

열차 직원분들도 유실물을 발견하면 역무원에게 신고한다. 승무원, 팀장, 차장, 기관사까지. 직원분들의 연락을 받은 역무원은 보통 열차로 가서 유실물을 인계받는다.

일반 고객들도 유실물을 습득해서 전달해주시곤 한다. 고객지원실로 직접 가져오시는 분들도 있고, 직원 호출 버튼을 눌러 받으러 나와달라고 하시는 분도 있다.      


2. 유실물 분실 신고 처리

열차 또는 전동차에서 내리자마자 분실 사실을 깨닫고 고객지원실에서 유실물을 찾아달라고 말씀하시는 일반 고객들이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분실 사실을 깨닫고 전화로 문의하는 고객들도 있다.

역 직원들끼리도 유실물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한다. 고객이 문의한 유실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열차 또는 전동차의 열차 번호와 좌석 번호를 알아낸 후, 열차가 도착할 예정인 역으로 전화해서 해당 역의 역무원이 열차 안의 유실물을 확인해볼 수 있도록 한다.

고객의 유실물을 찾기 위해 다른 역의 역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요청하기도 하고, 다른 역에서 우리 역으로 도착할 예정인 열차 또는 전동차의 물건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3. 습득한 유실물 관리

습득한 유실물은 역에서 관리하는 유실물 습득 대장에 기록하고 있다. 습득한 유실물의 주인이 물건을 찾아가는 경우, 나중을 대비해 찾아가신 분의 연락처와 이름을 적고 서명을 받는 편이다. 신분증 확인은 필수다.

유실물 습득 대장 작성과 더불어,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경찰청 유실물 종합관리시스템(LOST112)의 습득물 작성 및 등록도 해야 한다. 경찰청 유실물 종합관리시스템(LOST112) 등록을 통해 습득물을 공고하여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유실물의 주인이 볼 수 있도록 한다. 주인을 찾은 유실물의 경우도 전부 등록하여 관리한다.

유실물은 유실물표를 붙여 관리한다. 유실물표에는 유실물 습득 대장에 적힌 유실물에 대한 정보(유실물 관리번호, 습득일, 습득 장소, 습득자 정보, 유실물 주인의 이름과 연락처 등)가 기재되어 있다. 이를 통해 많은 유실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주인이 유실물을 찾으러 오면 유실물표를 떼어낸 후 주인에게 물건을 인도한다. 물건을 인도한 후에는 유실물 습득 대장에 서명을 받고, 경찰청 유실물 종합관리시스템(LOST112)에서 인도 처리를 한다.

일주일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은 유실물은 역의 관할 경찰서로 인도하게 된다. 주인이 없는 유실물이 꽤 많아서, 이를 담은 박스가 카트에 다 싣기 어려운 적도 있었다. 관할 경찰서에 물건을 인도할 때는 경찰청 유실물 종합관리시스템(LOST112)에서 경찰 이관 처리도 동시에 진행한다. 이관 유실물 목록을 뽑아 담당자 사인을 하고, 경찰서 생활질서계 담당자에게 유실물과 함께 전달한다.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예요. 이렇게 없어진 물건도 찾아주고”


이렇게 기뻐하는 고객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물건을 찾아드려서인지 물건으로 보답을 해주고 싶어 하는 고객님도 계신데 “그게 저희 일이고 일하면서 저희도 월급 받으니 괜찮아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 편이다.      


하지만 보람을 느끼는 경우보다 난감한 상황이 더 많다. 종점까지 유실물이 오지 않은 경우 이렇게 말하는 고객들이 있다.

‘그 물건을 누가 가져간다고 물건이 없다고 하는 것이냐. 제대로 찾아는 본 것이냐. 물건이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유실물이 종점까지 오지 않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유실물이 발견되지 않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1. 누군가 훔쳐갔다. ☞ 차분히 2번, 3번의 가능성을 검토해본 뒤에도 도난이 확실하다면 경찰서에 도난신고를 해서 수사 요청을 하는 방법이 있다.

2. 누군가 가지고 내린 후 다른 역에 습득 신고했다. ☞ 기차역에서 일할 때 택시 or 버스 or 전철역에서 발견했는데 자신이 기차를 급하게 타야 한다고 기차역 유실물 센터에 물건을 맡기는 분도 있었다.

3. 누군가 가지고 내린 후 경찰서에 습득 신고했다. ☞ 경찰청 유실물 종합관리시스템(LOST112)에서 자신의 유실물이 있는지 찾아보면 확인할 수 있다.

4. 역무원, 열차 직원, 청소 직원이 찾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 물건이 있는 자리에 다른 고객이 타서 확인해보지 못한 경우, 보이지 않는 틈에 물건이 끼어버린 경우, 직원이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해 발견하지 못한 경우이다.     


4번의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종점 역무원이 발견할수 없었던 유실물이었던 것이다.

전철의 경우, 종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반대방향으로 출발하는 전철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이 전철에 타서 자리에 앉는다. 그 사람들의 앉은자리 위 선반에 물건이 그대로 있었고, 발견이 되지 못한 것일 뿐이라면 반대쪽 종점에서 발견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하지만 이는 잃어버린 사람이 정확한 분실 칸과 위치를 기억한다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자신이 분실한 칸과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고, 때로는 어떤 열차인지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열심히 전철 전체 칸을 돌아본 후에도 물건을 찾지 못해서 고객에게 쓴소리를 들었는데, 다음 전철에서 물건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몇 시간이 지나서 엉뚱한 전철에서 물건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고객의 기억과는 다른 전철에 물건이 있었는데 반대편 종점을 찍고 다시 근무하고 있는 종점역으로 물건이 돌아오는 경우이거나, 일반 고객이 물건을 훔쳐 원하는 내용물을 빼낸 후 다시 전철 안에 두는 경우일 때였다.     



근무시간 내내 유실물을 처리하고, 직원 내선 전화기와 고객 문의 전화기가 함께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은 순간도 있다. 두통은 기본이다. 체력(달리기 실력은 덤)도 필요하다. 기차역은 역도 크고 열차도 많아서, 14번까지 있는 승강장까지 뛰어가서 유실물을 확인하고 고객지원실로 들어오면 몸은 이미 땀으로 샤워를 했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된다. 돌아온 고객지원실에는 유실물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고객들과, 끝없이 울리는 밀린 문의 전화가 있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내 몰골을 본 고객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진짜 고생하기에 역무원들 사이에기피 업무긴 하지만, 그래도 고객들이 가장 고충을 이해해주는 역무 업무가 ‘유실물’이다. 적어도 이 일을 맡는 시간 동안은 ‘월급 받고 하는 일이 대체 뭐냐’는 말은 듣지 않을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톱밥으로 토사물 치우는 역무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