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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Apr 08. 2021

봉지라면 끓이는 역무원

크리스마스, 족발 세트 앞에서 울컥했음은 물론이다.

전철역에서 근무했던 신입 시절이 기억난다. 그리고 야간 근무마다 먹었던 봉지 라면과, 그것을 끓이던 양은 냄비를 기억한다.

주간 근무보다 한가한 야간 근무 때에는, 봉지라면을 냄비에 끓여 먹는 일이 ‘일’이었다. 함께 먹는 라면은 맛있다. 하지만 역장님은 야간 근무마다 저녁을 드시지 못하고 출근해서 봉지라면을 끓여 먹자고 하셨다. 일로 먹는 라면, 야간 근무마다 항상 먹는 라면은 금방 질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그 시절 아마 역무원들은 역에서 서로 가족처럼 지냈을 것이다. 같이 밥 해 먹고, 같은 역에서 잠들고, 같이 생활했을 것이다. 출출할 땐 밥도 해서 먹고 간식도 나눠 먹고 도란도란. 그런데 나는 그 가족적인 문화의 발전과 변화의 세월에 존재한 적 없는 신입이었다. ‘어느 날 라면이 지겨워서~ 뭐 좀 맛있는 것 좀 없냐며 대들었었어~’라는 랩 가사를 불러도 될 법한 마음이었다.


궁리 끝에 출근 전 근처 역에서 내려 맛있는 프리미엄 김밥집의 프리미엄 김밥을 종류별로 샀다.

역장님! 오늘은 라면 말고 김밥 드세요! 이 김밥 진짜 맛있어요. 제가 같이 먹으려고 사 왔어요.

역장님은 신입의 정성에 흐뭇해하면서도, 메뉴에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셨다. 하지만 신입의 성의를 보아 먹어본 김밥의 맛은 신세계였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무슨 김밥이야?”, “이런 김밥이 있었나?”, “어디서 샀지?”

역장님의 말에 나는 신이 나서 '김밥에 어떤 재료들이 들었는지, 어느 역에서 이 김밥집을 찾아갈 수 있는지'를 설명해드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야간 근무가 시작되자, 역장님은 말씀하셨다.

“어제 먹었던 김밥이 참 맛있던데 오늘도 그걸 먹어볼까?”

헉! 했지만 그래도 김밥은 맛있었다. 문제는 김밥에 끓여먹는 봉지라면도 추가되었다는 점이었다.

“라면이랑 먹으니까 더 맛있지?”

맛있었다. 사실 맛은 있는데, 매번 먹고 정리하는 것은 번거로웠다.

저녁을 챙겨서 먹는 그 시간이 항상 라면을 끓여서 먹을 만큼 한가한 것도 아니었다. 급하게 유실물을 찾으러 전동열차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승강장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기도 하고, 역사 시설물이 고장 났다는 연락도 왔다. 그리고 고객들이 수시로 버튼을 누르는 지하철 비상게이트는 라면 한 젓가락을 들어 올리는 순간 울려댔다.


나보다 더 고생한 것은 공익근무요원들이었다. 비상게이트 호출이 오면 이에 주로 응답하는 것은 공익근무요원들이었고, 식사 중에도 역무원인 나와 번갈아서 고객의 호출에 응답을 하기 위해 뛰어야 했다. (식사를 하는데 가끔 숨이 찼다.) 공익근무요원들에게 더 미안했던 이유는 역장님께 김밥을 소개한 장본인이 나이기 때문이었다. 김밥을 사 오는 심부름은 항상 공익근무요원들이 하게 되었다. 심지어 전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더 가서 사 와야 하는 것이 ‘김밥’이라니........ '역장님. 오늘은 김밥 사러 공익근무요원 대신 제가 갈게요.'라고 했지만 역장님은 '괜찮다. 공익근무요원을 시키겠다'라고 하셨다. 나에게는 김밥을 먹은 만원짜리 법인카드 영수증을 꼬박꼬박 전표 양식에 붙이고 스캔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라면 먹은 냄비 설거지를 자주 해주셨던 과장님이 언제부턴가 ‘매운 족발’ 메뉴를 저녁으로 추천해주셨다. 고마운 족발과 과장님 덕분에 라면으로부터 탈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족발도 너무나 맛있었지만, 계속 먹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먹는 저녁 자체에 질린 나는 ‘다이어트’라는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과장님은 매운 족발 양념에 밥까지 비벼 주시며 다 먹어야 한다고, 친절히 숟가락으로 그것을 떠서 건네주셨다. 정과 사랑이었다. 다만 그 정과 사랑이 과했기 때문에 나는 50킬로대 후반의 몸무게에서 60킬로대의 몸무게로 전진 또 전진하기 시작했다. 역무원 제복 55 사이즈를 입다가 66 사이즈를 신청하게 되고 그마저 꽉 끼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왔다. 주간 근무 날이었다. 그리고 전철역의 크리스마스 오후는 매우 조용했다. 착한 공익근무요원이 근무 날이 아님에도 포장한 족발을 들고 역무실에 놀러 왔다. 당연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크리스마스답게 깔끔하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잘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생뚱맞게 ‘울컥’ 해버렸다. 공익근무요원이 신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었던 순간이었다.

“저 캐럴 들으니까 울 것 같아요...”

공익근무요원은 당황하며 캐럴을 껐다. 그리고 곧 나는 제정신(?)을 차렸고, 아무렇지 않은 듯 족발을 먹고 주먹밥을 먹고 김치를 먹었다. '배가 부르다 못해 호강에 치어서 눈물이 나는 건가?' 나도 내가 참 이상했다.     

내 나이 스물일곱 살, 전철역 역무원이 되어 맞은 첫 크리스마스였다. 그날 내가 맛본 맛은 사회의 진정한 '쓴맛'을 보기 전에 느낀 ‘밍밍한 맛’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밍밍한 맛에도 잠시 흔들렸다.      


‘내가 이러려고 힘들게 취직을 한 걸까?’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딘가?’     


역무원이 되고 맞이한 첫 청승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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