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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Jan 26. 2021

눈물이 멈추지 않아 정신건강의학과를 갔다. - #2

퇴사가 최고의 우울증 치료제였지만 나는 퇴사라는 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2. 퇴사가 최고의 우울증 치료제였지만




정신건강의학과를 가기 전 나의 상황은 이미 우울증에 걸리기 좋은 요소들로 가득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언급한 상판대기 드립 고객은 방아쇠였다.      

인생에서 힘든 일들은 한꺼번에 온다고, 나는 이미 많은 일을 겪은 상태였다.

그 당시를 기점으로 나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1. 어머니가 유방암이 재발되어 수술을 하신 적이 있다. 간병휴직 후 복직해서 만난 직원들은 나의 얼굴을 볼 때마다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그중에서 진심으로 내 걱정을 했던 사람은 불행히도 없었다. 한 아주머니 직원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매번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2. 교대근무를 했다. 휴직 전에 일했던 것과 똑같은 업무(민원처리 및 고객 안내)를 했다. 


3. 일이 적성에 맞지 않고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어 이직을 시도했다. 운 좋게 소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회사의 최종면접 기회가 왔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4. 이미 그 역에서 2년 넘게 했던 민원처리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은 나는 민원 업무가 적은 다른 소속으로의 이동을 회사 상사에게 요청한 상황이었다.

근무 조의 팀장님께 간병휴직 후 복직한 나의 상황과 업무에 대한 정신적인 고통을 설명하고, 다른 역에 티오가 생기면 역을 옮길 수 있도록 해달라 부탁을 드렸다. 당장은 어려울 것이고 기다려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5. 종합안내 업무를 전적으로 담당하던 직원이 병가를 써서 그 친구를 대신해 종합안내 업무를 했다. 병가를 쓴 그 직원은 사실 면접을 본 것이었고 이직에 성공했다. 나의 실패감은 더 커졌다.     


6. 이직에 성공한 직원을 대신해 내가 종합안내 담당이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퇴사한 그 직원을 대신해 종합안내 업무를 하러 출근한 날, 종합안내소에서 회사 포털에 들어가 오늘 생산된 공문을 읽게 되었고, 그 공문에서 나의 근무지정이 종합안내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에게 말도 없이 담당직무 자체를 변경해버린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회사의 사정상 내가 그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해도, 한 번은 내게 미리 근무를 변경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아마 그 업무 대타를 내가 계속해 오던 상황이라 사전에 통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2년 동안 기피 업무를 담당했지만 그럼 네가 잘 알고 있으니 또 네가 담당하세요.’라고 하는 조직이 잘못일까? 다른 소속으로 옮겨달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조직에 불만사항을 말하지 않고 순응했던 내가 잘못일까? 모든 게 내 탓인 거 같을 때 나는 더 고통스러웠다.)     



무기력한 우울감의 치료에 나서게 한 동력은 '억울함'이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이 일어나고 나서 나는 상판대기 드립 고객과 만났다. 솔직히 이런 날 나의 상판대기는 정말 엉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걸 적나라하게 지적해준 진상고객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퇴사하기 아주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강했다. 회사 상사에게 나의 마음 상태를 이야기하고 병원에 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전부터 어머니가 나의 우울한 이야기들을 듣고 정신과 진료를 권했던 상황이라는 점도 이야기했다. 회사 상사 역시, 그렇다면 진료를 꼭 받아보라고 이야기했다. 회사에 소문이 날 것이 뻔했지만 소문이 나고 험담을 듣는 것이 내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딸에게 이미 회사를 관두라고 말한 상태였지만, 막상 나는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관두고 싶다는 말을 수백 번도 더 했는데, 막상 사직서를 쓰고 관둘 수 있다는 상황에 직면하자 억울했다.





'룰루랄라 대충 즐겁게 다니는 직원들도 많은데 왜 내가 관두어야 하지?'

관두면 패배자가 되는 기분이었고, 반드시 이직에 성공해서 퇴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는 못했다.  퇴사가 최고의 우울증 치료제였지만 나는 퇴사라는 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선생님. 사실 저의 우울증은 퇴사하면 다 해결된다는 걸 제 자신이 너무 잘 알아요. 퇴사하면 낫는 병인데 우울증 약까지 먹으라고요? 약을 먹으면서까지 회사를 다녀야 할까요?”

약을 먹어볼 것을 권한 의사 선생님께 내가 했던 말이다. 그때 우울증 검사지로 내가 직접 응답해서 나온 결과가 우울증(불안장애 쪽이 더 가깝다고 함)이었다. 그리고 나의 물음에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회사를 관두면 우울증이 나을 수는 있지만, 진짜 회사를 관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다.


그래도 회사를 관두어야 한다고 본인이 판단한다면 회사를 관두는 방법도 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회사를 관두는 것과 같은 중요한 결정은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난 후에 해보는 것을 권한다.   


의사 선생님은 약물 치료를 권하면서도 이에 대한 결정을 나의 손에 맡기셨다.


약물치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알지만, 만약 부작용이 생긴 경우에는 약을 바꾸거나 용량을 조절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설명도 덧붙이셨던 것 같다.     

어느덧 나의 눈물은 멈추어 있었다. 사실 상담치료를 먼저 받는 게 좋았을 것 같았던 진료였다. 의사 선생님께 상담치료에 버금가는 치료를 받은 나는, 의사 선생님이 다음 환자와의 예약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진료실을 나서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2주 후에도 지금과 같은 감정이 지속되지 않으면 저는 다시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는 거죠?”     


선생님은 조금 헛헛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사실 선생님이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는 알 수 없지만, 눈물 콧물을 멈추지 못하떠들던 사람이 갑자기 후련해하며 2주 뒤에는 안 와도 되는 거냐고 묻는 것이 조금 웃기지 않으셨을까 싶다.      

아마 이 말 한마디에서 어느 정도 추측을 해본다.


“OO씨는 지금 중년의 직장인들이 주로 하는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내 나이는 고작 30대 초반이었는데, 너무 많은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2주 뒤에도, 2년 뒤에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을 일이 없이 지내게 되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 때 약을 먹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작정 퇴사'라는 약은 부작용이 있다는 건 확실히 안다.  퇴사할 용기로 나의 감정을 해소하며, 퇴사하는 그 날까지 버티는 게 내 스스로가 내린 처방이다.

몸 건강은 운동으로 마음 건강은 글쓰기로 챙기고 있다. 정기적으로 마음 검진도 받아가면서, 영광의 그날까지 견뎌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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