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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Apr 08. 2021

역사 내 CCTV가 보고 싶으신가요

CCTV를 보는 역무원의 마음은 복잡하다.

아흔 살 가까이 되신 할아버지 한 분을 119에 연락해 병원으로 이송한 날이었다.

역무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의 전화 한 통을 받고 깜짝 놀랐다.  

“에스컬레이터가 멈췄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뒤로 쓰러지져셔 많이 다치셨어요.”

노후화된 승강기가 멈추는 일은 사실 역무원에게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다쳤다는 말에는 언제나 가슴이 철렁한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넘어지셔서 다치신 거예요? 어디 아프신 데 없으세요?”

특별한 외상이 없는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괜찮다며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외상이 없어도 머리를 부딪혔다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는 게 좋다. 할아버지는 벤치에서 조금 쉬었다가 집에 가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설득했다.      


“지금 댁에 가시기 힘들 정도시면 119 부르셔서 병원 한 번 갔다가 가시는 게 좋아요. 119 불러서 침대에 누워서 편히 가세요, 어르신.”     

119를 부르고 승강기 업체를 불렀다. 119를 기다리는 동안 할아버지의 상태를 살피며 인적사항과 연락처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본인의 연세와 성함, 연락처는 잘 기억하고 계셨는데 자신이 어쩌다 다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다치셔서 그러신 것이 아닌가 괜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승강기 업체에서 승강기 점검을 끝내고 119에서 할아버지를 모셔간 뒤 나는 역무실에서 CCTV를 확인했다.      

몇 시간 뒤, 할아버지가 역으로 전화를 주셨다.      


“어르신, 몸은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다친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정황을 알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몸이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넘어지시는 장면이 영상에 찍혔어요.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시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셨어요. 뒤에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이를 보고 에스컬레이터를 정지시켜 주셨습니다.”     

CCTV 영상에서 본 할아버지는 마치 계단 위에 서 있듯 손잡이를 잡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계셨다. 올라탄 지 얼마 안 되어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게 되었고, 넘어진 채 에스컬레이터와 함께 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다행히 뒤에서 올라오던 아주머니가 비상정지 버튼을 눌러 에스컬레이터는 멈추었다.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찾지 못했어요. CCTV 좀 보여주세요.”

근무하며 자주 이런 고객의 요구를 받는다. 하지만 CCTV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일반인에게 열람해드릴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정해진 ‘표준 개인정보 보호지침’의 ‘제3절 개인영상정보의 열람등 요구’에 따르면, 정보주체는 영상정보처리기기운영자가 처리하는 개인영상정보에 대하여 열람 또는 존재확인을 해당 영상정보처리기기운영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정보주체가 열람등을 요구할 수 있는 개인영상정보는 정보주체 자신이 촬영된 개인영상정보 및 명백히 정보주체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개인영상정보에 한한다.   
제46조(정보주체 이외의 자의 개인영상정보 보호) 영상정보처리기기운영자는 제44조제2항에 따른 열람등 조치를 취하는 경우, 만일 정보주체 이외의 자를 명백히 알아볼 수 있거나 정보주체 이외의 자의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되는 정보주체 이외의 자의 개인영상정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보호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본인의 모습이 포함된 영상에 한해 열람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사실 CCTV에는 본인 이외의 수많은 타인들이 함께 녹화된다. 따라서 영상을 공개했을 때 함께 녹화된 타인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 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나온 방법처럼 CCTV에 녹화된 타인의 모습역에서 마스킹 처리하고 보여드린다는 것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고객에게 CCTV를 보여드릴 수 없는 이유다. (단, 경찰에 도난 또는 점유이탈물 횡령 등으로 신고를 하는 경우, 경찰로부터 수사 요청 공문을 받고 경찰 수사관에게만 CCTV를 보여드리고 있다.) 

    

사실 역사 내에 CCTV가 설치된 주된 목적은 안전상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119를 불러드린 할아버지의 사례처럼 역사 내에서 사고를 당하는 상황을 확인할 수도 있고, 사전에 CCTV를 보며 역사 내에서 일어나는 안전상의 문제들을 파악할 수도 있다. 경찰 수사를 위해 협조하는 것은 ‘협조’이며 어디까지나 ‘주된 목적 이외의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는 상황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CCTV란 참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설비이다.     




 잊지 못하는 CCTV 장면이 있다. 스크린도어가 아직 없던 역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를 향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든 어떤 사람이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의 영상을 보게 된 건 유족들이 역무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유족들이 찾아오기 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저장된 영상을 눌러서 확인 보았다. 그 영에서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보고 느낀 충격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영상을 본 유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는 유족들께 거듭 말씀드렸다.

'CCTV를 보는 것이 더 고통스러우실 수 있다.'라고, '진짜 괜찮으시겠냐.'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를 확인하고 싶으시다고 했다. 영상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고 울던 여성분의 모습을 기억한다.


유족들은 마음을 추스른 뒤 ‘확인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119를 불러드린 할아버지도 전화 말미에 ‘역무원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고통스러운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인생에서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하지만 나는 이미 녹화된 CCTV보다, 상황이 발생하기 전 CCTV를 감시하는 역무원의 눈이 더욱 소중하고 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봤자 일어날 일은 일어 것이고, 사각지대로 가득한 저화질의 CCTV 보는 것 불과한 것이지만.




※개인정보 바로 알기

(출처 : 개인정보보호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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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정보주체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있거나 주소 불명 등으로 사전 동의를 받을 수 없는 경우로서 명백히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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